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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련하고 애절하고

아련한 우리의 소리


글. 김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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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싸 전주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겨울 이른 아침이었고 나는 시청 앞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광장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텅 비어 있었고, 아침 안개가 주위를 실루엣으로 감싸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텅 빈 광장에 갑자기 나직하고도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판소리였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노래는 안개를 딛고 솟아올라 광장을 휘감고 전주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아, 여기가 전주로구나.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소리가 마음에 가득 차올라 한동안 뿌듯하고 먹먹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노래, 사람의 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춤이라면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이 노래다. 그중에서도 판소리는 서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담아내 직설적이고 통쾌하며 애절하고 짠하다. 양식을 갖춘 정악1이나 가곡2, 시조 등이 단정한 풍류에 젖을 수 있는 음악이라면 판소리는 흥겹고 구성진 가락이 많아 애상에 젖게 한다. 전주의 겨울 아침 광장에서 들었던 소리는 애잔함이나 서글픈 정서를 넘어 삶의 바닥에 깔려 있는 어떤 기운들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소리가 정신을 흔들어 깨워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금 선명하게 둘러보게 했다.

판소리 무형문화재 연초 김소영 명창
“여봐라 주부야. 니가 세상을 간다허니 무엇하러 가랴느냐. (얼쑤) 삼대 독자 니 아니냐 장탄식 병이 든들 뉘 알뜰히 구완허며, (허이) 니 몸이 죽어져서 오연의 밥이 된들 뉘랴 손뼉을 뚜다리며,(~쑤) 후여처 날려 줄 이가 위 있드란 말이냐.”

위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이다. 별주부 모친, 아들인 주부가 토끼간을 구하러 세상에 나간다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어느 부모인들 그렇지 않을까. 더구나 삼대독자 귀하디귀하게 키운 아들 아닌가. 그래도 아들이 기어이 가겠다 하니 모친은 토끼간을 꼭 구해와 충신이 되라는 당부로 아들의 기운을 북돋운다.

오늘 만난 김소영 명창은 수궁가로 올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은 소리꾼. 얼굴도 조그맣고 체구도 작지만,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아 제16회 남원춘향제 판소리 명창부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고, 독도사랑 나라사랑 제1회 대한민국 국창대회에서는 대상(국창상)을 수상했다. 포항시에서 2012년 열렸던 국창대회는 대통령상을 받은 소리꾼들만 출전하여 우열을 가리는 자리였다. 최고의 소리꾼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니 역시 국창, 나라에서 인정할 만한 명창이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홍정택, 오정숙, 박귀희 스승께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사사받은 김 명창은 소리와 가야금뿐 아니라 무용, 농악, 기악, 가야금, 양금, 철현금 등을 두루 익혔다. 판소리의 감동이 다만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의 울림으로 내는 소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기초이자 양분이 될 수 있는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셈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배우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국악 집안인데도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 하자, 당장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1. 정악

아정(雅正)하고 고상하며 바르고 큰 음악이라는 말로, 과거 궁중음악의 일부를 포함해 민간 상류층에서 연주되어 오던 모든 음악을 지칭한다. 속악의 대칭으로 쓰이며 국악 가운데 넓은 의미의 아악(雅樂)을 일컫는다.

2. 가곡
관현반주(管絃伴奏)가 따르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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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풍류를 좋아하는 멋쟁이셨어. 국악인들도 많이 알고. 그서 국악인들 고생허는 것도 더 잘 알았지. 그렇게 힘들게 고생허는디 하나도 대접 못 받고. 그때는 지금처럼도 대접 안 해줬응게 말 다했지. 근디 애지중지헌 딸이 그 길을 간당게 어쩌것어? 머리도 깎였당게.”

선머슴아처럼 머리를 박박 깎였지만 김 명창은 어린 나이에도 울거나 숨지 않고 당차게 나갔다.

“울긴 뭘 울어? 마후라 쓰고 댕기믄 되는디. 다행히 그때 마후라가 유행이었거든. 그서 잘 됐다 허고 맨날 마후라 뒤집어쓰고 댕겼지.”

그 고집을 누가 꺾을까. 결국 아버지는 딸이 판소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허락하고 응원해주었다.

