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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평화요,

그대 더운 가슴 안고

오오


글, 사진. 김응용 사진제공. 김동명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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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이번 올림픽은 평창뿐 아니라 강릉과 정선에서도 열린다. 지역별로 역할(?)을 나누고 있는데 평창에서는 개・폐회식과 대부분의 설상 경기가 열리며, 강릉에서는 빙상 종목 전 경기가, 그리고 정선에서는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열린다.


그간 우리나라는 전 세계인이 모이는 잔치를 준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강원도의 교통 여건도 매우 좋아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경강선 KTX 개통이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는 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을 기념해 이번호부터 세번에 걸쳐 강릉과 관련 있는 문인과 문학관을 다룰 요량으로 취재차 지난 1월 첫 주말KTX에 몸을 싣고 강릉으로 향했다. 이번호는 그 첫 번째로 김동명문학관이다.

김동명은 물질과 명예를 멀리하고, 굴욕과 치욕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비판했다. 반면에 자연을 사랑하였고, 배움을 열망하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컸다. 시인다운 자유로운 영혼으로 비록 가난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강릉 사천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할 듯이 서있는 김동명문학관은 그런 시인의 기상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김동명문학관에 가면 ‘김동명의 연인’이 있다. 그녀는 바로 문학관을 지키고 있는 김혜경 시인이다. 김동명의 시 세계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칭 ‘김동명의 넷째’가 되었다.

김동명은 생전에 결혼을 세 번 했다(첫 번째 부인은 아이를 낳고 보름 후, 두 번째 부인은 병으로 사망).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픔이 많은 시인이었다.

기자가 김동명문학관을 방문한 시각이 정오였는데 하필 점심시간과 겹친 것이다. 일정이 촉박해 난감해하던 기자를 위해 김혜경 시인은 기꺼이 자신의 점심시간을 할애해서 김동명의 시 세계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다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지역의 참맛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섭국’이었다. 홍합은 뼈의 형성을 돕는 오메가-3와 망간이 풍부해서 관절염에 특히 효과가 좋다고 하는데 그 홍합을 넣어 끓인 국을 그 지역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섭국은 시인의 장담대로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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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문학관
 




문학관에서 제공한 자료를 통해 본 김동명의 발자취는 다음과 같다.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은 1900년 2월 4일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노동리 71번지에서 아버지 김제옥(金濟玉)과 어머니 신석우(申錫愚) 사이에 독자로 출생해, 1908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1920년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함경남도 흥남과 평안남도 강서에서 교원으로 근무하였는데, 강서에서 근무할 때 대동강 기슭을 거닐며 5편의 시를 최초로 습작했다고 한다. 그 후 평안남도 신안주에서 유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할 때 현인규(玄仁圭)로부터 보들레르시집 <악(惡)의 꽃>을 빌려 읽고 감동받아 즉석에서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헌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門)을 열어주시면>을 창작했다고 한다. 강원도 원산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면서부터는 여름방학이 되면 여도(麗島)에서 습작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후 초허는 1923년 <개벽> 10월호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門)을 열어주시면> <나는 보고 섯노라> <애닯은 기억(記憶)>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내 마 음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힌 그림자를 안꼬, 옥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 지리다.

내 마음은 촛燭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어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最後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우리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落葉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므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히 그대를 떠나리다.

-시집 <파초>, 1938년-



은유(隱喩, metaphor)를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구절이 바로 1연의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오오’이다. 내 마음은 호수와 닮았다. 그러니 그대가 내게 오려면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와야 한다. 언제 보아도 기막힌 표현이다. 그런가하면 2연에서는 시적화자가 ‘사랑’이나 ‘정열’과 같은 자신의 감정을 ‘촛불’에 옮겨 넣어서 타오르는 모습으로 형상화 시켰다. 그래서 역시 감정이입을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한편 김동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파초>에는 ‘정열’이라는 시어가 직접 나온다. 파초(芭蕉)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러니 추운 겨울에 파초는 따뜻한 남쪽 나라를 얼마나 그리워 할 것인가? 아직 올 겨울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겨울을 맞은 북반구가 기상이변으로 인한 맹추위에 힘들어 했다. 지난달 7일 미국 동부는 영하 38도(체감기온은 무려 영하70도)였다! 반면에 여름을 보내고 있는 남반구는 폭염에 시달렸다. 같은 날 호주 시드니의 온도는 47.3도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지구의 기온변화가 극단적이게 된 이유를 지구 온난화에서 찾는다. 북반구의 경우는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냉기가 아래로 내려온 탓이고, 남반구 역시 육지와 바다가 뜨거워진 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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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을 이야기하다 보니 지난 2013년 8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서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궤도를 달리는 영화 말이다. 사실 (영화와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경강선 KTX를 타고 강릉으로 가면서 영화 설국열차를 생각하며 창밖으로 눈이 많이 쌓인 장관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다가 간혹 눈을 조금씩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강릉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2월에 눈이 더 많이 온단다.

그런데 기자가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렸던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영화를 보면 같은 공간인 기차를 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다르다. 가장 극단적으로 최상층과 최하층으로 나뉜다. 그것을 평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라는 공간에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면서도 국가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기에 그 국민들의 삶 역시 매우 다르다.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고 언제 자신의 집에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날아들지 몰라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이 꿈결 속에서도 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평화일 것이다.

지난해까지 우리 한반도를 뒤덮던 냉기(온난화로 힘을 받은 동장군이 부리던 위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던)가 온기로 바뀌고 있다. 어느 주간지의 표현대로 평창이 ‘평화의 창’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2018년 새해가 되었다고 갑자기 된 일이 아니다. 평화를 열망하는 더운 가슴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서 오랫동안 공들여서 지핀 화해의 기운이다. 비록 지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것을 기꺼이 다른 이와 나누겠다는 사랑을 가진 이들 말이다. 그네들의 더운 가슴이 내 마음에 평화를 주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평화를 바라는 더 많은 더운 가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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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명

나는 두 팔 만으로도 족히
종다리 같이 가볍게 날을 수 있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은
처마 끝에 매 달린 비인 조롱(鳥籠)일뿐.

과거(過去)와 미래(未來)가
달빛 같이 창문(窓門)에 서리는 거기,

영영 가시었다던 어머님이
다시 돌아오시고,

내일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으되
근심을 모르는 나라.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그이의
흰 손길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눈물 겨웁게 고맙고도 아름답다.

-시집 <하늘>, 194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