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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닮은 그곳,
사람들의 영혼을 밝히다

윤동주문학관
 
글 백은영 사진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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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란 꼭꼭 싸매고 가리고 덮어서라도 감추고 싶은 비밀과 같다. 자신의 욕심이나 실수가 빚어낸 부끄러움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아픔과 맞서 싸울 때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 이가 있다. 부끄러움의 시인으로 불리는 시인 윤동주다.
 
 

스물아홉 짧은 생을 살다간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2.30~1945.2.16). 그는 살아가는 동안 참회와 속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의 서러움을 가슴에 안고 살다가 조국의 광복을 불과 여섯 달 남기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비록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의 시는 영원히 살아있어 시대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그의 시는 아름답다.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별 하나에 그리움을 녹여낼 때면 아름답다 못해 애틋하다. 평범한 시어(詩語) 속에서 참회와 속죄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그의 능력 때문인가. 그의 시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서시(1941.11.2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용도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제2전시실 ‘열린 우물’로 탄생시켰다.
 
 
1941년 시인은 자신의 시를 책으로 엮으려했지만 일제의 한국어말살정책으로 우리말로 된 책자 발간이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삶이 쉽지 않았듯 시인의 삶 역시 그러했다. 시인은 육필 원고로 된 열 아홉 편의 시를 묶고, 맨 앞장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육필 원고의 서문을 시로 적은 것이 바로 <서시(序詩)>다.

제목과 서문이 책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윤동주의 <서시> 또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과 그의 시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윤동주의 시는 읊을 때마다 구도의 길을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식민 지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인은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스스로는 물론, 조국과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된 윤동주(尹東柱)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실린 <서시(序詩)>는 시인 윤동주를 대표하는 시로 꼽힌다. 동시에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방향과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식민지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끝없는 고뇌와 외로움 가운데 살다간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곳이 있으니 바로 윤동주문학관이다.
 
 
수도가압장 문학관이 되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 지하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7022번 지선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보인다.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아도 경복궁역에 내려 서촌을 따라 30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윤동주문학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되는 윤동주문학관의 외관은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렇다고 새로 지은 건물이 주는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문학관을 계획했을 당시부터 새로 짓기보다는 시인의 삶을 잘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던 폐쇄된 청운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해 시인을 꼭 닮은 문학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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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제2전시실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윤동주와 이곳 서촌 일대는 무슨 관계가 있기에 종로구에서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을까.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머물렀던 옥인동과 부암동의 하숙집, 시상을 정리하며 걸었던 인왕산길 등이 이곳
서촌 일대였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시절, 시인은 이인왕산을 오르며 그 시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참으로 많은 고뇌와 갈등을 했을 것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던 그 인연의 끈이 오늘날 윤동주문학관을 짓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2011년 종로구는 청운수도가압장을 윤동주문학관으로 만들기 위해 리모델링 설계를 맡겼고, 설계를 맡은 이소진&Ateliers Lion Seoul은 기본설계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기계실 뒤편에 속이 텅 빈 물탱크 두 개가 발견된 것이다.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외려 이 물탱크의 발견이 건축가 이소진에게는 보물과 같았다고 한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자 했고 건축주인 종로구청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공간이 바로 지금의 윤동주문학관이다.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2012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
무총리상을 수상할 만큼 큰 울림을 주는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다.

문학관은 또한 기승전결의 미학이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제1전시실을 둘러보고 제2전시실을 거쳐, 제3전시실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순례를 떠나는 느낌마저 든다. 찰나의 순간, 사람들은 시인 윤동주가 되어 그의 짧은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시인의 인생을 닮고 또 담다
 
문학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존의 가압장 기계실을 리모델링한 제1전시실이 제일먼저 눈앞에 펼쳐진다. ‘시인채’로 불리는 이곳은 9개의 전시대에 시인의 일생을 기록해놓았다. 시인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과 친필원고 영인본 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열돼 있는 만큼,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
다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해지고 고뇌가 깊어지는 시인과 마주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전시실 한가운데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은 시인의 집 마당에 있던 우물을 옮겨온 것으로 관람객들이 저마다 이곳에 얼굴을 비춰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시인의 일생을 눈으로 본 뒤, 열린 철문 밖으로 나가면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을 만나게 된다. 리모델링 설계 도중 발견하게 된 첫 번째 물탱크로 막혀있던 위쪽 벽(천장)을 뚫어 작은 정원처럼 만들었다. 시인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곳은 벽면을 따라 물을 저장했던 흔적들이 마치 세월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다보니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뇌하던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인은 어쩌면 자신은 우물 안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곳 열린 우물에서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다. 이토록 눈부신 빛(광복)을 코앞에 두고도 우물 밖 세상을 만나지 못한 시인 윤동주.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은 그런 윤동주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닫힌 우물’은 용도 폐기된 또 하나의 물탱크로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이곳은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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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다시 되돌아 나와 문학관 뒤로 펼쳐진 시인의 언덕을 오르면,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산책로가 길게 펼쳐져있다. 이 길 위를 걷다보면 그 옛날 시인이 한 번쯤은 걸었을 그 길과 마주할 수 있지는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산책로 나무 울타리마다 곱게 쓰인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詩語)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를 부르던 시인의 목소리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울타리마다 새겨진 시인의 시와 함께 그리움에 젖어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시인의 시비(詩碑) 앞에 다다른다.
 
시비에는 시인이 일생 추구하고자 했던 부끄러움 없는 삶을 대변하는 <서시>가 새겨져있다. 이 시비 앞에 서면 너나없이 소리 내어 혹은 조용히 시를 따라 읊게 된다. 기자 또한 눈을감고 시인의 시를 읊어본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시인의 그 간절하고 따뜻한 마음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되길 바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윤동주문학관 02-2148-4175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3-100 (도로명: 창의문로 119)
대중교통: 지선버스 7212, 1020, 7022/ 마을버스 종로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