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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화가의 TRAVELER
꿈꾸라 그리고 여행하라
 
늦가을, 길 위에 낙엽이 흩날리는 그즈음이었다. 여행자를 주제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연 김정선 화가를 만났다.
 
글/사진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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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화가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 작업은 일상이자 자연스러움이다. 굳이 ‘화가’가 된 계기를 꼽으라면 가장 하고 싶은 미술 장르가 페인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형, 디자인 등 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해보았지만 회화가 가장 마음에 꼭 들어맞는다.

그림을 시작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생을 마칠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 게 화가의 바람이다. 부귀영화, 명예에 욕심이 없는 그는 물 흘러가는 듯한 삶에 만족하지만 유난히 자신의 그림엔 그리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대단한 것을 해내겠다는 마음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구나 내 그림을 보고 누군가 감동받고, 그 감동이 조금이라도 그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행자 시리즈에서 이번 그리스 산토리니는 김정선 화가의 일상이 됐다. 예전에는 야망을 크게 가졌던 그였지만 지금에 와서 그때를 되돌아보니 ‘오버했구나’란 생각이 들더란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사람들의 인사, 행동 등 흔한 풍경에서 화가 자신 역시 자연스레 흡수되면서 이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일상의 행복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산토리니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김정선 화가의 예전 작품과 현재 작품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전 작품은 ‘욕망’을 주제로 ‘짝퉁 패러디 가방전’ ‘셰도우(인간의 욕망을 그림자로 표현)전’ ‘폭포’ 등 욕망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전에는 똬리를 틀고 꿈틀거리는 욕망을 화폭에 담았다면, 현재는 정적이면서 그 안에 움직임이 있는 내면의 움직임을 그린 그림이 주를 이룬다. 김정선 화가는 산토리니 시리즈를 작업하며 “내 마음이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굉장히 편안하고 즐겁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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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을 특별히 ‘여행자(traveler)’라고 정한 이유가 무얼까. 그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늘 여행하고 싶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다.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낙서처럼 시작한 작업이 바탕이 돼 화가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표현하게 됐다. 이번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다. 화폭에 담긴 풍경은 화가가 가보지 못한 장소다. 하지만 작품은 사실적이며 세밀하고 마치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표현한 듯하다.
 
“가보지 못했기에 가고 싶은 열망이 더 커져 사실적으로 그리게 된 것 같아요. 가봤더라면 작업 도중 싫증을 낼 법 한데, 오히려 가보지 않아서 그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보지 않은 현실,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합쳐져 작품이 나온 듯하네요.”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 마음 한 편엔 아쉬움이 있다. 화가는 이 감정을 안다. 그에게 작업이 여행과도 같은데, 항상 작업을 마칠 즈음 ‘더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여기까지’라며 붓을 내려놓는다. 그때의 아쉬움. 하지만 다음 작품 작업에서 하얀 화폭을 마주할 때면 여행 가기 직전, 또는 여행지에 다다르기 이전의 설렘을 느낀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 여행자는 작가 자신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으면 붓을 잡았어요. 가고 싶은 목적지를 마음으로 답습하면서 표현했죠. 그래서 여행자들이 느끼는 아쉬움, 허무함은 크게 없었어요. 그저 상상하는 게 재밌었어요.”

작품 대부분이 푸른빛을 낸다. 화가는 이번 여행자 시리즈에서 몽환적이고 이상적인 나라를, 현실이지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 푸른색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푸른색 계통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친숙하기도 하단다. 몽환적인 세상은 파라다이스, 천국과 같은 곳이라는 게 화가의 말이다. 그의 종교는 기독교인데, 종교가 작품 활동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작품 속에서 교회 건물이 많은 것이 그 예다. 언젠가 종교화도 그리고 싶은 그다. 보사노바 등 이국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이러한 이국적인 음악을 들으면 그나라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느끼고, 마치 그곳을 여행한 것처럼 느껴진단다. 화실에서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실내를 청소하고 음악을 선곡하는 등 작품에 흠뻑 빠지기 위해 40~50분 정도 준비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것처럼 화가에게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는 ‘여행자’라는 테마로 작업을 다시 한번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나라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진정한 파라다이스를 만날 그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