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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효심 담긴 ‘덕종어보’의 귀환,
좋은 반환 사례로 ‘본보기’ 되길


글/사진 박선혜 사진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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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 측면 (제공: 문화재청)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 중 하나인 덕종어보.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덕종어보가 시애틀에서의 52년을 마무리하고, 지난달 1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덕종어보는 성종이 세자 신분으로 일찍 죽은 아버지(추존왕 덕종)를 기리며 ‘온문 의경왕(溫文 懿敬王)’이라는 존호를 올리고자 제작한 어보다. 미국에서 개인이 소장해오다 시애틀미술관에 기증된 후 지난해 문화재청과 미술관의 우호적인 합의로 지난 4월 1일 반환식을 통해 최종 반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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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 전체, 정면 (제공: 문화재청)
 


덕종(德宗)은 세조의 아들로, 이름은 장(暲)이다. 왕에 추존되기 전에는 의경세자(懿敬世子)로 불렸다. 1455년에 세자에 책봉됐으나 병약해 즉위도 하기 전에 20세로 요절했다. 이후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와의 사이에서 둔 둘째 아들인 잘산군 이혈(李娎)이 성종으로 추존됐다. ‘덕종’이란 왕호(王號)는 성종 2년인 1471년에 추존된 것으로, 조선 역대 왕들의 계보에는 올라가 있지 않다.

이번에 반환된 덕종어보는 1924년까지 종묘에 보관되다가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출 후 故 토마스 D. 스팀슨이 1962년에 뉴욕 아트 딜러로부터 구매해 보관해오다 이듬해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해 지금까지 소장해왔다.

덕종어보는 위엄 있고 단정한 모습의 거북뉴(龜紐, 거북 모양의 어보 손잡이)가 인판(印板, 도장 몸체) 위에 안정감 있게 자리 잡고 있다. 거북의 눈·코·입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조선 왕실의 위풍당당함과 굳건한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면에 새겨진 보문(寶文)은 6자로 ‘온문 의경왕 어보’라는 뜻이다.

거북은 조선시대 어보에서 자주 사용됐던 형상이다.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보뉴의 거북이가 황제의 상징인 용으로 바뀌었다.

어보(御寶)는 조선 왕실에서 국왕이나 왕비 등의 존호(尊號, 덕을 기리기는 칭호)를 올릴때 의례용으로 제작한 도장으로, 종묘에서 신성하게 관리됐다. 조선 왕실의 국가적 존엄과 국민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많은 문화재가 반출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소장처를 알 수 있는 문화재가 있는 반면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것도 많다. 외국 경매를 통해 종종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반출된 문화재 중에는 조선 왕실의 어보도 일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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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가 소장돼 있던 시애틀미술관 (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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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 반환식’에서 모습을 드러낸 덕종어보의 인면에 ‘온문 의경왕 어보’라는 뜻의 보문 6자가 새겨져 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소장자나 소장 기관 등으로부터 한국 문화재 소장품의 반환은 쉽지 않다. 소장자나 소장 기관의 입장에서도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덕종어보 반환은 소장기관의 자발적 의사를 통한 우호적 합의의 결과물 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은 덕종어보 반환 문제를 우호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입장을 지난해 7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시애틀미술관에 전달했고, 그때부터 시애틀미술관과 직접 협의를 진행했다.

시애틀미술관은 협의 과정에서 덕종어보를 반환할 뿐만 아니라, 보수(寶綬, 어보에 달린끈)까지 함께 기증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기증자 유족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하고, 미술관 이사회의 승인(2014년 11월 12일)을 신속하게 받는 등 적극적으로 문화재청에 협조했으며, 11월 반환에 최종 합의했다.

참고로 현재의 덕종어보 보수는 기증자의 외손자인 프랑크 베일리(Mr. Frank S. Bayley)씨의 후원으로 지난 2008년에 서울시중요무형문화재인 김은영 매듭장이 시애틀미술관에서 직접 달았다.



2015년 4월 1일 ‘덕종어보 반환식’

지난 4월 1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수많은 언론 취재진과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덕종어보 반환식’이 진행됐다.

특히 이날 반환식에는 덕종어보를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한 기증자의 외손자 프랑크 베일리(Mr. Frank S. Bayley) 씨와 시애틀미술관 킴멀리 로어샥(Kimerly Rorschach) 관장이 함께했다.

킴멀리 로어샥 관장은 기념사를 통해 “시애틀미술관과 관계자 이사회를 대표해 이곳 한국에 와 덕종어보를 고향인 한국으로 돌려드릴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덕종어보의 의미와 그간의 추정되는 경위를 지난해 이나영 선생님의 주도하에 국립문화재연구소 팀이 미술관 한국미술소장품을 조사하러 방문했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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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미술관 킴멀리 로어샥 관장(왼쪽)과 나선화 문화재청장(오른쪽)이 반환 합의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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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선화 문화재청장, 프랑크 베일리 씨, 킴멀리 로어샥 관장이 덕종어보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시애틀미술관 측은 덕종어보 반환 요청을 받고 미술관 큐레이터들과 미술관 소장품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사회, 프랑크 베일리를 비롯해 기증자의 유족들과 논의를 했다.

이날 로어샥 관장은 “모두가 덕종어보의 한국 반환은 마땅하며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오늘 이렇게 돌려드리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과 시애틀의 파트너십과 서로 간의 교육, 문화 교류가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함께 참석한 기증자의 외손자 프랑크 베일리 씨도 소감을 밝혔다. 그는 덕종어보를 외할머니인 故 토마스 D. 스팀슨 여사가 덕종어보를 소장하게 된 과정과 함께 어떻게 기증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베일리 씨는 “1963년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덕종어보를 시애틀미술관에 기증했다. 덕종어보는 외할머니가 작고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라며 “외할머니에게 덕종어보는 한국에서 온 대사이자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세월이 흘러 매우 운 좋게도 좋은 친구이자 매듭장인 김은영 장인에게 덕종어보를 위한 새로운 보수를 만들어 달라고 설득했다. 전통 소재와 기법을 사용해 6개월 동안 공을 들여 제작됐다”고 어보에 달린 끈의 제작에 담긴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전했다.

이날 베일리 씨는 “외할머니의 덕종어보 기증은 중요한 문화재의 복구와 회복의 시작이었다고 믿고 싶다. 오늘 마침내 한국 국민의 품으로 덕종어보가 돌아옴으로써 그 과정이 완성됐다고 본다. 외할머니가 이 결과를 보고 매우 흡족해 하셨을 거라 믿는다”고 소감을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