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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호쾌한 멋

매사냥


글. 김소형
사진제공. 매사냥전통보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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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가 사냥하는 모습
 


날아라 매야, 바람을 타고
生을 향해 돌진하거라!


“매 나간다~!”

야트막한 산비탈에 울려퍼지는 소리, 사람들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소리부터 들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곳은 진안군 성수면 오암마을. 매사냥 시연회 시작 시간에 늦어 일행을 놓치고 물어물어 찾아온 길이다. 귀를 세우고 소리 나는 쪽으로 올라가니 능선에 길게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매사냥¹시연회에 참석한 이들이다.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보니, 모두 고개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잡았어요?”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아직 못 잡았단다. 사냥이 매번 성공할 수는 없는 법. 둘러선 이들과 함께 다시 몰이꾼이 꿩을 몰고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 이 자리는 정기 시연회가 아니라 일본 매사냥협회 회원들을 초청해 열린 시연회였다. 우리나라 매사냥 무형문화재 두 분을 포함해 진안과 대전의 매사냥협회 회원들과 이수자들이 함께 모였다. 일본 매사냥꾼들은 비행기에 매를 싣고 올 수 없으니 모두 빈손이지만, 우리나라 응사와 이수자들은 손목에 매 한 마리씩을 얹었다.

동그랗고 부리부리한 눈에 매섭게 휘어진 부리, 단단하고 억센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

이렇게 가까이서 매를 쳐다보긴 처음이다. 매의 모습에 온통 마음이 뺏겨 이곳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도 잊고 홀린 듯이 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용맹하다거나 거칠다거나 또는 야생적이라거나, 이런 수식어들은 모두 사람이 갖다 붙인 말들이다. 자연에서 나고 자연에 속한 것들은 각자 제 기질과 타고난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천연스럽다.


매사냥을 하려면 최소 5~6명에서 많게는 10명 정도까지 인원이 동원되는데,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사냥할 매를 받은 사람², 즉 매를 다루는 사람인 ‘봉받이’³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꾼’과 ‘몰이꾼’도 필요하다. 몰이꾼(털이꾼)은 꿩, 토끼 등 사냥감을 몰아주는 사람인데 사냥 규모에 따라 몰이꾼 수도 달라진다. ‘배꾼’은 매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사냥감 방향을 추적해주는 사람. 날짐승이 첫 번째로 펼치는 날개짓을 ‘배본다’고 하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봉받이와 몰이꾼, 배꾼이 사냥준비를 마치면 매사냥에 나서게 된다. 몰이꾼들이 솔밭에 숨어 있는 꿩이 날도록 작대기로 휘저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이에 놀란 꿩이 날아오르면, 산마루에 서 있던 봉받이가 매를 날려 꿩을 사냥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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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 수진이가 꿩을 잡았다. 부채집처럼 날개를 펼치려 하는 모습이다
 

   

다시 아래쪽이 수선스러워졌다.

“애기야~”

몰이꾼이 꿩이 숨어 있음직한 풀숲을 뒤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꿩이 수풀 속에서 푸드덕거리며 튀어오르고, 응사가 손목에 앉아 있던 매를 힘차게 날려보냈다.

“매 나간다~!”

휙~ 눈 깜짝할 사이다. 어느새 매는 꿩을 낚아채 발톱으로 움켜쥐고 있다. 먹이를 잡으면 매는 먹이감을 감싸듯이 날개를 부채집처럼 펼치는데 이는 ‘내 사냥감이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응사라 해도 매가 잡은 먹이를 빼앗듯이 가져오면 안 된다. 응사는 매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 먹이를 뜯어먹도록 잠시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먹이쌈지에서 닭고기를 꺼내 내민다. 그리고 매가 시선을 돌려 닭고기를 뜯어먹을 때 꿩을 살짝 뒤로 숨기는 것이다.



