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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는 빨갛죠”
재주와 영리함의 상징, 원숭이의 해가 밝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어감은 좀 듣기에 거북하고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원숭이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재주가 많고 영리하다’는 말이 있듯 2016년이 지혜와 영민함, 부지런함으로 더욱 발전하는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글 백은영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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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고승도(松下高僧圖, 19세기, 개인 소장)
조선 말기의 화가 장승업이 그린 그림으로 소나무 줄기에 걸터 앉은 노승에게 불경을 두 손으로 바치는 원숭이가 묘사돼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그렇다. 원숭이의 엉덩이는 빨갛다. 올해가 바로 이 빨간 엉덩이의 주인공 원숭이, 그것도 붉은 원숭이의 해다. 원숭이띠는 12띠중 아홉 번째 띠로 신년생(申年生)을 가리킨다. 시각으로는 오후 3~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잔나비’라고요?

원숭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일까. 상대방이 원숭이띠라 하더라도 ‘원숭이띠’란 말보다 ‘잔나비’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원숭이가 영리하고 재주 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사람을 닮은 모습에 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기피하는 동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원숭이의 고유어 ‘납’과 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는 뜻의 ‘재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 ‘잰나비’가 되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 ‘잔나비’가 됐다는 설이 있다. 옛 문헌에는 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이전에는 원숭이를 ‘납’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훈민정음 해례(1446)>에 ‘납 爲猿(위원)’이라는 기록을 최초의 용례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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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번-원숭이(十二支幡-申, 대한제국, 통도사성보박물관)
절에서 큰 행사 때 벽사의 뜻으로 걸었던 불화(佛畵)다. 십이지신의 하나인 원숭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사람의 신체에 얼굴과
팔은 원숭이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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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 조선 후기, 고려대학교박물관)
원숭이가 나뭇가지로 게를 잡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게는 ‘甲’을 뜻한다. 소과, 대과에 장원급제해 높은 벼슬에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한 집안에 성이 다르고 띠가 같은 사람이 셋이 모이면 그 집안은 흥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기자 또한 아버지, 남동생, 올케가 모두 잔나비띠로 아버지와 남동생은 당연히 성(姓)이 같으니 올케의 성인 이(李)씨를 포함해, 성(姓)이 다른 잔나비띠가 한 명만 더 들어오면 된다는 압박 아닌 압박을 받기도 했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재주도 많고, 영리한 잔나비띠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확실히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 삼천포에서 빠져나와 본론으로 돌아가 원숭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사람을 닮은 데다 간사스럽다는 이유로 기피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불교의 영향 등으로 부정적인 관념이 다소 희석되기도 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원숭이는 잡귀나 잡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동물로 믿어 큰 건물이나 사찰에 원숭이 상(像)을 세웠으며, 각종 도자기와 민화에는 숭고한 모성애를 가진 동물로, 또한 장수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동물로 그려졌다.

우리나라에 원숭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세조 12년(1466)의 일이다. 일본이 사신을 보내왕에게 원숭이를 선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세조는 이 신기한 동물을 백성들에게 구경시키도록 했으며 김종서는 희귀한 선물이라 해 예찬시를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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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 신선로(十二支神仙爐, 20세기, 국립민속박물관)
상 위에 놓고 전골 등의 음식을 끓이는 그릇으로, 뚜껑 중앙의 구멍 둘레에 십이지 동물을 새겨 넣어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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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원숭이 모양 인장(靑磁 猿形印章, 고려 12세기, 호림박물관)
손잡이 부분을 원숭이 형태로 만든 방형(方形) 인장이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 올려 마주잡은 채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원숭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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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잡상(申狀雜像, 조선 후기, 동아대학교박물관)
건물의 위엄을 더하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추녀마루 위에 일렬로 세운 잡상의 하나로,
이 잡상은 명나라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행자(손오공)로 원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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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음각십이지문사각연 (石製陰刻十二支文四角硯, 조선 후기, 호림박물관)
4면에 십이지 동물을 순서대로 양각해 장식한 벼루이다. 그중 원숭이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앉아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날아라! 손오공”

중국 명나라의 장편 신괴(神怪) 소설로 알려진 <서유기>에는 원숭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이름도 유명한 ‘손오공(孫悟空)’이다. 어렸을 적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속 주인공이기도 한 손오공. 아직도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로 시작되는 만화 주제곡이 절로 떠오른다.

<서유기> 속 손오공은 대당(大唐) 황제의 칙명으로 불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삼장(玄奘三藏)의 종자(從者)로 나온다.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은 도술을 써서 천제의 궁전을 발칵 뒤집어 놓은 죄로 500년 동안 오행산(五行山)에 갇혀 있게 됐지만 삼장법사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이후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 등과 함께 요괴의 방해를 비롯한 갖은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해 그 공적으로 부처가 된다.

온갖 어려움과 요괴들의 방해, 죽을고비도 숱하게 넘긴 손오공과 그 일행. 손오공의 재주(도술)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그를 부처로 만들었듯, 2016년 이 ‘원숭이의 해’ 또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각자 목적한 바에 이르는 ‘손오공’들이 되기를 바라는 바다.


전시회서 만나는 원숭이

2016년 병신년(丙申年) 원숭이해를 맞아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전(展)이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준비한 이 특별전은 2월 22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진행된다.

‘장승업필 송하고승도(張承業筆 松下高僧圖)’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 등 원숭이와 관련된 자료 총 70여 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회는 생태와 문화로 만나는 원숭이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얘기한다.

회화와 문방구, 도자 등을 통해서는 ‘모정·출세·벽사’를, 시가(詩歌)에서는 ‘고독’을, 설화와 가면극에서는 ‘꾀·흉내·재주꾼’ 등을 상징하는 원숭이. 이번 전시를 통해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지극한 모정을 의미하는 ‘단장(斷腸)’ 고사가 유래할 만큼 강한 모성애를 지닌 원숭이부터 벽사(辟邪)와 재주꾼으로 상징되는 길상 동물인 원숭이까지 한눈에 만나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전시장이 동물원의 원숭이 서식지처럼 디자인돼 있어, 관람객들에게 마치 동물원에서 원숭이 관련 자료를 감상하는 느낌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전시가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원숭이의 행동과 특성이 우리 문화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