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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路찾기

재미가 있는 곳,

인사동


글, 사진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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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오면 인사동에 간다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서울여행의 단골 장소로 찾는 곳 중 하나가 인사동이다. 인사동은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에 속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원동, 승동,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등이 인사동에 속했다. 현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각각 관인방과 대사동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대사동(大寺洞)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고려시대에는 흥복사,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 가깝게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모인 태화관도 이곳 인사동에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12층 높이의 태화빌딩이 서 있다.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콘텐츠 즉 ‘한국적인’ 무엇인가를 만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초행길이라도 운이 좋으면 흡사 미로처럼 얽힌 인사동 어느 골목에서 한국을 느끼고, 맛보고, 즐길 수 있다. 물론 서구화된 생활방식과 높은 빌딩 숲 사이 작은 동네에서 올곧이 한국다움을 경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러함에도 이곳 인사동이 사랑받는 이유는 전통을 이어가려는 이들, 전통을 재해석해 대중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인사동에도 아픈 기억은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골동품 상점들은 문화재 수탈의 창구가 되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한 숱한 문화재들이 태어나고 자란 조국의 품을 떠나 이국땅에서 타향살이를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다.

인사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화랑, 표구점증 미술품 관련 상점이 모여들기 시작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전통을 느끼고 싶다고? 그렇다면 인사동이지!”라는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아무래도 1988년 서울시가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한 영향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이후 인사동은 2002년 4월 24일 ‘제1호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인사동 골목, 들여다보자
한국적인 맛과 멋을 찾기 위해 인사동을 찾지만, 미로 같이 얽힌 인사동 골목골목에는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들도 적지 않다.

구경하는 찻집 ‘여원’은 다양한 종류와 가격대의 찻잔을 판매하는 곳으로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들어가 구경하기에 좋은 곳이다. 한눈에도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사장님이 그 멋스러움만큼 편안한 미소로 사람을 맞아주니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찻잔에 담길 품질 좋은 차와 커피계의 대세로 떠오른 더치커피도 만날 수 있다.

방향 감각이 둔한 기자에게 골목이 많은 길거리는 그 자체만으로 미로처럼 느껴진다. 길치인 걸 감안해 어디를 가든 남들보다 30분 정도 더 계산해 길을 나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헤매다 약속시간에 늦을 때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몹시 무더운 날이나 추운 날 길바닥에서 헤매다보면 억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금쪽같은 시간이 아까워서 이기도 하다. 허나 인사동처럼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볼 것 많은 곳이라면 헤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구경하는 찻집 ‘여원’에서 나와 골목골목을 돌아 나가다 보니 노란색 바탕에 먹으로 쓴 듯한 느낌의 작은 간판이 하나 눈에 띈다. ‘우리 美’라는 한복대여 전문점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한복의 종류도 다양하니 그 색이 참 곱다. 한복에 달 수 있는 노리개도 단아한 것부터 화려한 것까지 그 모양과 색도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한복을 보고 있으니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은 시간을 내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으로 나들이를 가야 할 것만 같다. 취재를 나갔던 날도 인사동 곳곳에서 한복을 멋스럽게 차려 입은 어린 친구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일상복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입기 편하고 보기에도 예쁜 개량한복을 맞춰 입고 나온 여학생들이 연신 인사동 곳곳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역시 한복이 유행이긴 유행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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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 ‘개량한복’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돌실나이’다. 돌실나이 한복은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 층에 좀 더 적합한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중후한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돌실나이 인사동 본점에서 만난 생활한복도 딱 그랬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전통한복의 선과 색이 살아 있다.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구매욕구가 솟아날 만큼 고운 옷들이 사람을 반긴다. 오래전 유행했던 광고 속 대사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가 아닌 “부모님께 한복 한 벌 해드려야겠어요~”가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다음 소개할 곳은 ‘명신당필방’이다.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명신당필방은 김명 사장과 남편인 이시규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김명 사장이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편 대신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남편은 서예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부가 함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명신당’의 이름에 걸맞다. 필방의 이름에 쓰인 밝을 ‘명(明)’은 해와 달이 만나 한 글자를 이룬 것으로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필방을 잘 운영해 나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필방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종류의 붓과 벼루, 먹, 돌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캘리그라피를 위한 재료들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만을 위한 ‘도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곳 명신당필방의 매력이다. 김명 사장이 도장을 사용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받는 이미지와 느낌에 따라 전각을 새겨주기 때문이다. 나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나보는 재미가 남다를 것 같다.

이날 인사동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 특색 있는 강의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해서였다. 연령대도 다르고 직업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주역(周易)>과 동양의학 최고(最古)의 고전으로 꼽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대해 배우고 대화하는 모습이 살짝 낯설면서도 정감이 갔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들을 쉽게 풀어주니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가 쏠쏠했다. 강의 내용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준비도 없이 참석하게 됐지만 그날 귀동냥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혹 강의가 듣고 싶다면 인사동 수도약국 4층에 있는 사무실의 문을 한 번 두드려보자. 강의는 <주역>과 <황제내경>으로 각각 화요일 저녁 7시와 목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단, 한자(漢字)의 강한 압박감을 이겨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곳에 담지는 못했지만 인사동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많은 곳들이 인사동을 이루고 있는 퍼즐조각과 같다. 그 조각조각들이 모여 ‘한국적인’ 인사동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은 아닐지 모르지만, 변화의 속도를 늦춰가며 전통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기에 인사동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