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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죽고 살다


중요무형문화재 5호 춘향가 이수자

남궁정애 명창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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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험한 소리의 길
7살이었다. 소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김제국악원에 들어갔다. 판소리 명창 남궁정애(54)씨는 그렇게 소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저 신동 소리를 듣는 게 좋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과정은 혹독했다. “목을 계속 쓰다 보면 편도선이 붓고 목에서 피가 나와요. 실핏줄이 빨갛게 일어난 것이 겉으로 보일 정도니까요. 그런 상태가 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불렀어요. 자고 나면 흡혈귀처럼 입에 피가 묻어있을 때도 있었고 끊임없이 소리 몸살을 앓았어요. 성음(聲音)을 얻기위해서였죠.”

소리꾼들은 성음 하나를 내기 위해 수십 년 목에서 피를 내며 자신과 싸운다. 성음은 음색이나음질의 개념. 흔히 ‘득음’과 상통하는 말로 판소리에서 자신이 오르고자 하는 이상적 경지나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소리 세계를 구축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서양의 성악 발성은 소리를 공명시켜 인위적으로 곱게 뽑아내지만 판소리는 목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리를 낸다. 소리를 찍어내고, 굴려 내고, 깍아 내고, 휘아잡아 올리는 등 여러 ‘목’을 연마한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가 쉬었다 풀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원래 타고난 자신의 목소리 대신 더 두껍고 걸걸한 목소리를 갖게 된다.

소리를 하는 데 ‘좋은 목’의 조건 중 하나는 상하청(높은 음과 낮은 음)이 잘 나야 한다는 것. 서양 오페라 곡들은 대부분 음역이 두 옥타브를 넘지 않지만 판소리는 세 옥타브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 어쩌면 소리꾼을 일컫는 ‘명창(名唱)’이라는 칭호는 소리를 잘 내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혹독한 과정을 참고 인내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영원한 나의 스승 오정숙 명창
그녀의 나이 14살 때 동편제에 뿌리를 둔 판소리의 대가 정권진(1927~1986) 명창을 만나 <심청가>를 사사했다. 10~20대 때는 <심청가>의 매력에 빠져 살았다. <심청가>만 불렀다.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당시 그녀의 삶이 그랬다. 소리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던 아버지는 그녀가 10대 때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이른 나이에 어머니와 언니들을 책임져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 됐다. 그러다 30대 때 동편제 인간문화재운초(雲超) 오정숙(1935~2008) 명창에게 동초제 <춘향가>를 사사했다. 현재 불리는 판소리 중 가장 긴소리인 동초제 <춘향가>는 완창 하는 데 무려 7시간이나 걸린다. 남궁정애 명창은 지난 2011년 국립극장에서 동초제 <춘향가>를 완창했다.

“춘향형상 살펴보니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 방으 찬자리으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중략)손가락에 피를 내어 사정으로 편지허고 간장의 썩은 눈물로 임의 화상을 그려볼까 이화일지 춘대우의 내 눈물을 뿌렸으면 야후문령 단장성의 임도 나를 생각헐까… (중략)내가 만일 임을 못보고 옥중 원혼이 되거드면 무덤근처 있는 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요 무덤 앞의 섯는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한을 알어주리가 뉘있드란 말이냐 퍼버리고 앉어 울음을 운다.” <춘향가>중 <쑥대머리> 가사의 일부다.

그녀가 <춘향가>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옥중의 춘향이가 임을 그리워하며 부른 <쑥대머리>다. “저는 특히 슬픈 대목에서 감정이입이 잘 되요. 스스로 생각해도 대중 앞에서 애환과 슬픔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재주가 비상한 것 같아요. 10~20대 때는 <심청가>를 부르며 눈물짓는 일이 많았고 30대 이후에는 <춘향가> 중에서 특히 <쑥대머리>를 부르며 많이 울었어요. 사또의 수청을 거절해 옥에 갇힌 춘향이가 달빛 아래에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귀신처럼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부르는 가장 절박하면서도 허무한 내용의 가사에요. 내일이면 죽는데 임은 오지도 않고 일장 편지도 없으니 이제 나는 속절없이 죽는구나 하는 그 심정이 마치 제 심정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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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숙 명창(운초오정숙 판소리 보존회 제공)
 




