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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로 빛을 보다
청주시 소재 고인쇄전문박물관
 
 

지난해 12월 한글날 법정공휴일 재지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 한글날이 법정공휴일이 됐다.

세계 문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 한글. 세종대왕은 1447년 청동으로 한글활자를 만들어 ‘갑인자’와 함께 조판해 <월인천강지곡>을 인쇄했다. 이것이 최초의 한글활자본이다. 한글 금속활자는 세종대왕 때 처음 만들기 시작해 조선말까지 약 30종이 주조됐으며 한자활자와 함께 사용됐다.
 
글/사진 신정미 사진제공 고인쇄전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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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흥덕사지, 금속활자본 <직지>를 인쇄한 곳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찍어내 인쇄문화사적 의의가 매우 큰 사찰터 흥덕사지는 교육문화의 도시 청주에 있다. 충청북도 도청소재지로 행정뿐 아니라 정치·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인 청주는 삼한시대에 마한땅, 백제 상당현이었다가 고구려가 점령한 이후에는 낭비성,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서원경이라 불렀으며, 고려 때는 청주목이라 불린 유서깊은 고을이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주로 지명을 개칭했으며, 고려 우왕 3년(1377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을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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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능화판과 <직지>하권
   

 
<직지>는 1374년 백운화상이 엮은 책으로 이 책 마지막 장에는 인쇄시기, 인쇄장소, 인쇄방법이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은 독일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가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42행 성서>보다 70여 년 빠른 것으로 우리 선조들이 인류문화사상 제일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수한 민
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이에 2001년 6월 그 빼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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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꾸랑
<직지> 는 1901년 모리 스꾸 랑 (Mauricecourant,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 보유판에 수록됨으로써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그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유네스코 주최로 프랑스에서 개최된 ‘세계 도서의 해(International
Book Year)’ 기념행사인 ‘책의 역사’ 전시회에 소개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이에 <직지>에 대한 국내의 관심 또한 고조됐다.
 
그러나 <직지>에 기록된 ‘청주교외 흥덕사’라는 기록만으로는 사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가 1984년 한국
토지공사에서 시행하던 ‘운천지구 택지 조성공사’ 중에 옛 사찰 터가 발견됐다. 1985년 청주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
사한 결과 ‘흥덕사’라는 기록이 있는 ‘청동금구’와 ‘청동불발’ 등의 불기구가 발견돼 비로소 청주목 흥덕사의 위치가
확인됐다.

절터 규모는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과 탑, 금당과 강당이 배치되고 주위에 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출토된
유물과 지층조사를 통해 흥덕사는 늦어도 849년부터는 존재했고, 1377년 <직지>를 인쇄한 후 화재로 인해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이중처마팔작지붕의 금당과 삼층석탑으로 정비·복원했다. 치미(鴟尾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가 돋보이는 흥덕사는 학계의 인정을 받아 1986년 5월 사적 제 315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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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활자 인쇄체험
 
이후 1987년부터 5년에 걸쳐 정비·복원한 결과 1992년 3월 흥덕사 맞은편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개관했다. 청주시는 1996년 1월~2000년 5월까지 총사업비 113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4,868㎡ 규모(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증축해서 동년 6월에 재개관했다.
 
우리나라 인쇄문화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청주고인쇄박물관은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 인쇄술을 창안해 발전시킨 문화민족임을 널리 알리고,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선조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길이 보존해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세운 전국 유일의 고인쇄전문박물관이다. 이곳은 한국 고인쇄문화를 주제로 전시와 연구,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며 매년 16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람객이 방문하는 충북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5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인쇄문화발달사를 익히는 과학교육의 장으로 활용됨은 물론 다양한 인쇄문화체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윤전기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해서 외형을 만든 이곳은 이름을 정하는데도 ‘흥덕사지박물관’, ‘직지박물관’ 등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 우리나라가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사실에 걸맞은 박물관을 세워야 하는데 남·북한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금속활자 발상지 개성에 세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현재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한국에 있고, 금속활자 발명국이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면서 금속활자뿐 아니라 목판인쇄 등 인쇄를 전체적으로 커버할 수 있는 박물관. 근·현대인쇄방법(개화기 이후 서양식 납활자가 들어와서 오늘날 인쇄되는 구텐베르크식 인쇄)과 차별되는 우리 전통적인 ‘고인쇄’방법을 체계적으로 전시 보전을 하기 위해 고인쇄전문박물관으로 지어졌다.

