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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관련해 왜곡된 사실(史實)을 바로잡고자 백시종 작가가펜을 잡았다. 그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킨 민간인 33인이 사실은 미역을 채취하고 강치를 잡아들이는 데 열을 올리고 자신들의 배만 불린 11인이라고 말한다.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강치>가 출판될 수 있었던이유는 의문의 독도의용수비대를 눈으로 본 故 김산리 옹이 건넨 기록 덕분이었다.

독도의용수비대가 활동할 당시 김산리 옹은 울릉도 경찰서 경비과장이었다. 그는 독도에서 그날 그날의 상황을 ‘근무 일지’에 기록했다. 지난해 그는 백시종 작가를 만나 당시 근무 일지와 함께독도의용군(독도의용수비대)의 실체를 밝힌 각종 증명서, 진정서, 고발장 등을 보여줬다. 진실을 알려달라는 게 그의 소원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재향군인회란 이름으로 상이용사들이 모여 공권력을 흔들었던 때가 있었다. 주동자 홍 아무개를 비롯한 10명의 행패를 막기 위해 당국은 당시 최대 이권사업이었던 독도미역채취권을 안겨줬다. 그래서 재향군인 11명이 6개월간 독도에 체류하게 됐다. 이들에게 독도 수호의 사명은 어쩔 수 없이 떠넘겨 받은 것이었다. 울릉도경찰서는 재향군인 11명에게 미역을 채취하면서 독도를 지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이들은
마지못해 응했다. 김산리 옹의 기록에 따르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교전을 벌여 일본 군함을 퇴치했다거나 일본 국적 무장선박 선장과 담판을 벌였다거나, 일본 조사선을 나포해 독도의용군 전용선박으로 사용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김산리 옹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이 왜곡,과장됐다는 것이다.

지금 독도의용수비대의 위상은 어떠한가. 그들의 영웅담과 우리영토를 지키겠다는 고매한 정신을 영화에 담고자 정·관·학계가 뭉쳤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마지막 의병’이라는 수식어도 붙였다. 알고 있는 사실(事實)과 다른 김산리 옹의 이야기를 들은 백 작가는 펜을 쥘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대중에게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김산리 옹과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이다. 평소 사건사고 소식을 모은 후 글을 쓰는 백시종 작가였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80이 넘은 어르신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빠르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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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요? 재향군인 11명은 경찰에게 받은 총으로 독도에 불법 상륙한 일본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정력에 좋다고 소문난 강치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였지요. 그들이 독도에 있는 그 6개월간 세계적인 희귀종인 독도 강치들은 무참히 죽어갔다고 합니다.”
 
노인에 따르면 불법 상륙하는 일본인들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것은 ‘독도의용수비대’가 아닌 울릉도 경찰이다. 당시 독도에 가기 위해선 90도 절벽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이 때문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희생된 경찰 동료가 상당수라고 했다. 게다가 일본인들과의 총격전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지켰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에 관한 모든 기록이 말살되고 날조된 ‘독도의용수비대’만이 남았다.

백 작가는 소설 <강치>와의 인연이 우연한 만남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있는 종로3가의 어느 건물 입구에 군복을 입고 측량기기 옆에 서 있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며 “이 책을 쓰기 몇 해 전부터 이곳을 지나가다 동상을 보게 됐고 동상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상은 알고 보니 바로 독도의용수비대를 이끌었던 대장 홍 아무개였다. 그는 동상의 신원을 알게 된 바로 그 이튿날 새벽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 초부터 시작해 5개월 만에 집필을 끝냈지만, 선뜻 책을 맡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워낙 민감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소송 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강치>를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거의 없었죠. 가까스로 만난 현재 출판사 덕에 소설 <강치>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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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리 옹은 진실을 규명하고자 40여 년의 세월을 목청껏 외쳤다. 하지만 속 시원히 들어주는 곳이 없었다. 40여 년이면 강산이 네 번은 바뀌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 현실은 아직도 기득권 중심과 보여주기 식의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는 여론이 있는 만큼 독도의용수비대의 진실을 밝히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백 작가는 <강치>가 나올 수 있도록 해준 김산리 옹에게 수고를 돌렸다. 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에도 꿋꿋이 버텨준 그에게 이 책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출판되기 한 달 전에 김 옹이 별세했기 때문이다.

책도 책이지만 백 작가는 <강치>가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가 제격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 책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영화로 만들어져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독도의용수비대. 단순히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유야무야 지나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도, 더 나아가서 근·현대사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우리가 진실을 알아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백시종 작가는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글쓰기 이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림엔 월등하게 재주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손에서 붓을 놓았다. 대신 펜을 잡았다. 기대하진 않았지만 대한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신춘문예에 등단되면서 제2의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