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서양의 고전(古錢)

비잔틴과 중세시대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




수 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로마제국은 서기395년 동·서로 나뉘면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한 쇠잔의 징후는 화폐에서도 역력히 나타났다. 주화의 무게는 줄어들고 귀금속(금·은)의 순도는 낮아졌다. 조각을 무색케 하던 입체식 부조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선으로 표현된 평면적 도안에 단순한 구조로 변모됐다.

이러한 양상은 비잔틴제국으로 존속하던 동로마권에서나 고대 영국, 고대 프랑스 등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뉜 서유럽에서나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공통된 특징을 보면 당시 대단했던 종교에 대한 열기를 반영하듯 예수와 십자가가 도안의 주제로 사용됐고, 그동안 앞면 도안으로 사용되던 황제는 뒷면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콤네노스 왕조 알렉시우스 1세(1081~1118)의
하이퍼페론 금화(가로 31.5×세로 27.5mm)
01.jpg
1092년 화폐 재정비 이후에 주조됐다. 심각하게 품질이 저하된
노미스마를 대체하기 위함이었으나, 순도만 약간 개선됐을 뿐
노미스마와 같이 얇고 오목한 형태는 벗어나지 못했다.
    




프랑스 루이 9세(1226~1270)의 투르누아 은화(25.3mm)
02.jpg
알프스 북부에서 처음 파생되어 나온 대형 은화로서 성공적으
로 제도에 안착하여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졌다.
 



영국 에드워드 1세(1272~1307)의 페니 은화(18.6mm)
03.jpg
영국의 수출은 국가의 은괴 보유를 확실히 보장해주었고 12세
기 후반의 은 공급 증가와 맞물려 통화의 확대를 가져왔다
 



비잔틴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913~959)의
노미스마 금화(실물크기 19㎜)
04.jpg
콘스탄티노플의 주조소에서 주조된 것으로 예수의 모습이 새겨
져 있다. 9세기 중반부터 주조화폐에 종교적인 이미지를 넣는
현상이 압도적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