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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대한민국 12번째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며…

“잃어버린 왕국”의 영화를 입증하다


글 신정미 사진제공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단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백제문화의 미학을 논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돼 찬란했던 문화의 흔적조차도 찾기 어려웠던 ‘잃어버린 왕국, 백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고고학적으로 드러난 백제 유산은 무언의 자산이 되어 오늘날 그 영화를 드러냈고 세계유산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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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고분군
 


문화강국의 이미지 고양에 한 몫


지난 7월 4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는 기쁜 소식에 환호성을 지를 여유도 잠시, 다음날 우리 조상들의 가슴아픈 역사가 담긴 일본 근대산업 시설인 ‘군함도’가 한국과 중국, 일부 미국 하원들의 반대 속에서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에 대한 논란으로 오히려 축제의 함성도 제대로 울려보지 못했던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를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축하한다. 개인적으로 맡게 된 세계유산 코너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와의 첫 인연이 세계유산 등재까지 마무리하며 축하의 글을 쓰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고 뿌듯함과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지난해 남한산성에 이어 1년 만에 이름을 올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지난 달 4일 최종 등재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총 12개의 세계유산 보유국이 됐다. 충남에서는 최초의 세계유산, 전북에서는 고창 고인돌에 이어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해당 유산이 어느 특정 국가나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민관과 학계가 하나되어 통합 3년 만에 이뤄낸 쾌거라 할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향유해 나가야 하는 유산으로서 공주·부여·익산의 시군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유적, 경주의 신라유적과 함께 삼국의 유적이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우리나라 국격을 한 단계 높이고 문화강국의 이미지를 강화하게 됐다.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을 살고있으며, 앞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자산이다. 유네스코는 세계 각국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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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백제를 대표하는 유산들을 한데 묶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도읍들과 연관된 웅진시기, 사비시기인 백제 후기(475~660) 유산이다. 700년 백제 역사중의 보고인 공주·부여·익산 지역은 백제 왕궁지, 사찰터, 왕릉 그리고 산성과 도성 등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사적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과 관북리, 익산 왕궁리의 왕궁유적을 필두로 사찰터로는 정림사지와 미륵사지가 있고, 송산리와 능산리에 조성된 왕릉과 고대 동아시아 나성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는 부여 나성이 있다. 이 8개 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한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니고 있고, 진정성과 완전성을 갖추고 있으며, 적절한 보존관리 계획이 수립돼 있어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유산들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에 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기준(i) 인간의 뛰어난 창조성을 보여주느냐, 기준(ii) 인류 보편적 가치의 교류를 보여주느냐, 기준(iii) 사라진 문명에 대해 독보적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 등 6개의 기준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단 노중국 추진위원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등재 기준(ii)와 (iii)을 충족하는 것으로 인정됐다”며 “백제를 중심으로 한·중·일의 고대 왕국들 사이에 이뤄진 불교의 확산, 건축 기술의 혁신 등을 가져온 활발한 교류는 등재 기준(ii)를 충족시켰고, 석탑 건립, 토심석축의 토목 기술, 와적기단기법, 3탑 3금당의 가람 구조 등 백제유산만이 가지는 독보적 증거는 등재 기준(iii)을 충족시켰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것으로 뽑은 이 8개의 유산들은 백제 문화의 탁월성을 보여주며, 동시에 고대 동아시아에서 문화 교류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유산적 가치… 백제 문화의 탁월성과 활발한 교류를 보이다


