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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검,

칼이야기


조선 국왕의 칼을 만나다



글 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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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조선 환도의 코등이(손잡이 장식, 위)와 화성박물관 소장 보검의 코등이(아래)
 


장자는 말한다.

“이 칼을 한번 쓰면 천둥소리가 진동하는 듯하며, 나라 안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게되어 모두가 임금님의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국왕의 칼입니다. (장자 ‘설검편’에서)”

장자는 칼이란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칼(천자검), 나라를 다스리는 칼(제후검), 서민들의 칼(서민검)이 있다고 가정하고, 조문왕에게 임금이 되어서 무사들을 시켜 칼싸움을 좋아하는 것은 투계(닭싸움)를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꾸짖는다. 임금은 누군가를 베고 찌르는 칼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칼을 사용해야 한다는 충고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일반인들이 사용한 칼이 아닌 국왕이 사용했던 치국(治國)의 칼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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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보검. 백옥 장식과 바다거북 껍질로 만들어진 칼집 등이 조선시대 국왕이 사용했던 칼임을 추정케 한다.
 


조선 철종의 어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몇년 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보았던 바로 그 칼과 동일한 모습의 칼이 그려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뭔가 전기 같은 찌르르함이 몸을 살짝 스쳐가는 느낌이었다. 무심코 “저런 게 임금의 칼일 것 같다”는 느낌이 사실이었다는 확인에서 오는 놀라움에서 기인한 숙연함이었다. 조선시대는 매우 뛰어난 기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임금이 정사에서 신하들과 논한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고, 왕실의 의례는 모두 조선왕실의궤라는 책에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각각의 임금들은 모두 생전의 모습이 화가들에 의해 그려져 어진으로 봉안, 어떤 용모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남아있었다. 불행하게도 6·25전쟁 기간 어진을 봉안한 장소에 화재가 발생해서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어진 중 철종 어진(보물 1492호)은 매우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 어진은 오른쪽 1/3이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왼쪽 상단의 기록을 통해 철종 12년(1861)에 그려진 철종의 어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철종 어진’은 임금이 군복을 착용한 모습으로 그려진 유일한 자료인데, 이 어진의 왼쪽 하단에는 칼이 한 자루 그려져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임금이 사용한 칼, 이른바 어도는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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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92호 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왼쪽 하단
에 조선시대 국왕이 사용한 칼이 그려져 있다.
 


육군박물관에는 철종 어진뿐만 아니라 어진에 그려진 칼과 동일한 형태, 대모갑에 백옥 코등이를 지닌 또 다른 칼 한 자루도 전시하고 있었다. 이 칼은 경인미술관 관장이 소장한 ‘대모갑금은장어도(玳瑁甲金銀裝御刀)’라고 불리는 칼로 육군박물관에 특별히 출품된 칼이라고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칼이 칼집에 넣어져있지만, 조명을 받은 대모갑 칼집으로 빛이 통과해서 은은하게 안에 품어진 칼날이 비춰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빛을 받으면 투명해져 안의 내용물까지 보이는 것이 대모갑의 특징이라고 알려진 대로, 과연 임금의 칼이 지녀야 할 격조를 잘 풍겨내고 있는 칼이었다.


그날 나의 안목을 또 한 번 이끌어준 것은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옥장식 칼이었다. 이 칼은 칼집은 비록 대모갑이 아니었지만, 코등이 장식이 백옥으로 장식되어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칼날이 풍겨내는 서슬의 격조도 여느 칼과 달리 엄중하고 온화했으므로 한눈에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침 전시관을 돌아보던 육군박물관의 학예사는 ‘그 칼 역시 임금의 칼’로 추정된다고 알려주었다. 우연스레 하루에 임금의 칼을 두 개나 육안으로 확인하고, 과거에 스쳐지나간 칼의 정체까지 알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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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갑금은장어도 철종어진에 그려진 칼과 동일한 형태로 국왕의 칼 ‘어도’라고 불린다. 경인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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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갑옥구보도어검 고려대 박물관 소장
 


돌아오는 길에 나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 달 전 보았던 조선 대원수 투구 등의 유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2013년 10월 1일 도쿄국립박물관을 방문해 조선 국왕이 착용했던 조선 대원수의 투구, 갑옷, 군복 등을 보고 왔다. 대원수란 국왕이 겸임하는 조선시대 군사상 최고직을 지칭한다. 그런데 조선 최고 군사직인 대원수, 국왕이 갖춰 입었던 갑옷과 투구, 군복 등은 정작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지 않고 도쿄국립박물관에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일제강점기 도굴왕이라 불리던 오구라에 의해 빼돌려져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선 대원수의 투구인지도 알지 못하다가 2010년 이후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 조선 대원수 투구에 대해 조사하고 일본 측에 입수경위 등을 질의한 결과 확인된 놀라운 소식이었다. 도쿄국립박물관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조선 대원수의 투구와 갑옷, 군복(동다리), 익선관 등을 2013년 10월 한꺼번에 공개하도록 이끌어낸 것이었다. 도쿄에서 국왕이 착용했던 대원수의 투구를 보고 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육군박물관에서 만난 칼들은 내게 여러 가지 무거운 생각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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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10월 도쿄 국립박물관이 최초 공개한 조선 대원수 투구와 갑옷. 조선 국왕이 착용한 문화재이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국왕의 투구와 갑옷, 군복 등을 찾아와 칼과 함께 전시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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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스님 |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되찾은 조선의 보물 의궤>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How are you? 이순신> <우리 궁궐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