“예술은 자기 고집이 없으믄 못허는 것이여. 뚝심과 아집이 있어야 밀고 나가지, 안 그럼 돈도 안 되고 고생만 허는 이 험한 길을 어떻게 가것는가.”
12살, 어린 나이에 벌써 내보인 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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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국창대회 




험난했던 득음의 길
수궁가는 판소리 다섯마당3 중에서 유일하게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판소리다. 춘향가나 심청가 등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판소리는 슬픈 음색의 계면조4나 진양조5가 많이 나오는데 수궁가는 들짐승, 날짐승, 바다동물 등 동물들의 캐릭터가 다양하고 활달해 밖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많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다른 소리보다 넓은 음역을 가져 수궁가를 자신의 소리로 선택한 여자 소리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김소영 명창은 스승인 운초 오정숙 명창의 뜻을 이어받아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수궁가를 불러왔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새롭게 연구를 하고 소리를 가다듬었다.

“1988년에 완창 발표회에 처음 도전하는디 스승님이 대뜸 수궁가를 불러보라고 허는 거여. 다른 곡도 많은데 왜 하필 수궁가인가 했지. 힘도 더 들고, 남자 소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거든.”



3. 판소리 다섯마당
원래는 열두마당이었으나 지금은 다섯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 만이 전한다.

4. 계면조
슬프고 애절한 음으로 서양음계의 단조와 비슷한 느낌이다.

5. 진양조
판소리에서 제일 느린 장단. 24박으로 질질 늘여빼고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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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명창 독도공연
 



그때부터 불러온 수궁가가 어느덧 30년을 바라본다. 부를수록 매력적인 소리, 이제는 스승이 왜 수궁가를 부르라 했는지 그 속마음을 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소리를 위해 살아온 날들. 그 시간들 속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적은 없었을까.

“내가 원체 몸도 약하고 목도 약했거든. 근데 어느 날 목에 혹이 난 거야. 대학병원에서 수술만 하면 깨끗하게 낫는다고 해서 수술날짜를 잡아놨는데, 스승님이 수술을 못하게 하시는 거라. 절대 목에 칼을 대면 안 된다고, 그러면 인연을 끊겠다고까지 하시는데 어쩌것어. 그냥 혼자 소리 연습함서 견뎠지. 그때 맘고생이 참 많았어. 소리가 내 길인가도 싶고. 그렇게 5~6년간 고생했을랑가, 어느날 연습허는디 갑자기 생쌀 덩어리 뭉쳐놓은 것 같은 노리끼리한 덩어리가 칵 나오대. 그 즈음 코로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었거든. 냄새를 맡아봉게 그 지독한 냄새가 그거여. 그렇게 몇 번 그런 덩어리가 나왔는디, 신기허대. 그때부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거라. 상천으로 올릴 때 소리가 안 나왔거든. 근디 실 같이 가느다란 소리가 쭉 올라가는 거여, 빛이 하늘로 올라가듯이 말여. 실 같이 나오다가 점점 두껍게 나왔지. 목이 터진 거였어, 그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 뒤론 목도 안 쉬고 소리도 잘 나오고 그러더라고.”

소리꾼에게 소리가 안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혹독한 일이랴. 소리 목은 만들어져야 하는 거라지만, 득음의 길은 득도의 길과 다를 바가 없다. 그 길을 한 걸음씩 내딛어 여기까지 온 김소영 명창, ‘득음하셨다’ 하자 손을 내젓는다.

“득음이란 것은 자유자재로 소리를 쓸 수 있다는 거지. 목을 내가 내 맘대로 한다는 거여. 득음했다고? 아녀, 득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 모두가 같이 즐기는 소리로
스승인 운초 오정숙 명창은 그에게 ‘연초’란 호를 지어주었다. 동초-운초-연초로, 스승인 동초 김연수 선생의 동초제를 이어가라는 뜻이다. 김연수 명창은 1930년대 초 여러 판소리 명창들 소리 중 좋은 점들만 모아, 자신의 호를 딴 동초제를 창시하였다.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이 정확하며, 너름새(동작)와 부침새(장단)가 정교하고 다양한 동초제는 동편제와 서편제의 특징을 적절히 어우르면서 창극적인 요소가 많아 판소리의 대중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판소리가 세계화되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됐다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국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도 너무 적고. 대회에서 수상할 때만 반짝 허지 말고 꾸준히 보살펴줘야 국악도, 국악인도 발전허지 않것는가.”