백제만이 갖고 있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 노 추진위원장은 탁월한 가치가 각기 다른 유산 특유의 독특함이라면, 보편적 가치는 각기 다른 유산이 갖는 공통된 특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불교를 얘기할 때 중국도 한국도 일본도 불교를 다 받아들였고 사찰도 짓는다. 그런데 익산 미륵사의 3탑 3금당은 중국과 일본, 고구려나 신라에도 없다. 똑같이 불교사찰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제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이 바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등재 기준(ii)와 (iii)에 의거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의 산성 쌓는 방법이나 나성(羅城)의 건축들을 보면 판축공법·부엽공법·토심석축공법 등 당시 고급공법들이 활용됐는데, 그 시작은 중국이지만 백제가 이것을 받아들여 잘 활용하고 다시 일본에 전해줬다고 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중국인데 백제가 잘 받아들여서 그것을 일본, 신라와 가야에도 전해준다. 그런데 일본에 불교를 전해줄 때 승려가 불교경전만 전하는 게 아니다. 불교 이념을 가르치면서 사찰과 불상, 사찰 건축까지 같이 봐주니 백제의 건축기술도 같이 전수하게 된다. 사찰건물 안에 기단을 만들 때 기단 정면을 예쁘게 꾸미는 와적기단은 백제가 만들어낸 독특한 것으로 이것도 일본에 전해진다.

누구나 다 만드는 무덤의 경우도 보면 공주 송산리고 분군은 백제 전통의 횡혈식석실고분(궁륭상, 사면이 돔형식)이 주류가 되는데 중국으로부터 전축분을 받아들인 것이 무령왕릉이다. 부여로 가면서 백제 특유의 단면 6각형의 횡혈식석실분이 능산리고분군의 주류를 이루며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인 이 무덤형식이 일본에 전해져 유행하게 된다.

석탑의 경우도 삼국시대 목탑의 단점을 보완한 석탑이 백제 미륵사지에서 처음 만들어진다. 석탑의 시원이 미륵사탑이라면 가장 발전적이고 완성된 탑이 정림사탑이다. 이 또한 신라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석탑문화의 시작이 바로 백제에서 비롯됐음을 증명해준다. 이 탑 만드는 기술도 일본에 전해진다.

궁성과 관련해서 시대별로 도성을 만드는 특징을 보면 중국의 도성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백제는 원래 부여 계통의 평지성에 산성의 전통도 지켜나간다. 공주는 서울에서 쫓겨 내려와서 방어가 최우선이기에 산성 안에다 왕궁을 지었고, 부여로 오면서 평지에 왕궁을 짓고 부소산성을 급하면 피난성, 평상시에는 정원으로 활용했다. 이런 구도는 사실 서울에서부터 있었다. 서울은 풍납토성(평지성)에 몽촌토성(산성)의 구도로 조성됐다.

실질적으로 도성을 만들 때는 자연환경도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비도성에 와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백제가 처음으로 나성 개념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성은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북위의 수도였던 평성이나 낙양성은 일부만 찾아지고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다. 중국이 사각형으로 만들었다면 공주 공산성이나 부여 나성은 강(금강이나 백마강)을 이용하고 산을 따라가면서 성을 쌓아 자연친화적인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신라는 나성이 없고 아직도 일본은 나성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고구려는 장안성 시기에 가서야 나오는데 백제보다 시기가 조금 늦다. 부여 나성은 6㎞ 정도로 백제 당시 그대로 잘 남아있고, 시기적으로도 제일 빠르다는 게 완전성 진정성에도 부합된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여정

본격적으로 세계유산 등재추진의 시동이 걸린 건 2011년 1월.

그전까지 익산은 전북지자체에서, 공주·부여는 충남 지자체에서 각각 노력하여 세계유산 등재의 경쟁상대로 올라왔지만 둘다 백제라는 사실을 착안해 ‘공주·부여·익산 백제유적지구’라는 통합된 모습으로 우선추진대상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해 12월 문화재청과 2도 3시군이 업무협약을 맺고, 2012년 5월 2도 3개 지자체가 출자해서 재단법인 공주·부여·익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라는 법인체가 설립됐다. 그 아래에 추진위원회 설립으로 노중국 교수가 추진위원장직을 맡고, 그 밑에 사무국은 도와 시군에서 공무원을 파견하고 학예사 4명을 새로 뽑아 업무를 수행했다. 재단에서는 전체적인 예산을 관리하고, 추진위원회에서는 OUV 도출과 진정성·완전성 확인 및 관리계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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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나성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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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여름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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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유적 석탑과 주변
 


