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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求禮)는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가이자 추리문학관 관장이기도 한 김성종 작가의 고향이다.

세 가지(지리산, 섬진강, 들판)가 크고, 세 가지(수려한 경관,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가 아름다워 ‘3대(大) 3미(美)의 고장’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만큼 지리산이 갖는 의미가 크다. 하기야 민족의 영산(靈山)인데 이 땅에 사는 어느 누구에겐들 그것이 갖는 의미가 각별하지 않을까만, 그 품안에서 자란 김성종 작가에게는 더욱 각별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 중에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는 것들이 꽤 있다.

먼저 <늑대 소년 다루>는 천재 소년의 활약과 그로 인한 인생 반전을 다루고 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 소위로 참가했다가 전사해서 지리산에서 60여 년을 백골(白骨)로 있던 대기업 회장의 아버지를 다루가 찾아 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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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생인 다루는 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다만 글을 읽지 못하던 때부터 엄마가 동화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는데 그 영향을 받아서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신문을 꾸준히 읽어서 다방면에 지식을 갖게 되었고 사고력도 뛰어났다. 어머니를 암이라는 병마(病魔)에 잃고서, 원래 가수였지만 목을 다쳐 더 이상 노래를 하지 못한 채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두 살 터울인 누나와 캠핑카에 살면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다.

어느 날 하굣길에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강아지를 구해 같이 살게 되는데, 고양이에게 한쪽 눈을 잃은 강아지가 마치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던 자신의 엄마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다루를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무럭무럭 자란다. 다루는 지옥을 지키는 개인 ‘케르베로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빠와 누나와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다루는 케르의 도움으로 한국전쟁 때 전사했던 서중보 소위를 포함한 아홉 명의 유해를 발견해 그 사실을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에 알린다. 신문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중보 소위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경영하는 서문구 회장의 아버지였다. 서 회장은 백일 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다루와 케르는 하루아침에 전국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서 회장은 감사의 뜻으로 다루 아버지에게 큰 액수의 돈과 아파트를 제공하고 일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다루의 장래 교육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을 약속한다. 물론 소설이 허구의 세계이기에 허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더욱이 우리 민족처럼 많은 일을 겪은 경우에는 이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 많다.
 
지난달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만났던 이산가족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바로 그렇다. 김성종 작가의 작품 중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하는데 바로 <죽음을 부르는 소녀>이다.
 
주인공 오현미는 농고(農高) 2학년이다. 1학년 평균 성적이 1백 점 만점인 현미는 용모 또한 빼어나서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은 존재인데 무당의 딸이다.
 
현미는 3월 마지막 주말을 맞아 같은 학교 선배, 친구들과 무모한 지리산 등반에 나선다. 지리산 밑에 살지만 아직 천왕봉을 한 번도 밟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가 여섯 명의 청소년들은 일종의 영웅 심리가 작용하여 1박 2일 예정으로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을 택하게 된다. 그 결과는 너무도 참담하다. 다섯 명은 죽고 현미 혼자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에서 살고 있던 왕우(王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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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우는 본래 지리산 밑에 살던 양민인데 빨치산들이 마을에서 빼앗은 물건을 산으로 나르기 위해 데려간 것이었다. 천하장사였던 그는 남보다 짐을 세 배 정도 졌다. 듣지도 못하고말도 못하는 데다가, 항상 입을 헤벌리고 침을 흘려대는 그는 영락없는 바보였다.

하지만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하는 법. 산 속에서 모진 고생을 겪는 동안 왕유는 어느새 산 속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고 총 쏘는 법도 배웠다. 왕유가 산으로 들어온 지 2년이 되던 해 다른 빨치산들은 모두 죽고 왕유와 동료 하나만 살아남았다. 결국 동료는 하산해서 투항하고, 왕유 혼자 40년을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상태로 살고 있었는데, 일행들과 떨어져서 지리산을 헤매다가 길을 잃고 쓰러진 현미를 발견하고 보살핀 것이다.

이 두 작품을 보면 지리산을 주 무대로 진행된다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작가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종 작가의 역사의식이 잘 나타난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명의 눈동자>이다. 이 소설은 이후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1991년 10월부터 1992년 2월까지 방영된 원작과 같은 제목의 드라마는 58%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해서 한국전쟁으로 마치는데, 특히 마지막 회인 36부는 빨치산이 된 최대치(최재성 분)와 그의 운명적인 여인 윤여옥(채시라 분)이 역시 지리산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은 스스로 어떤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앞에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었을 뿐이다.