그녀의 소리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오정숙 명창을 만난 것이다. 오정숙 명창은 판소리 다섯마당(춘향가·흥보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을 완창한 최초의 여성 명창이자 국내 판소리 양대 계파를 이루는 ‘동초제’의 대모로 불린다. ‘동초제’는 ‘동편제’와 ‘서편제’ 등 여러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점만 골라 집대성한 국내 최대 판소리 계파 가운데 하나다. 오정숙 명창은 ‘동초제’를 창시한 거장 동초(東超) 김연수(1907~1974) 선생의 유일한 제자로 1991년 스승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됐고 그 계보를 남궁정애 명창이 이어가고 있다. “저는 감히 오정숙 선생님을 닮고 싶고 그 분의 소리 인생을 재현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대중과 판소리로 소통하시고 소리로는 선생님만큼 훌륭하신 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가던 길을 가고 싶어요. 그분의 소리 인생을 따라서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제자들에게도 그런 감동의 소리를 가르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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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애 모임에서 판소리하는 남궁정애 명창
 




시련은 성장의 밑거름
그녀는 19세 때 들어가기 어렵다는 국립창극단에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붙었다. 입단하자마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주연도 꿰찼다. <선화공주>를 창극으로 올리면 공주 역은 그녀의 몫이었고 <심청가>를 공연하면 심청이 역할을 했다. 판소리로는 전국 주요 경연대회의 상이라는 상은 거의 그녀 차지였다. 1986년 남원전국명창대회 판소리부문 일반부에서 대상, 1987년 동아콩쿠르에서는 금상을 받았다. 1990년에 있었던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문에서 또다시 장원을 했고 2003년에 있었던 박동진 판소리 명창대회에서는 명창부 대상을 받았다. 그러다 학문으로 눈을 돌렸다. 대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 국립창극단을 그만두고 26살 되던 해에 뒤늦게 중앙대학교 음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내친김에 석사과정도 마쳤다. 그러나 이토록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도 예상치 못한 시련은 찾아왔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당연히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국립창극단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국립창극단 시험에서 떨어지고 전주에 있는 전북 도립국악원 창극단 부단장으로 가게 됐어요. 당연히 국립창극단의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전주가 마치 유배지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때는 지금과 달리 전주의 무대가 그리 넓지 않았거든요. 그때 결심했죠. 반드시 훌륭한 명창이 되어 보여주리라고. 일단 제 방안에 당시 국립창극단 시험 심사를 맡았던 선생님들 얼굴을 다 붙여놓고 그분들을 보면서 반드시 명창이 되어 내 존재감을 알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연습에 몰두하면서 밥도 잘 안 먹고 사람도 잘 안 만나면서 오로지 소리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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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끈임 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그 결과 그녀는 2007년 서편제 보성소리축제에서 <춘향가> 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인 <쑥대머리>를 불러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편제’의 본고장인 전남보성에서 ‘동편제’ <춘향가>를 불러 대상을 받은 것은 적지(敵地)에 가서 포문(砲門)을 열게 한 것과 같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생애 정말 엄청난 감동이 있던 날이죠. 대통령상은 판소리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서편제’의 본고장인 보성에서 ‘동편제’ <춘향가>를 불러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당시 오정숙 선생님도 제자들을 불어 모아 ‘우리 정애가 적지에 가서 대통령상을 받아왔다’며 매우 축하해주셨어요. 제 생애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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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두타연에서 공연 펼치는 풍류애 모임 회원

 



남궁정애 명창은 운초 오정숙 판소리보존회 경기도지부 회장을 맡아 자신의 스승 오정숙 명창의 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 판소리가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대중에 더 가까이 가고자 했던 오정숙 명창의 뜻을 받들어 우리 소리를 사랑하는 모임 ‘풍류애’를 만들어 제자들과 함께 지난 1년간 전국 명승지를 다니며 시민들과 함께 소리를 불렀다. 일반인들이 어려워 하는 판소리 <춘향가> 가사를 알아듣기 쉽게 푸는 작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춘향가> 사설을 조금 더 대중들이 친숙하게 생각하도록 가사를 해석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에요. 저의 제자 중 조영선 인권변호사가 그 과정을 맡아서 할 거에요. 그렇게 되면 이해하기 쉽고 더 공감할 수 있는 춘향가가 대중들에게 보급될 겁니다.”

50년 가까이 일평생 소리에 모든 혼신을 쏟아 부은 명창 남궁정애.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 물었다. 소리로 인정받는 명창인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직도 좋은 소리를 내고 싶은 열정이 가득해요. 더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아요. 항상 마음속에는 소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요. 아직도 제 소리에 제가 만족을 못해요. 더 좋은 소리, 더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에 여전히 목말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