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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관심,

믿음과 열망이 좋은 결과 부른다


피그말리온,

긍정의 힘으로 이룬 사랑


글. 전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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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gmalion and Galatea(Wauters) 1608
 


피그말리온은 조각가였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 작정이었다. 여자들에게는 흠결이 너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의 몸을 조각하는 것까지 마다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상아로 여자의 몸을 만들고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제 손으로 만든 조각품이었지만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 보기에 참 좋았다. 피그말리온은 난생 처음 사랑이라는 걸 느꼈다. 진짜 여자한테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희한하고 야릇한 감정이었다. 사랑에 푹 빠진 그는 조각품을 살아있는 여자처럼 대했다. 예쁜 장신구도 걸어주고 아름다운 옷도 입혀주었다. 푹신한 침대에 눕혀 잠을 재워주기도 했다. 입을 맞추고 몸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차디찬 상아일뿐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 그는 조각품이 살아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그말리온의 열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마침 기회가 왔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모시는 축제날이 다가왔다. 키프로스 섬에 사랑의 찬미가 울려 퍼지고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다. 아프로디테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때 피그말리온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제단 앞에서 머뭇거리는 피그말리온을 내려다보며 아프로디테가 말했다. “소원을 말해 봐.” 피그말리온은 입이 바짝 말랐지만 용기를 내 말했다. “제가 빚은 상아 조각 같은 여자를 갖고 싶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지극한 마음이 사랑을 이룰 것이다.” 제단을 밝히고 있던 횃불들도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춤을 추듯 일렁거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피그말리온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상아 조각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 느끼던 그 입술이 아니었다. 따스하고 촉촉한 기운이 느껴졌다. 입안으로 온기가 스며들었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입술을 느끼며, 상아 조각의 목에 손을 대보았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기운이 전해왔다. 이윽고 가슴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사람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촉이었다. 입술을 떼고 뒷걸음쳐 물러나 상아 조각을 다시 쳐다보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상아 조각 여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그레 달아 오른 두 볼이 사랑스러웠다.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라는 명작을 남겼다. 그의 그림을 보면, 피그말리온이 왼손으로 발가벗은 조각상의 몸을 끌어안은 채 키스하고 있다. 조각상은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한 손으로 피그말리온의 목을 감싼 채 입을 맞추고 있다. 다른 한 손은 자신의 가슴부근에 있는 피그말리온의 손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아마도 피그말리온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함부로 닿지 않게 하려고 잡아두고 있는 모양이다. 받침대에 붙어 있는 조각상의 발과 종아리는 여전히 차가운 대리석으로 흰 빛을 띠고 있지만, 그 위로는 사람의 기운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장 레옹 제롬의 작품 중에 <판사들 앞의 프리네>라는 게 있다. 붉은 색의 옷을 입은 늙은 심판관들이 죽 앉아 있고, 그 앞에 눈부신 여자의 나신이 드러나 있다. 무슨 일인지 몹시 드라마틱 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듯 긴장감이 흐른다. 여인의 누드가 어두운 배경과 대비돼 관람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은 팔로 제 눈을 가리고 있다. 늙은 심판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다. 충격을 받은 듯 입을 헤 벌리거나 깜짝 놀라는 동작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의 사연은 이렇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에 프리네라는 창부가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철학까지 논하는 지성파 창부였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프리네에게 앙심을 품은 자가 있었다. 그래, 그 자는 프리네가 스스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현신이라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으니 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네는 신에 대한 불경죄로 법정에 끌려나오게 되었고, 그녀의 연인 히페리데스가 변호를 맡아 함께 출정하게 되었다. 심판관의 판정에 따라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히페리데스는 프리네의 옷을 벗어젖힌다. 그 순간, 프리네의 알몸이 드러나고 늙은 심판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리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프리네의 벗은 몸을 본 심판관들은 일제히 “신이 내린 완벽한 몸이다. 인간이 함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심판관들은 심지어 프리네가 아프로디테의 현신이 틀림없다고 믿었고, 그런 그녀를 의심한 자신들을 자책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신성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프리네는 창부에서 만인의 연인으로 추앙받는 신성한 존재가 되었다.

“예쁘면 용서된다”는 말을 확실하게 증명해 준 또 다른 신화 속 인물이 있다. 헬레네다. 제우스의 딸로서, 원래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으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트로이로 도망을 간 비정한 여인이다. 사실은 이 또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관여한 일이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해 주면 인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파리스에게 약속을 했던 것이다. 헬레네에게 배신당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칼을 갈았고,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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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gmalion and Galatea. Jean Léon Gérôme



지극한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신을 움직이고 마침내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트로이 목마’로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메넬라오스는 성안에 숨어 있던 헬레네를 발견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헬레네는 파리스에 이어 또 다른 남자의 아내가 돼 있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헬레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헬레네를 보는 순간, 20년간 품어왔던 메넬라오스의 가슴 속 응어리가 눈 녹듯 스러졌다. 복수심 대신 주체 못할 욕망과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 메넬라오스는 함께 간 그리스 군사들에게 그 뜻을 묻기로 했다. 죽일까, 살릴까?

헬레네의 모습을 가까이 본 그리스 군사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숨이 멎을 것처럼 아름다운 헬레네를 보면서, 죽이는 것이야말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의 벗은 몸을 보여 주었고, 그리스 군사들이 본 것은 헬레네의 벗은 몸이었다. 만약, 옷을 입은 헬레네였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것이다. 메넬라오스는 헬레네의 벗은 몸을 군사들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 불쾌했지만, 군사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도리가 없었다. 헬레네는 살아남았고, 스파르타로 돌아와 남편 메넬 라오스보다 더 오래 살았다. 하지만 후에 두 아들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이 선한 것이고, 아름다우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을 하려고 오늘 이 이야기를 펼친 것은 아니다.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신을 움직이고 그래서 마침내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는 긍정의 힘에 대해 주목했으면 한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기대와 관심을 많이 받게되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상아 처녀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낸 힘은 상아 조각상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평가해 낙인을 찍게 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 온다는 것이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 혹은 낙인효과(烙印效果)다. 어느 소녀가 어릴 적부터 할머니로부터 “너는 스무 살이 되면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소녀는 열여덟살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소녀는 죽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소녀의 병은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불길한 예언이 원인이었다. 스티그마 효과란 이런 것이다.

이성부 시인은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중략)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봄이 그렇듯이, 우리들 사는 세상 일이 다 그렇다. 마침내 올 것이 온다는 믿음만 있으면, 마침내 올 것이 온다. 꽃 피는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