한 사람에게라도 더 국악의 흥을 전해주기 위해 매일같이 전수관에 나와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는 김소영 명창. 전주소리문화관에서 예술전임교수로 5년간 근무하면서 가르쳤던 이들이 지금은 전수관으로 찾아와 소리를 배우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국악을 더 편히 즐기게 하기 위해 예전보다 수강료도 대폭 낮췄다.

“이 나이에 돈은 벌어 무엇 허것는가. 애초에 돈허고는 연이 별로 없응게, 그저 한 사람한테라도 더 국악을 전하는 것이 무형문화재로서의 내 소명인 게지.”

김소영 명창은 판소리가 특정한 소리꾼들만의 것이 아닌 일반인들도 즐기는 소리, 누구나 한 자락 쯤은 읊을 수 있는 소리이길 꿈꾼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악이 교육제도 안에 편입되어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알지 않는가. 국악도 그렇지,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흥과 멋을 알것는가. 첨에는 이것이 무슨 맛여 허긋지만, 먹을수록 그 맛에 빠져든당게.”

후련하고도 애절하고 아련한 우리의 소리, 판소리. 판소리가 그저 감상의 차원을 넘어 우리 마음을 후비고 정신을 뒤흔들어놓는 것은 삶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 옛날 양반이나 서민이나, 지금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삶의 지리멸렬함과 부조리, 그 통한과 애상이 어디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고 찾아오던가. 매양 사람 이야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다. 하여, 우리는 오늘도 판소리를 들으며 묵직해진 가슴을 내려놓는다.



"예술은 자기 고집이 없으믄 못허는 것이여.

뚝심과 아집이 있어야 밀고 나가지,

안 그럼 돈도 안 되고 고생만 허는 이 험한 길을 어떻게 가것는가."




판소리는 민속악

이참에 판소리에 대한 기본 상식을 짚어보기로 하자. 판소리를 보통 국악이라 부르는데, 국악은 정악과 민속악 창작음악으로 분류되고 판소리는 그중 민속악에 속한다. 설화나 민요 등에 뒤섞여 구전되던 판소리가 하나의 양식으로 정리, 체계화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후기 서민경제가 부흥하고 서민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였다. 양반 중심의 예술 활동이 서민들의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서민 중심의 판소리, 탈놀이, 민화 등으로 확대된 것. 그래서 판소리에는 서민들의 신분 상승 욕구와 양반들에 대한 풍자가 담겨져 있다. 춘향은 어사 부인이 되고 심청은 황후가 되며, 흥부는 부자가 된다. 또 수궁가에서 토끼가 용왕을 속이는 부분에서 보듯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조롱하고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속이 타듯 애절하고 슬프다가도, 눈물이 나오게 웃기고 통쾌하며, 때론 질펀한 흥에 젖기도 하는 판소리, 판소리를 민속악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그 애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꾼과 청중이 같이 만드는 소리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판소리'는 그 이름대로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소리다. 고수가 북장단과 추임새를 곁들여주면 소리꾼은 그 장단에 맞춰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이야기조의 사설인 '아니라(말)', 실감 나는 장면 묘사를 위한 동작인 '너름새(몸짓)' 등으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꾼이 노래를 하면 객석에서도 "열쑤~", "그렇지~", "잘한다~" 등의 추임새를 넣는다. 고수 역시 추임새를 넣지만 고수는 소리꾼의 무대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인지라, 객석의 참여가 더욱 흥겨울 수 밖에 없다. 관객의 추임새가 보태지면 소리꾼은 흥이 나 더욱 열창하게 되고, 이는 다시 객석의 열기르 ㄹ돋워 더 흥겨운 추임새로 터져나온다. 소리꾼이 여러 인물들의 역할을 몇 시간씩 혼자 풀어내면서도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은 관객들과 마주보고 이렇게 호흡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혼자 모든 배역을 도맡아 하는 1인 창무극, 1인 오페라라 할 수 있는 판소리는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록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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