이 박물관 명칭은 한국 고인쇄 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육성하기 위해 문화재관리국(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정한 것이다. 영어로는 Cheongju early printing Muse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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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근·현대인쇄전시관 내부 02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2층) 03 활자주조공방(1층)-금속활자 만들기
 
 
박물관 내부는 1,2층으로 직지와의 만남과 활자공방, 인쇄의 시작과 고려·조선시대관, 활자주조관실, 동서양의 인쇄 문화 등 한국의 고인쇄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직지와의 만남’에서는 직지와 흥덕사를 설명하는 매직비전, 직지 관련 유물과 흥덕사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직지금속활자공방 재현관’에서는 직지의 금속활자 인쇄과정을 9단계로 나눠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하며, 각 단계로 이동하면 자동으로 인형틀이 움직이면서 각 단계의 금속활자 제작과정을 설명해준다. 여기서는 사찰 재래의 전통적 밀납 주조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인쇄문화실’에서는 인쇄의 기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쇄발달사를 시대별·주제별로 전시하고 있으며, ‘활자주조와 조판실’에서는 금속활자 주조와 조판에 관련된 실험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동서인쇄문화실’에서는 일본·중국과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와 인쇄도구·목활자·목판·장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금속활자 발명국, 고려

정보전달매체는 언어(몸짓·소리), 문자(필사·기록), 인쇄(목판·활자), 전자미디어(컴퓨터·IT 등)로 발전했다. 인류가 탄생하면서 몸짓이나 소리에 약속된 의미를 담아 의사를 전달했던 선사시대 이후, 각종 부호나 문자를 사용해 필사로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각종 서적을 다량으로 간행하는 등 정보유통이 활발해져 지식이 축적될 수 있었다. 전기가 발명되면서 컴퓨터 등 전자미디어가 출현해 정보의 초고속, 초대량 전달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정보전달 매체로 금속활자의 발명을 꼽고 있다. 그 이유는 활자를 이용해 책 등을 간행, 보급함으로써 지식정보의 대량전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아이젠슈타인은 서양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를 시작하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정보화의 핵심인 금속활자 인쇄술은 13세기 초 한국에서 발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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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왔던 고려시대 무신정권기. 그러나 최충헌에 의해 성립된 최씨 무신정권은 그의 아들 최이(우)에 이르러 혼란했던 사회가 안정기에 들어가게 된다. 무신출신이었던 최이는 서방(書房)을 설치하고 이규보를 등용하는 등 새로운 문신들을 양성하고자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고, 책을 만들기 위해서 인쇄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책 만드는 기술은 목판인쇄 방법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였다. 목판은 한번 만들어놓으면 같은 내용의 책을 지속적으로 인쇄하는 게 가능했지만, 여러 종류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일이 판을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문제나 경제적인 부담도 해결하면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종류의 책을 간행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목판에서 다종의 책을 간행하기에 편리한 활자인쇄로 전환하면서 재료도 나무에서 금속을 이용하는 금속활자 인쇄를 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의 기원과 관련해서 여러 견해가 있으나 늦어도 13세기 초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예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와 <상정예문(詳定禮文)>을 꼽을 수 있다. <증도가>의 끝부분에 있는 최이의 발문에 따르면 <증도가>는 참선하는데 매우 요긴한 책이지만 전래되지 않아 기존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이 책을 1239년에 목판으로 다시 새겼다(번각)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에 따르면, 금속활자로 <상정예문> 28부를 찍어 해당 관청에 나눠주고 보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현재 2점이 전하는데 모두 개성에서 출토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개성의 개인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복’자 활자가 있으며, 개성역사박물관에도 개성 만월대 신봉문에서 발굴된 ‘전’자 활자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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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는 글씨가 새겨진 청동금구(靑銅禁句)
02 ‘황통10년흥덕사(皇統十年興德寺)’가 새겨진 청동불발(靑銅佛鉢)
03 직지의 권말 간기
 