1. 매사냥
매사냥은 매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인 매로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것을 말한다.
2. 매를 받다
매사냥꾼들은 비둘기를 미끼로 사냥할 매를 잡아오는데, 이렇게 매를 잡는 것을 ‘매를 받는다’고 표현한다. 매를 수단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귀한 생명체로서 마음으로 받는다는 의미다.
3. 봉받이
매사냥꾼. 즉 매를 받은 사람으로 봉받이, 매받이, 매방소, 매꾼, 수할치, 응사(鷹師)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수할치’는 13세기 이후 몽골로부터 유입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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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 수진이가 꿩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덫이나 총, 기타 다른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매를 훈련시켜 사냥하는 이 매사냥은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즐겨온 수렵활동이다. 알타이 몽골고원 등 북방에서는 6000여 년 전부터 검독수리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해왔으며, 우리나라는 기원전후 고조선 시대에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肅愼族)으로부터 매사냥을 습득하였다고 한다.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말을 탄 채 오른손목에 매를 얹고 달리거나 말 위에서 매의 행방을 눈으로 보는 사냥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당시에 벌써 도보와 기마 매사냥, 대규모 몰이사냥이 널리 행해졌음을 짐작케 하는 그림들이다. 매사냥은 삼국시대 이후 나라 전역에서 행해졌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매 관리청인 ‘응방’을 설치해 매 훈련과 사육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응방은 원래 원나라가 고려에 매를 조공으로 요구하면서 설치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고려 왕들이 매사냥에 심취하면서 원나라보다 오히려 더욱 활성화되었다. 조선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이고 일상적인 사냥법이었던 매사냥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치른 뒤부터. 혹독한 민족적 시련이 호연지기의 기운을 품은 이 호방한 사냥의 맥을 끊어버린 것이다. 오늘날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단 두 사람만이 진안과 대전에서 이수자들을 길러내며 활동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수십 년간 꿋꿋하게 매사냥꾼의 길을 걸어온 박정오 응사(진안)와 박용순 응사(대전), 이들마저 없었다면 우리나라 매사냥은 앞날을 어찌 기약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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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순 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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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오 응사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매사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박정오(77세) 응사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한다. 그는 70년대 말 38세의 나이에 매사냥꾼의 길로 접어들어 40년이 넘도록 매와 함께 살아왔다. 그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진안군 백운면은 예로부터 매사냥의 최적지로 꼽혀온 곳. 산이 깊고 눈이 많은 고원지대라 매의 먹이가 되는 꿩, 토끼 등이 마을 가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박정오 응사는 직접 만든 그물로 매를 잡아, 꿩이나 토끼를 사냥할 수 있도록 매를 길들이고 시치미나 매방울 등 사냥도구를 제작해 사냥에 나선다.

“매를 어떻게 잡나요?”

“그물을 쳐놓고 그 안에 비둘기를 넣어놓아요. 배고픈 매가 날아와 비둘기를 채가려 하지만 이미 발톱이 그물에 걸린 뒤지요. 그물에 걸린 매를 놀라지 않게 쌈보⁴에 넣어서 데려옵니다.”

“야생매를 잡아와서 어떻게 길들이시는지요?”

“매는 ‘잡는다’고 하지 않고 ‘받는다’고 말합니다. 처음 매를 받아온 날은 하루 정도 혼자 방안에 재우지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른 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겁니다. 이틀째부터는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빼고 하루종일 옆에 붙어 있는데, 보통 4~5일이 지나면 먹이를 받아먹기 시작합니다.”

작년 12월에는 진안군 백운면에 매사냥 체험관도 생겼다. 매사냥의 역사와 현황, 계보도와 함께 매사냥 도구들을 전시해 매사냥 초보자라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체험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매 훈련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붙어있어, 매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하는지를 일러준다. 매사냥의 메카인 진안에 본격 적으로 매사냥을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라, 박정오 응사의 마음도 든든하다.


4. 쌈보
매를 받아올 때 매가 놀라지 않도록 뒤집어씌우는 보자기


매의 종류와 다양한 호칭

보라매 당년 새끼로 부화한지 1년이 안 되는 새끼 매(유조). 경험은 미숙하지만 몸집은 다 컸다. 참매 일 생에서 가장 용감하고 활동력이 왕성한 시기로 사냥매로 최고로 친다.

수진이 보라매로 들어와 1년간 사람 손에 난 매를 말한다.

산진이 야생에서 1년 이상 자란 매(성조)를 말한다.

송골매 성조가 되면 푸른 깃털이 난다 해‘서해 동청’(동쪽에서 온 푸른 매)이라고도 불렀다. 사냥도 잘하고 용맹하다 하여, 중국과 몽골에서 수입해 갔던 매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생명체로, 급강하시 최고 속도가 380㎞로 기록되어 있다.

* 보라매(유조)와 산진이(성조)의 구분은 털 무늬와 가슴 색깔을 보고 안다. 보라매는 죽엽같이 털 무늬가 아 래향로하나 산진이는 무늬가 가로로 생긴다. 가슴 색깔도 보라매 시절에는 갈색과 밤색 털이 섞여 있다가 산진이가 되면 전체적 으로 하얀 색으로 변한다.

* 사냥용 매는 수리과와 매과가 있는데, 이들을 모두 통칭하여 매라 부른다. 독수리와 참매는 수리과에 속하고 매송와골 황조롱이 등은 매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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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매 수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