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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숨’과 같다

문화예술 봉사자로 변신한 배우 이야기


천안문화재단 박상규 대표이사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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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 문화예술 봉사자
낯익은 얼굴이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배우이자 현재는 천안문화재단 대표이사인 박상규 씨는 자신을 ‘문화예술 봉사자’로 표현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천안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쏟아붓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문화의 콘텐츠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천안에는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천안 시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고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가 이토록 천안에 애정을 가지고 이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힘을 쏟는 이유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 오랜 연기 인생을 잠시 뒤로하고 고향 천안으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천안문화재단 대표로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화 인프라 구축이다. “천안은 높은 지명도에 비해 기초 문화예술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문화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문화 관련 시설, 제도, 기관, 유통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 시민들이 각박한 생활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여백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예요.” 예술을 ‘숨’이라고 말하는 박 대표. 예술이 있는 삶은 곧 숨이 있는, 여백이 있는 삶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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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간계와 사랑> 공연
 




흥겨운 춤마당 천안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열린 문화재단.’ 천안문화재단의 캐치프레이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그는 접근성 좋은 문화시설 확충을 꼽았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공공건물의 유휴공간을 개조해 운영하는 ‘한뼘미술관’을 들 수 있다. 천안 서북구청 작은 갤러리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용하던 유휴공간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갤러리에 내부 가벽을 설치해 복도를 거닐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뼘미술관’은 동남구청 별관에서도 운영 중이다. 지난 2015년 3월 개관한 천안 예술의전당 문화센터는 인문, 미술, 음악과 관련된 문화예술아카데미 전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천안에서는 다양한 문화축제도 열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13일부터 17일 진행된 ‘천안 흥타령 춤 축제’는 올해로 14번째 맞는 국제 행사다. 이 행사는 천안 대표 문화축제로 독특하게도 ‘흥’과 ‘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천안시는 1987년부터 10여 년간 ‘천안 삼거리 문화제’를 열어왔으나 고유의 특징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 2003년 9월, 주제가 있는 새로운 형태의 축제인 ‘천안 흥타령 춤 축제’로 첫선을 보였다. 새롭게 춤이라는 소재와 흥타령이라는 지역 정서를 용해시킨 문화적 포인트를 축제의 주제로 정한 것. 초창기에는 ‘춤추는 천안 신명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춤과 의상, 노래를 가지고 기량을 겨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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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 교수 시절 학생들과
 



‘천안 흥타령 춤 축제’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무엇보다 올해에는 천안시 초청으로 7개국 대사와 18명의 외교관이 축제에 방문했다. 이렇듯 ‘천안 흥타령 춤 축제’는 우리나라 문화 외교 사업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천안은 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를 유치해 지난달 9일 천안예술의 전당 대극장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올해는 12개국이 참여한 대규모 경연이었다. 대회 개최 이래 최다 인원과 최다국가가 참여했다. 박 대표는 FIDAF(국제무용춤축제연맹 사무총장) 활동을 통해 천안 흥타령 춤 축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는 천안은 지역 특성상 흥이 많다고 설명했다. “천안삼거리 민요가 귀에 익숙할 겁니다. 예로부터 천안은 호남과 영남에서 출발해 한양에 이르는 길목이었기에 숱한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었던 거죠. 그곳에서 많은 이야깃 거리가 생겨나고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이별 이후 또 감격의 만남 등이 어우러지는 한과 흥이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보고(寶庫)인 셈이죠.”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 배우
지난해부터 천안문화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상규 대표.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73년 국립극단에 입단해 연극 <간계와 사랑>, <여관집
주인>, <맹진사댁 경사>, <인생차압> 등 국립극단의 모든 작품에 출현했고 영화 <내부자들>, <신세계>와 드라마 <왕건>, <대물>, <프라하의 연인>, <광개토대왕> 등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극반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국립극단 연극을 보게 됐어요. 그 당시 아마추어인 입장에서 프로 무대를 보니 가슴이 뛰었죠. 배우들의 발성이나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했어요. 그 자리에서 결심했죠. 대학을
졸업하면 국립극단에 들어가야겠다고. 이후 대학에 들어가 연극만 했어요.”

연극이 좋았다.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았지만 준비과정에서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 배우는 자신의 몸이 악기와 같다고 확신해 그는 매일 훈련하고 실력을 갈고닦았다. “배우는 복식호흡을 통한 스피치를 해야 해요. 수많은 사람에게 정확히 대사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말하는 습관 자체를 바꿔야 해요. 또 표정과 움직임도 중요하기 때문에 안면과 관절 스트레칭도 필요하죠.

허구의 인물을 사실보다 더 진실하게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심리학도 공부해야 하고 시대극을 맡게 되면 그 시대를 이해해야 하므로 역사도 알아야 하죠. 다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대사와 몸동작을 통해 제3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훈련은 필수죠.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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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안 흥타령 춤 축제 외국인 참가자 공연 모습 2. 천안시립무용단 공연 3. 연극 <간계와 사랑> 을 설명하는 박상규 대표이사
 


국립극단 단원이 된 후로 줄곧 주인공을 맡았다. 그가 첫 주인공을 맡았던 작품은 김동리의 <무녀도>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인 무속인과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한 모자 간의 대립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었다. 그는 주로 번역극주인공을 많이 했다. 이 중 <간계와 사랑>은 그가 애착을 갖는 작품이다. “<간계와 사랑>은 독일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쉴러의 작품이에요. 시민비극으로서 신분이 다른 연인이 간계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로 당대 귀족 사회를 비판한 작품이죠.” 아직도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하는 듯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작품에 임할 때마다 얼마나 몰입하고 열정을 쏟는지 느껴졌다.

1984년부터 TV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국립극단의 주역 배우로 뒤돌아보지 않고 연극에 몰두하다가 2002년 국립극단의 단장이 됐다. 불혹의 나이에 대학원도 마쳤다. 가슴과 머리를 채우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 국립극단 단장으로 임기를 마친 후 교육 현장에 뛰어들었다. 여러 학교에서 러브콜이 온 가운데 그는 상명대학교를 택했다. 학교에서는 연극배우로서 발성과 신체 트레이닝, 화술, 연극제작 실습 등 배우에게 필요한 모든 과목은 거의 다 가르쳤다. 때로는 혹독하게 때로는 다독이며 현장 중심으로 학생들을 교육했다. 교수 생활 4년 반 만에 상명대 예술대학장 그리고 문화예술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배우, 국립극단 단장, 연극영화과 교수를 지내며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은 현재 천안문화재단 대표이사로 활동하는 데 큰 자산이 된다. 그의 SNS에는 ‘함께하는 세상인걸’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가 생각하는 함께하는 세상은 무엇일까. 문화를 공유하는 삶,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나혼자가 아닌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감동을 느꼈을 때 예술의 본질과 사명은 되살아나죠. 그것이 예술가로서 저의 소신이기도 합니다. 함께 화합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면서 어우러지는 삶 그속에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세상, 정말 이보다 좋을 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