 
이외에 2010년에는 <직지>보다 138여 년 이상 앞서는 활자가 공개돼 국내 서지학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름하여 <증도가>를 인쇄했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字)다.

고인쇄박물관 황정하 학예연구실장은 ‘증도가’자에 대해 “최근 북한에서 넘어온 활자 중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증도가’자와 꼴이 같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에 대해 문화재청에서는 좀더 연구해야 되겠다고 해서 현재 연구 중에 있는 걸로 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활자가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을 다시 목판으로 만든 ‘증도가’자가 맞다면 1239년 이전 활자로 시대가 앞서게 돼 인쇄사에서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실물 활자가 남아있으니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어쨌든 <직지> 이전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들이 이미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그 증거가 맞다면 ‘증도가’자는 활자를 이용해 찍은 책은 없지만 실물 활자만 남아있는 것이고, 활자로 책을 인쇄한 인쇄본이 남아있는 건 <직지>가 가장 오래된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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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주조전수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인쇄출판 문화

청주시는 지난 2007년 고인쇄박물관 일대를 직지문화특구로 지정해 한국 인쇄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결과로 작년 9월에는 금속활자주조전시관을 개관해 한국 금속활자 인쇄기술의 보존과 전승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이곳은 <직지> 탄생지인 흥덕사지와 고인쇄박물관의 전시기능을 연계해 금속활자 교육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고인쇄박물관이 전통시대의 금속활자인쇄술과 관련해 인쇄도구·금속활자·인쇄물 등 실물위주 구성이라면, 금속활 자주조전시관은 인쇄물이 완성되기까지 기술적인 부분, 특히 금속활자주조기술을 보존·전승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상주하면서 고려시대 금속활자 복원(<직지> 금속활자)을 수행하고 있으며, 전통 책 만들기 체험과 매주 금요일 세 차례의 금속활자 주조시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3월 근·현대인쇄전시관을 고인쇄박물관 분관형식으로 개관했다. 국내에 산재돼 고물로 버려지고 있는 인쇄기기와 관련자료들을 수집, 보존·관리하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보편적인 인쇄방식이던 납활자 인쇄기술을 보존하기 위한 취지다. 이곳은 개화기 이후 서양의 인쇄기술 도입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고인쇄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와 체험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통인쇄에 비하면 납활자인쇄는 한국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100년 정도) 동안 사용됐다. 19세기 말에 도입돼 20세기 후반까지 한국 인쇄출판의 주류를 담당했던 납활자 인쇄기술은 컴퓨터를 활용한 전산조판기술에 밀려 부피만 차지하는 고철로 취급돼 급속히 사라져 이제 특정한 곳이 아니고
서는 쉽게 볼 수도 없게 됐다. 그러나 전통시대와 현대 인쇄 기술을 이어주는 한국인쇄출판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존과 전승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이에 청주시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자료 수집과 연구·전시, 인쇄체험 등을 수행할 수 있
는 전시관을 개관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로써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개화기 이전 전통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보존·전승하고, 개화기 이후 새로운 인쇄기술의 도입을 통해 급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출판문화 아울러 미래의 IT기술과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인쇄기술을 조명해 한국 금속활자 인쇄문화의 역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청주시는 <직지>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9월 4일을 청주 시민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9~10월에 ‘직지축제’와 ‘직지상 시상식’을 번갈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10월 직지축제가 열리는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