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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

김종민 나전칠기 장인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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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영롱한 빛이다. 옻칠과 자개가 참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반짝거린다.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전복과 소라의 진주층을 다듬은 자개가 장인의 예술적 혼과 만나면서 탄생한 그 빛은 천년을 간다. 이것이 나전칠기다. 칠과 건조과정을 반복하면서 한 작품을 만들 때 최소 45번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된다고 ‘나전 45’라고도 불린다. 나전칠기 공예만 40년. 김종민(58) 장인의 하루는 칠로 시작해 칠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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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만남, 나전칠기
핸드볼 선수로 성공을 꿈꿨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핸드볼은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아버지 지인과의 인연으로 그는 나전칠기 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핸드볼 선수를 하면서 강원도 대표로 제2회 소년체전에 출전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나전칠기 공방이었죠. 처음엔 공예 기술에 관심이 없었어요. 자개가 비싸니 날마다 출고되는 자개를 관리하는 일을 맡다가 기술을 배우라고 권하셔서 배우게 된 것이 지금까지 왔어요.” 그가 나전칠기 공예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19세 때. 당시에는 핸드볼 선수에 대한 막연한 미련이 남았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학이 날아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생동감 속에 자연의 생명력이 꿈틀대는 십장생 장롱이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기원하고 강물 위에 배 띄우는 유람하는 선유도가 그려진 장롱을 보면 가구가 아닌 현실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나전은 자개라고도 부른다. 오색을 발하는 조개껍데기를 썬 조각이다. 칠기는 ‘옻칠(漆)’, ‘그릇 기(器)’를 쓴다. 둘을 합친 나전칠기는 가구 등에 광채 나는 조개껍데기를 얇게 갈아붙이고 옻칠한 공예품이다. 어두운 바탕 위에 형형색색의 영롱한 빛을 발하는 나전과 옻칠의 향연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고 고상한 기품에 옻칠 고유의 냄새까지 어우러진 칠기는 예로부터 사랑받아온 매력 넘치는 우리나라 전통공예이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수명 또한 영구불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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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가 담긴 작품
나전칠기 안에는 장인의 ‘인내’가 담겨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면 수만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옻칠을 바르고 말리고 벗겨내는 과정에서 수백 번, 수만 번의 손길을 따라 황홀한 풍경을 그려내는 나전칠기. 섬세하고 신비스러운 우리나라 고유의 공예품인 나전칠기는 반복적이고 정밀한 세공작업과 복잡한 칠과정을 거친다. 이름 그대로 나전칠기의 생명은 ‘칠’에 있다. 그래서 편법과 대충이라는 단어는 통하지 않는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건조를 열(熱)이 아닌 습(濕)으로 하는 것도 우리나라 전통 칠기의 특징이다. 23℃ 정도의 온도와 높은 습도가 유지되는 건조실에서 2~3시간 살짝 건조한 뒤에 다시 연마와 칠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나전칠기 제작은 다른 공예품보다 몇 배의 공정이 더 필요해요. 적당한 나무를 고르고 필요한 용도의 백골(나무틀)을 만드는 목공 작업부터 시작해 백골 위에 삼베 혹은 한지를 바르고 조개 가루와 칠을 반죽해 바르죠. 그 위에 밑칠을 단단히 한 후 마르면 닦아내고 다시칠하고 마르면 닦아내고…. 이 과정을 10여 차례 되풀이한 후에야 종이 본으로 그린 밑그림 위에 나전을 입히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자개를 만드는 데에도 줄로 썰고, 자르고, 끊어내는 등 정성 어린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김 장인의 설명이다. 칠 위에 종이 본을 놓고 자개를 인두로 눌러 붙이고 다시 옻칠하고 또 칠을 긁어내는 작업을 8~12회 반복한다. 한번 칠이 건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이후 마름질하고 광을 낸다. 나전칠기는 대략 45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작품 하나가 완성된다. 모든 것은 수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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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의 핵심은 옻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김종민 장인의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옻 향이 코끝을 스친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천연도료를 발라 건조시키는 옻칠은 나전칠기 예술품의 핵심이다. 나전칠기를 중심으로 한 옻칠공예는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4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옻칠의 장점은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며 다른 합성 도료보다 방수, 방열, 방습, 방충 효과가 뛰어나요. 옻은 식용 또는 약재로도 사용되고 옻칠의 독기가 인체의 질병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고 알려져 가래, 기침 등에 좋아요. 우리 선조들은 옻칠에 효능을 익히 알고 있어서 밥상이나 목기 가구 등 생활 도구에 많이 활용해왔죠.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팔만대장경도 옻칠을 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잘 보존할수 있었던 겁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자꾸만 멀어져 가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전통이다. 나전칠기 공예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나전칠기에 옻칠이 아닌 카슈(합성도료)를 칠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옻칠과 카슈칠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일반칠기한 제품은 정확히 말하면 나전칠기라 할 수 없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투철한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혜택을 줘야 해요. 전통 공예인들이 다들 어려우니까 쉬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만큼 전통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아요. 올곧은 제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원칙을 어긴다는 것은 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제 양심이 허락지 않아요.”

전통을 넘는 새로운 변화
김 장인의 작업실 한쪽에 있는 예스러운 자개장들이 시선을 끈다. 그는 새로운 제품도 만들지만 오래된 자개장을 보수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문화재를 재현하는 예술 작품도 제작한다. 전통은 변화와 무관한 듯하지만 시대별로 매번 그 모습을 달리하며 나이를 먹어왔다. 전통의 기법과 재료는 지키되 내용은 변해야 발전한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디자인과 색상…. 장인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것들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고민 끝에 흑칠(검은색), 주칠(붉은색)로만 굳어져 있는 기존의 옻칠 틀을 벗어나 다양한 색칠과 결합한 ‘칼라 나전칠기’를 탄생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다. “올해 29살 된 큰아들과 27살 작은아들이 있어요. 그 전에 제품들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다가 칼라 나전칠기를 만들어 내놓으니까 ‘제품이 괜찮다’라며 인정을 하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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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제품 하청작업을 하는 곳에서 7~8년간 일을 했지만 부도로 인해 그동안 일한 대가를 하나도 받지 못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40대 초반.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던진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됐고 지금까지도 나전칠기 공예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제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작은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저에게 ‘저를 보고 사세요’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아들에게 그랬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다 해주겠다는 거에요. 그때 아들이 했던 말이 살아가는 데 굉장한 힘이 됩니다.”

정직함에서 나오는 자부심
그가 나전칠기 장인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정직함에서 나온다. 원칙 그대로 하는 그의 성격상 편법은 없다. 그래서 김 장인이 만든 나전칠기에는 정직함이 묻어난다. 그의 스승에게 물려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보유자 정수화 장인과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 장인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안타깝지만 옻칠에서는 편법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구분이 쉽지 않으니까요. 저는 소비자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요. 조금이라도 옻칠에 관해 미심쩍으면 그냥 안 사셔도 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의 길,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40년간 그래왔다. 김종민 장인은 자신의 나전칠기 외길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만든 옻칠 제품으로 건강을 되찾거나 오랜 세월 빛바랜 귀한 물건을 재현해줬을 때 기뻐하는 고객의 모습은 보람이자 행복이다. 이는 나전칠기 공예 장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