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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우리나라 목조 건물


글, 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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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시대 공동체 주거시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고대 인류는 자신들의 삶과 가족 공동체를 위한 주거 시설로서 처음에는 동굴에 살거나 간단한 원형 움집을 지어서 살아 왔다. 구석기시대를 거처공동체 구성원이 늘어나고 주거시설의 용도로 다양한 기능이 필요한 것과 자연재해 및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견고한 주거 시설이 필요해짐으로써 나무와 흙을 이용한 튼튼한 움집이나 음식물의 저장소를 지어 살았다. 가장 간단한 목조 건축으로서의 움집은 평지 위에 둥글게 깊지 않은 움을 파고 둘레에 나무 기둥을 안쪽으로 기울도록 세웠다. 거기에 기둥머리들이 서로 모이게 한 다음 둘레에 볏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이엉을 만들어 덮어서 바람이나 비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신석기의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에 들어와서 주거지의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함에 따라 최소 사각형의 주거지의 4개 모서리에 땅을 파서 굵은 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를 서로횡재(橫材)로 연결하여 움직이지 않게 집의 골격을 구성했다. 그 위에 팔(八)자형의 용마루가 있는 맞배지붕을 올려 집의 전체 구조를 완성한다. 초기에는 팔(八)자 지붕 골격에 기다란 서까래 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볏짚 따위를 덮은 뒤에 흙을 얹어서 비가 새지않도록 하였고, 벽은 수직으로 세운 기둥과 기둥 사이에 통나무나 널판을 가로 질러 대어서 꾸몄을 것이다.

석기시대부터 발전한 움집은 농경시대의 볏짚과 진흙을 재료를 이용하여 건축된 우리나라의 초가집으로 발전하게 된다. 주상에 건축된 주거 중 우리나라의 기후와 자연환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초가집이다. 초가집은 우리나라 산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나무로 집의 기둥을 만들고 추수를 마친 벼의 짚으로 지붕을 만든 후 진흙으로 두껍게 벽을 만들었으며 창호지 문을 설치한다. 초가집은 가벼운 볏짚 때문에 기둥에 거의 압력을 주지 않으며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 녹아도 짚의 결을 따라 흘러내려 잘 새지 않는다. 볏짚은 가볍고 구멍이 많아서 단열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 또한 벽에 바르는 진흙을 갤 때 짚이나 수수깡을 넣어서 바르기 때문에 진흙벽은 낮에는 태양열을 흠뻑 받아들인 후 차가운 저녁에 실내로 열을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초가집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에너지 절약형 주택이다.

삼국시대의 건축물 중 왕궁의 전각(殿閣)과 불교 사원(寺院), 다리 등 공공 건축물 및 민간 주택은 대부분 목조 건물로 지었다. 삼국시대의 목조 건물이 한국적인 특색과 아름다움을 갖춘 목조 문화를 만들었고 이 목조문화가 고려와 조선에 이어져 현재의 경복궁 전각들이나 전통 한옥으로 이어졌다. 건축과 자연과의 조화에서 우리나라의 목조 건축은 자연을 억압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자연 속에 파고들어가 자연과 융합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며, 오히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완하는 그 역할을 갖고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다.

신라 말 도선대사가 기록했다는〈 도선비기〉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터로 ‘소백산아래 풍기 금계리’를 지명하였고, 조선 최고의 예언서〈 정감록〉에서도 풍기 금계리를 십승지(十勝地) 중 첫 번째라고 하였다. 필자는 어느 해 7월 중순 이 풍기 금계리를 찾아갔는데 풍수지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도 소백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와 평온한 금계리 마을을 보고 ‘과연 명당자리이구나’ 하고 은연 중 감탄하였다. 풍광이 수려하고 울창한 소나무 사이의 금계천에 걸쳐있는 금선정을 보았을 때 그 경치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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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도다이지(동대사) 대불전(일본), 우)자금성 태화전(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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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우러진 금계천 금선정
 


수지리를 모르는 입장에서도 소백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와 평온한 금계리 마을을 보고 ‘과연 명당자리이구나’ 하고 은연 중 감탄하였다. 풍광이 수려하고 울창한 소나무 사이의 금계천에 걸쳐있는 금선정을 보았을 때 그 경치에 매료되었다.

우리나라 목조 건물은 고대로부터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지붕의 모양은 용마루에서 내려오다가 처마 끝에 이르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곡선을 이루고 지붕의 밑면도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다. 이러한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은 자연과 어우러져 목조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중국의 지붕 곡선은 용마루에서 처마로 직선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하늘로 들처 올리는구조이고 지붕의 밑면도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 매우 크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 특색이다. 일본의 목조건물 지붕도 중국과 비슷한 직선 위주이고 매우 크며 지붕 중간에 반원형의 돌출 구조물을 두어 건축물이 위압적으로 사람들을 내려 보게 하였다. 한국, 중국, 일본의 목조 건물들의 구조와 지붕만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의 목조 건물이 주위의 자연과 잘 어울리고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이러한 나라별 목조 건물의 차이는 아마도 국가별 거주지역의 자연환경, 민족의 특성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고대의 목조 건축이 시작된 때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