김성종 작가는 추리문학가이다. 소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기에 때로는 그 내용이나 결론이 밋밋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추리소설은 그렇지 않다. 추리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인 ‘죽음’과 맞닥뜨리는 상황이 늘 전개되기 때문이다. 때론 청부살인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쫓기기도 한다. 아니면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건 해결을 맡는 형사나 탐정이 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이 바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영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명탐정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이다. 하지만 그는 영국의 의사이자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Arthur Ignatius Conan Doyle)의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다시 말해 가상인물이다. 허구의 인물인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자를 포함해서 지금도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다. 셜록 홈즈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례가 있는데, 소설 속에서 탐정사무실 주소는 “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호”이다. 하지만 이는 실재하지 않는 주소다. 그렇지만 영국 런던에는 엄연히 셜록 홈즈 박물관이 있고 그 주소가 베이커
가 221번지 B호(실제 주소는 239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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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작가가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추리문학관을 세운 것은 1992년이다. 전라도가 고향인 그가 부산에 자리를 잡은 것이 궁금해 질문을 하니, ‘당시 서울에서 거주하면서 부산에서 나오는 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오가다 보니 부산이 좋아졌다’고 한다. 또 ‘서울은 너무도 복
잡하고 시끄럽고 살벌하기까지 해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하는 곳이지만, 부산은 제2의 도시라 불릴 만큼 대도시이면서 바다를 끼고 있어서 추리소설의 소재를 얻고 구상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현역으로 추리소설을 열정적으로 쓰고 있는 그는, 먼 곳에서 불쑥 찾아온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후 집필을 위해 조그만 배낭을 둘러매고 총총히 문을 나섰다.

추리문학관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개인 전문도서관 1호이고, 그것도 추리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기에 그 존재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고 한다. 김성종 작가가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을 골라 터를 마련하고, 사재 35억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지은 추리문학관은 1층에서 4층까지는 열람실과 전시실이고 5층은 집필실이다. 여기에 5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한 권 한권이 작가가 직접 구입한 것들이고 이중 국내외 추리소설이 2만여 권에 이른다고 한다. 추리문학관은 문학강좌, 독서토론, 추리소설교실, 겨울추리여행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헤르만 헤세 문학관을 다녀온 방문기와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추리문학관이 위치한 곳이 해운대인데, 2009년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에 ‘해운대’가 있다. 영화를 보면 해운대를 향해 엄청난 규모의 지진해일이 몰려와 여름바다를 즐기던 사람들을 덮쳐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바로 국제해양연구소의 지질학자 김휘(박중훈 분) 박사가 대마도와 해운대를 둘러싼 동해의 상황이 2004년에 발생했던 인도네시아 지진해일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고하는 것을 재난 방재청이 한반도는 지질학적 통계적으로 지진해일이 올 확률은 없다고 하면서 무시하는 대목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실 동물들은 자연현상에 대해 인간보다 훨씬 빨리 감지하고 대처해서 이에 대한 속설(俗說)도 많다. 그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면 물고기가 물 위에서 숨을 쉬거나, 제비가 낮게 날거나, 개미들이 긴 행렬을 이루면 비가 온다고 한다는 것이 있다. 또 자라가 뭍에 올라오면 큰 홍수가 난다는 말도있다. 그런데 이 말들을 분석해보면 과학적으로도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는 그런 것을 감지할 수 없기에 다양한 측정도구를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꽤 정확한 날씨 정보를 얻어서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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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현상과 함께 생각해 볼 것이 인류에게 장래에 닥칠 일이다. 종교시설에서 과학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이적(異蹟)이 간혹 일어난다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부처나 비석이 땀을 흘리고, 가톨릭계에서는 성모상이 눈물을 흘리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에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수많은 점술가를 포함한 수많은 예언가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육신은 멀쩡히 살아 있어도 정신이 죽은 사람은 이미 온전한 사람이 아니다. 이에 비해 비록 육신은 없어졌어도 그 정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살았다 해도 죽은 자가 있고, 죽었다 해도 산 자가 있는 것이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정함을 잃은 스포츠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이를 지난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목도하였다. 선수가 보인 경기 내용이 아니라 국적이나 그 밖의 다른 요소를 고려해서 점수를 주는 심판, 앞서가는 선수를 잡아채려고 내미는 부끄러운 손을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딴메달이 무슨 값어치가 있는 것인가? 이에 비해 최선을 다해 무결점 연기를 펼치고서도 부당한 판결을 받아 매우 아쉬워 하면서도 결과에 승복하는 진정한 챔피언의 모습도 보았다.
 
지난달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본 목련은 한겨울에 봤던 그것과는 달랐다. 사실 그 모습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내기들이 희망을 안고 새로운 학교생활을 시작하려 하는 것을 보며, 저 목련도 그 안에서 하얗게 꽃을 피울 준비를 거의 마쳐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봐요. 발밑에는 지옥이 없고 머리 위에는 빈 하늘만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죽이고 죽이기 위해 할 일이 없을 거라는건 어렵지 않게 상상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할 종교도 역시 없을거예요. 모든 사람이 평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나를 몽상가라 하겠죠. 하지만 나만 이런 꿈을 꾸는 게 아니랍니다. 그대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랄게요. 그러면 우리의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소치올림픽 김연아 선수의 갈라쇼 곡 ‘이매진’의 노랫말-
 

또 진정한 여왕이 우아한 몸짓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인류가 서로 한 형제가 되어 모든 민족·국가·혈통·빈부의 차별을 넘어서서 진리 앞에서 평등한 존재가 되는 세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