추진위원회에서는 OUV 도출을 위해 학술행사도 하고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자문위원들에게 자문도 받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법적인 보호를 위해 유산의 보존 관리와 지원을 위한 지자체별 조례도 제정했다. 각 지역별 주민협의체도 구성됐다. 8개의 유산에 대한 보존과 모니터링도 철저히 이행했다. 개별 유산의 4계절 사진찍기, 홍보 동영상 만들기, 유산과 관련된 고문헌과 옛 사진 모으는 일 등을 마무리한 후 2014년 1월에 신청서를 냈다.

유네스코 센터에서는 일 년에 40건을 2월 말까지 선착순 신청을 받는다. 백제는 1월 말에 내서 리뷰를 한 결과 신청서에 하자가 없다고 나왔고 그해
9월에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현장 조사를 나왔다. 현지실사를 받기 전 추진위원회에서는 먼저 국내 이코모스위원들을 초빙했고 그 다음에 해외 이코
모스위원을 초빙해서 두 번의 예비심사를 거쳤다.

어떤 유산을 어디서 어떻게 보여주면 가장 인상깊게 보여줄 수가 있는가를 미리 검토해서 국내 이코모스위원들의 자문을 얻었다. 예를 들면 황새바위라는 천주교 성지에서 공산성을 보면 잘 보여서 그 쪽으로 장소를 선정하는 등 사전 예행연습을 했다. 해외 이코모스위원으로는 디누 붐바루(Dinu
Bumbaru) 캐나다 이코모스위원과 구오 짠 중국 이코모스위원이 구체적으로 지적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종적으로 9월에 실사를 잘 받고 난 다음부터는 기다려야 된다. 2014년 9월부터 시작해서 2015년 5월 4일 등재신청서와 실사자가 낸 보고서를 토대
로 이코모스에서 등재권고가 나왔다. 드디어 7월 4일 독일의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그 진가를 세계적으로 인
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상승을 통해서 상생의 길로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계유산 등재로 우리나라는 세계유산 기금을 받을 수 있지만 경제 선진국으로서 더 내놔야할 입장에 있다. 대신 현재 세계가 세계유산을 서로 많이 등재하려고 키재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12개를 보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졌다.

지자체에 주어지는 혜택은 백제 유산이 보다 철저한 보존·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공주·부여·익산이 세계유산을 갖고 있는 도시로서 국내
외 관광객이 증가하면 관광수입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시군민들은 문화유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유산을 아끼고 자랑하는 중
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우선은 8개의 세계유산을 직접 찾아가보고 세계유산적 관점에서 유산을 돌아보며 즐겨야 한다고 말하는 노 추진위원장. 그는 유네스코 쪽에서는 함부로 복원하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보존과 관리에 대해 지속적인 관리를 하면서 시민들이나 국민들 그리고 관광 온 외국인들에게 홍보하고 교육하는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존 관리는 더 철저히 해야 하지만 지금은 문화재 보호법,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자체로도 규제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 건축을
새로 할 때 가능하면 유산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경관과 잘 어울려서 멋진 도시, 또 가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또 보고 싶은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것은 지자체(통합관리단) 몫이라고 말한다.

등재 후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 도시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노 추진위원장은 “공주·부여·익산은 백제라는 문화코드로 공동의 축제, 상호
교차 유산 답사, 공동의 홍보 등을 통해 세 지역의 화합과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며 “통합관리단(세계유산센터)이 효율적인 세계유산의 통합관리
를 위해 연구, 보존과 관리, 홍보, 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산의 보존·관리와 더불어 세 도시가 지속가능한
품격있는 도시로 발전하는 데 상생을 넘어 상승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5개 지자체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오는 10월에는
세계유산등재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고 내년 7월쯤이면 등재 1주년 행사도 해야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