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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e En Rose’를 꿈꾸다

한지조형예술가 로즈박 작가


글, 사진.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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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불어 넣다
생(生)과 사(死)가 물에서 이뤄진다. 죽고 사는 것이 숙명인 듯 물에서 치대고 으깨져 산산이 부서졌다가 다시 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이것이 한지의 운명이다. 그렇게 생사를 넘나들며 생명의 탯줄을 잡았을 때 비로소 천년의 세월을 산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고 소박한 멋을 가진 한지의 탄생이다.

반면 여기 한 시절 자신의 모든 열정과 사랑을 불태워 붉게 타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장미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그렇듯 장미 또한 시간의 유한성에 갇혀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하며, 가장 붉게 타오르고 싶다. 장미에게도,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도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한지조형예술가 로즈박 작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시간의 연속성을 불어넣었다. 영원이라 명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천년을 간다면 ‘영원’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천년을 가는 한지와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장미가 로즈박의 손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헌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새로우면서도 낯설지가 않다. 본디 있었던 것들이 자신을 죽이고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물성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로즈박의 아이콘은 ‘장미’다. 그에게 있어 장미는 여성의 근원인 성(性)을 나타낸다. 그에 따르면 장미는 여성을 대변하는 물질로 캔버스의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여성, 성으로 생태의식을 전한다. 그는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한지와 장미를 선택했다. 거기에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지는 물에서 만들어지는 물의 종이에요. 작품에 사용된 한지는 장미를 숙성시킨 후 염료를 배합해 또 물을 통해 염색하죠. 죽은 장미가 다시 태어나니 생명의 순환이 되는 것이죠.”

천년의 세월을 사는 한지가 한국 여성을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하는 로즈박 작가. 그를 지난 5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만났다. 로즈박 2017 장미조형설치전 ‘장밋빛 인생으로’에서 만난 작가는 장미처럼 화사했다. 목소리에서는 달콤함이 묻어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나 관점이 따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사랑스런 목소리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작품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장미는 로즈박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아이콘이죠. (여기 있는 작품들의) 주제는 장미인데 각각의 작품을 구상하는 데 있어 그것을 이루는 물성들의 형식은 바뀌게 되죠. 다시 말해 기본 개념으로서 작가인 제가 가지고 가는 ‘생명과 탄생’의 의미는 그대로 가면서 형식이 바뀌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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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탄생-Red> 2017, 한지와 혼합매체, 채색, 124×490 cm
 


생명과 탄생을 말하다
로즈박의 장미는 물속에서 다시 태어나 천년을 살게 됐다. 장미는 물의 종이 한지를 입고, 혹은 한지가 열정과 사랑의 상징인 장미를 덧입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서로를 덧입은 존재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100번의 손이 가야 한지가 하나 나와요. 그렇게 탄생한 한지가 천년을 가죠. 이 장미 한 송이(장미 코사지)를 만들 때는 천 번, 만 번의 손이 가요. 물론 작품 속 모든 장미가 그렇게 작업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특별히 정성들여 만든 장미는 그렇게 탄생의 과정을 거치죠.”

그가 작품에 사용하는 한지는 직접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미를 말리고 발효시켜 만든 물에 한지를 물들인다. 그것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수없이 또 색을 입혀 하나하나 꽃잎을 염색한다. 그의 작품 어느 것 하나 손이 덜 가는 작품이 없다. 직접적으로 장미가 형상화되지 않은 작품들에도 한지가 사용된다. 꼭 붉은 빛 장미가 아니어도 좋다. 버려진 자제들과 만난 장미는 그 빛이 붉든, 푸르든 혹은 검게 물든 장미일지라도 결국은 생명 탄생의 고귀함을 말하고 있다. 크고 하얗게 피어난 장미는 말해 무엇하랴.

“2015년 봄 무렵이었어요. 파주 운정지구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했던 예쁜 동네들이 며칠 사이 하나씩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사라진 동네를 다니다보면 과거 그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들이 버리고 간 장롱, 아가의 신발, 얼룩진 수첩, 수도의 물관, 죽은 자들이 옮겨가 움푹 파인 묘지에서 이생의 탯줄처럼 둘둘 말린 호스 등이 이상하게 제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 여기 있는 작품들이 그 사람들이 떠나고 난 자취에서 건져낸 것들을 연결해서 탄생한 것이죠.”

사람들의 과거, 어쩌면 상처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을 연결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든 로즈박.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상처받은 자들을 치유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2013년 그해 겨울은 정말이지 너무도 추웠어요. 작업실의 모든 사물이 얼음 성에 하얗게 갇혀 있을 때 하필 제 눈에 띈 게 있었어요. 장월교라는 오래된 다리 근교 낡은 창고 앞 공터에 버려진 한무더기의 나무상자였죠. 미술품을 포장했던 박스에는 ‘뮤지엄’이라는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어요. 그 상자에서는 이국의 나무 향기가 났어요. 거칠고 투박한 나무상자 패널의 못을 빼고 다듬으며 옹이진 나무 몇몇 개는 난로 속에 던져 넣었죠. 어느새 저는 붉은 새와 붉은 여자의 나신 그리고 단단히 결속된 흰 장미들을 패널 위에 끌어다 놓았어요.”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그 속에서 뜨거운 생명들을 탄생시켰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역시 4년 전 추운 겨울을 작가와 같이 난 작품들이다. 작가는 4년의 기간을 거쳐 각각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작품에 사용된 소재들은 버려진 것들이지만 다른 작업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그의 작품에 조심스럽게 의미를 부여해 본다. ‘부활의 작품’이라고. 그의 작품에 쓰인 한지도, 장미도 새롭게 태어난 것이니 죽음과 부활을 모두 경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우주’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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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탄생-Blue> 2017, 한지와 혼합매체, 채색, 124x49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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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말하다
로즈박, 그의 작품이 생명과 탄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작가가 가진 세계관과도 맞아 떨어진다. 생태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는 또한 퍼포먼스 작가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생태 작가인 그는 작년 11월 초청을 받아 미국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에서 치유의식의 하나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해 5월 샌버나디노에 큰 산불이 났던 것을 치유하는 의미에서다.

“샌버나디노는 미국에서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에요. 그곳에 큰 비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가 기둥 끝까지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거였어요. 호흡을 멈춰가며 하는 퍼포먼스인데 바람이 불때 제가 중심을 못 잡으면 자칫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런데 제가 공연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멎고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져 비닐 기둥을 통과하는 거예요. 그 순간 자연과 조우가 됐던 것 같아요.”

바람이 없는 날도 거의 없거니와 클라이맥스의 순간 빛이 비닐 기둥을 통과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다. 단지 그의 퍼포먼스가 공연만을 위한 형식적인 것이었다면 그런 기적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진정 사람을, 세상을 사랑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자신의 닉네임이 ‘사막의 장미’라고 스치듯 얘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치유받고, 긍정의 에너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글귀가 떠올랐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로즈박,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 안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살아오면서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마음을 쏟고 공들였던 그 시간들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을 만나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찾아 ‘장밋빛 인생’으로 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