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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백범이 꾼 큰 꿈


글, 사진. 김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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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진가 이명동 선생이 경교장에서 촬영한 백범 김구 선생 최후의 사진(뉴시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 운동은 평화적인 비폭력 운동이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정당한 외침을 일제는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우리는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이일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독립을 이룰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중의 하나가 같은 해 4월 13일(11일이라는 견해도 있음)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2019년에 대한민국은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다. 이에 대한민국임 시정부가 지닌 의미를 재조명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 번영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 3일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임시정부 더 나아가 독립운동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있으니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 8. 29~1949. 6. 26) 선생이다. 선생이 한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또해방 후에는 분단을 막기 위해 바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보면 선생이 가졌던 사상을 잘 알 수 있다. 기자는 그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부분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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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해임시정부청사 전경(뉴시스) 2. 상하이임시정부 김구 선생 집무실 3. 상해임시정부 입구 푯말
 

나는 내무총장인 안창호 선생에게 정부의 문지기를 시켜달라고 청했다. 그는 내가 벼슬을 시켜주지 않은 데 대한 반감이라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의혹과 염려의 기색을 보였다. 나는 종전 본국에서 교육사업을 할 때 어느 곳에서 순사시험과목을 보고 집에 가서 혼자 시험을 쳐서 합격이 못 되었다는 것과 서대문감옥에서 징역 살 때 훗날 만일 독립정부가 조직되거든 정부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다는 것, 또는 이름을 ‘구’로, 별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친 것까지 설명하고 평소 나의 소원을 모두 말하였다.

도산은 쾌히 승낙하며 자기가 미국서 보니 백악관을 지키는 관리가 있었다며 백범 같은 이가 우리 정부청사를 지키는 것이 적당하므로 내일 국무회의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에 홀로 기쁘고 자부심이 생겼다.

이튿날 도산은 뜻밖에도 나에게 경무국장의 임명장을 주며 취임 시무를 권하였다. 나는 고사하였다. 순사의 자격에도 못 미치는 내가 경무국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백범은 다년간 감옥에서 지내 왜놈의 사정을 잘 알고 혁명시기에는 정신을 보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라며 기왕 임명된 것이니 거절하지 말고 공무를 맡으라고 강권하므로 취임 시무하였다.

나는 5년 동안 이 직무를 맡아 했는데, 이 경무국장직은 신문관·검사·판사로 형 집행까지 하게 되는 직책이었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중략>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駘蕩)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으면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 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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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심양성'아라 적은 김구 선생 휘호(뉴시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의, 자비, 사랑이 충만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文化)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 또는 그에 따른 정신적·물질적인 성과’이다. 개인의 하루하루가 모여 그의 삶을 만들고, 각자의 삶이 모여 나라의 현재와 미래가 결정된다. 그러니 선생이 그토록 바랐던 자유로운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선생이 그토록 바랐던 진정한 세계 평화를 우리나라에서부터 실현하기 위해 선생의 당부를 마음에 두고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가?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주변에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이다. 그러니 평소에 ‘성(聖)스러운 것’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성스러운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가까이 두고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결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김구 선생의 서거 69주기를 앞둔 지난 6월 13일 학생들, 지인들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기념관과 선생의 묘역을 찾았다. 선생이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전용 운동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효창운동창이 있었다. 사실 효창공원을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처음 조성한 분이 백범이다. <백범일지>를 보면, 왜적이 투항한 후 고국에 돌아온 백범이 일본에 머물고 있던 박열(朴烈)에게 부탁해 조국 광복에 몸을 바쳐 무도한 왜적에게 학살당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3열사의 유골을 환국하게 해서 효창공원에 봉장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 곳에 뜬금없는 축구 전용 운동장이 1960년에 들어선 것이다. 이후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5년 시작되었는데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효창구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전용 운동장이란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난달 전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은 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그것도 2:0으로 꺾었다(2004년 12월 19일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독일 국가대표팀을 3:1로 이긴 적도있다). 물론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지난대회 우승팀이자 세계 1위인 팀에게 완승했으니 실질적인 우승을 했다고 해도 그리 억지는 아닐 듯하다(실제로 이 경기는 역대 월드컵 대회 중 가장 놀랄만한 2번째 경기로 꼽힌다).


이번 월드컵대회는, 축구는 그 넓은 운동장 어디로 둥근 공이 갈지 알 수 없으니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기 전까지는 내내 긴장해야하는 스포츠란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대회였다(16강전인 벨기에와 일본의 경기만 봐도 벨기에가 후반 중반까지 0:2로 뒤지다가 내리 3골을 넣고, 후반 추가시간에 종료 30여 초를 남겨놓고 골을 넣어 8강에 진출했다). 그러니 선수 하나하나의 기량이 매우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따져볼 때 독일 선수들의 기량은 월등했다 하겠다. 이는 독일 선수들 전체 몸값이 약 1조 1093억 원으로 우리 선수들의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어림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1%의 가능성을 믿고 모든것을 쏟아 부은 결과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2018 러시아월드컵에 대해 좋은 기억만을 가질 수는 없으니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선수나 관중들의 태도 때문이다. 일본은 폴란드에 0:1로 뒤지면서도 ‘페어 플레이 포인트’로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종료 때까지 10여 분 동안 공을 돌리는 ‘더티플레이’를 했다. 한국축구와 일본축구가 거둔 결과를 보고 어떤 이는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나 세계인의 마음을 얻었고, 일본은 16강에 올랐으나 세계인의 인심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거기다 일본 관중들은 어땠는가? 전범기(戰犯旗)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흔들어 대고, 자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도 아닌데 거기서 자국 국기를 흔들어대지 않았던가 말이다. 해마다 8월이면 잃었던 빛을 다시 찾은 반가운 날(光復節)을 보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와 현재 문제(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하며 공공연하게 도발하는 것 등)를 생각하면 분한 마음이 강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재주와 정신 그리고 과거사를 통해 배운 것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대륙과 해양으로 무궁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살려서, 우선 남과 북의 허리를 잇고 평화세계의 주연 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오르자. 그것이 문화의 힘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백범 선생이 꾸었던 그 큰 꿈을 이루는 길이요, 밝은 세상을 사는 후손된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