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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모양의 우산을

30년 동안 쓰고 다니다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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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본래 햇볕을 가리는 데 쓰는 양산에서 비롯되었다. 우산을 뜻하는 ‘엄브렐러’라는 말이 ‘그늘’을 의미하는 라틴어 ‘움브라’에서 왔다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최초의 우산은 오늘날 이라크에 속하는 아카드에서 기원전 2334~2279년경인 사르곤 왕 때에 발명되었다. 사르곤 왕의 승전비에는 전쟁터로 나가는 왕의 머리 위에 시종이 커다란 우산을 씌워 주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때의 우산은 비가 귀하고 햇볕이 뜨거운 고대 중동에서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고귀한 왕의 몸을 보호해 주기 위해 생겨났다.

고대 아시리아나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산은 왕족이나 귀족들만 사용했는데, 높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이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공작 깃털과 파피루스로 우산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우산은 값이 비싼데다가 그 모양이 하늘의 신인 누트 여신이 땅을 덮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어서, 일반 백성들은 감히 쓰고 다닐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은 우산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다. 우산은 여자들이나 쓰고 다니는 나약하고 하찮은 물건이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상류층 여성들은 따가운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고 우산을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 우산이 발명되었다. 놀랍게도 그 우산은 오늘날의 우산처럼 접고 펼 수 있는 금속제 양산이었다. 그리고 비를 막아 주는 진짜 우산도 있었다. 기름 먹인 종이에 대나무 살을 붙여 만들었다.

유럽에서 우산이 비를 피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것은 18세기경부터였다. 영국의 이름난 여행가 조나스 핸웨이가 페르시아에 갔다가 중국에서 전래된 우산을 처음 본 것이다. 그는 이 우산을 영국으로 가져와 우산을 쓴 채 런던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자 우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조나스 핸웨이를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조나스 핸웨이는 아랑곳없이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꼭 우산을 쓰고 다녔다.

마부들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사람들은 비가 오면 꼭 마차를 부르는데, 우산이 널리 보급되면 자신들의 생계에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조나스 핸웨이를 길에서 발견하면 일부러 마차를 그에게 접근해 흙탕물을 튀겼다고 한다.

조나스 핸웨이는 30년 동안 꿋꿋하게 우산을 쓰고 다녔다. 그 뒤에 사람들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사는 것이 마차를 부르는 것보다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산은 19세기 중엽에 와서 신사가 쓰고 다니는 것이 크게 유행할 만큼 널리 보급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박쥐 모양의 우산을 만든 것도 조나스 핸웨이다. 영국에서는 우산을 그의 이름을 따서 ‘핸웨이즈’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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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옷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옛날에 원시인들은 나뭇잎과 풀을 엮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서 비옷으로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기름 먹인 파피루스나 왁스 먹인 린네르(아마(亞麻)의 실로 짠 얇은 직물의 총칭),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두건 달린 망토를 비옷으로 이용했다. 중세에는 모피로 만든 짧은 외투가 비옷을 대신했으며,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고무나무 수액을 발라 방수포를 지었다.

고무 비옷을 발명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찰스 매킨토시였다. 1823년 그는 고무를 옷에 발라 방수 코트를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이 비옷을 ‘매킨토시’라고 불렀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888년에는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버버리가 고무 비옷보다 가벼운 비옷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버버리 코트’다. 그는 비옷을 고무가 아닌 방수 옷감 개버딘으로 만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비옷은 군복으로 채택되었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즐겨 입는 코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싱가포르는 호랑이를 사자로 착각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면서요?”

‘싱가포르’는 사자를 뜻하는 ‘싱가’와 마을을 뜻하는 ‘포르’가 합쳐진 이름이다. ‘사자 마을’을 의미한다.

싱가포르의 옛 이름은 ‘바다의 도시’를 뜻하는 ‘테마섹’이었다.

1377년 수마트라의 왕자 니라우티마가 이곳에 와서 테마섹을 세웠다. 어느 날 그는 이곳에서 사자를 닮은 이상한 동물을 발견했다. 그 동물은 호랑이였다. 니라우티마는 소문으로만 듣던 사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이 도시의 이름을 ‘싱가포르’라고 부르겠다. ‘사자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싱가포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싱가포르는 호랑이를 사자로 착각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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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는 ‘모른다’는 이름의 동물?


캥거루는 오스트레일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 기르는 포유동물인 유대류 동물 가운데 가장 크고 온순한 초식 동물이다.

캥거루를 처음 본 영국 사람은 1770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발견한 쿡 선장이라고 한다. 그는 이 동물을 보고 이렇게 기록했다.

“색깔 있는 밝은 쥐색이었고, 몸집은 그레이하운드만큼 컸다……. 걷고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사자나 들개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동물은 사슴이나 토끼처럼 껑충껑충 잘도 뛰어다녔다.”

쿡 선장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처음 상륙하여 이 동물을 보고 어떤 동물인지 궁금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쿡 선장은 원주민에게 물었다.

“저 동물의 이름이 뭐죠?”

그런데 원주민도 동물의 이름을 몰랐나 보다. 쿡 선장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캥거루, 캥거루!”

‘캥거루’는 원주민 말로 ‘나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쿡 선장은 동물의 이름이 ‘캥거루’인 줄 알고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캥거루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유대류 동물인 코알라도 그 이름이 듣는 사람의 어이없는 착각으로 지어졌다.

코알라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귀여운 동물이다. 유칼립투스의 잎을 먹고 살며 하루에 20시간이나 잠을 잔다. 유칼립투스의 잎에 알코올 성분이 있어 계속 잠을 자는 것이다.

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고 유칼립투스의 잎만 먹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왔다가 이 동물을 처음 본 영국 사람이 원주민에게 물었다.

“저 동물의 이름이 뭐죠?”

그때 원주민은 이 동물의 생태에 대해 묻는 줄 알고 “코알라!”라고 대답했다. ‘코알라’는 원주민 말로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국 사람은 ‘코알라’를 동물의 이름으로 알아들었다. 그 뒤부터 계속 ‘코알라’로 부르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다른 대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동물이 많이 산다. 그것은 오랜 옛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다른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2억 년이나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 동물은 유대류 동물과 단공류 동물이다. 유대류 동물은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 기르는 포유동물이고, 단공류 동물은 알을 낳는 포유동물이다. 유대류 동물은 앞서 소개한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등이 있다. 왈라비는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몸집이 작다. 꼬리도 가늘고 길다. 단공류 동물은 오리너구리와 바늘두더지 등이 있다. 오리너구리는 오리 부리를 닮은 주둥이와 물갈퀴를 지녔다. 그리고 바늘두더지는 몸 전체에 바늘 모양의 가시가 돋아 있다.

그 밖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로는 타조를 닮은 에뮤, 오소리와 비슷한 웜벳, 다람쥐와 쥐의 중간 형태인 포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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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창주문학상, 소천문학상 등 수상
지은 책으로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
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등과 시집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햇빛 잘잘 끓는 날>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