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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여신 이야기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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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만든 것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였다. 그는 하늘과 땅, 해와 달을 만들었으며, 모든 신과 악마들까지 만들었다. 그렇지만 브라흐마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나는 어째서 외로운 것일까? 그래, 내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외로운 거겠지. 내 짝을 만들도록 하자.’

브라흐마는 자신의 몸을 부풀려 둘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한쪽은 남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여자가 되었다. 인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불이 반드시 필요할 거야. 인간들을 위해 직접 불을 만들어주자.’

이렇게 생각한 브라흐마는 불을 만들기 전에 입 안에 있는 털과 손바닥에 있는 털을 뽑았다. 그러고는 입과 손바닥으로 불을 만들었다. 인간은 이때부터 입과 손바닥에는 털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여 아기를 낳았다. 어느 날, 여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브라흐마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나한테는 브라흐마가 부모님이 아닌가? 부모님과 결혼하여 살다니 말도 안 돼.’여자는 브라흐마로부터 도망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암소로 변하여 숲 속 깊이 숨었다.

하지만 브라흐마를 속일 수는 없었다. 브라흐마는 수소로 변하여 암소가 된 여자를 찾아가서 말했다.

“우리는 브라흐마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브라흐마의 몸이 둘로 쪼개져 남자와 여자가 된 것이오. 우리는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하오. 그래야 이 세상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될 것이오.”

수소가 된 브라흐마는 암소가 된 여자와 결혼하여 송아지를 많이 낳았다. 그래서 세상에는 소들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는 브라흐마와 오래 살지 않았다.

다시 브라흐마에게서 도망쳐 암말이 되었다. 하지만 브라흐마는 수말이 되어 암말이 된 여자를 찾아냈고, 다시 결혼하여 망아지를 많이 낳았다.

그 뒤에도 여자는 브라흐마에게서 달아나 암사슴, 물고기, 곤충 등 온갖 생물로 변했다. 그때마다 브라흐마는 같은 생물로 변해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세상에는 많은 생물들이 태어났다. 어느 날, 브라흐마는 더 이상 여자를 찾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만들려고 생각했던 모든 생물이 태어나 세상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 땅의 여신이 브라흐마를 찾아왔다. 땅의 여신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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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Brahma Indian, Pahari, about 1700년경.
Probably Nurpur, Punjab Hills, Northern India Dimensions Overall 14x9.8㎝)
 


“브라흐마 신이시여, 제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생물들이 너무 많아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브라흐마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따라서 브라흐마처럼 누구도 죽지 않았다. 처음부터 죽음을 모르는 신처럼 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은 생물들로 들끓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지 땅 위를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브라흐마는 땅의 신을 돌려보낸 뒤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참으로 고민스럽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하지?’

브라흐마는 밤새도록 생각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내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애써 만들어 놓았더니 내게 이런 고민이나 안겨? 아주 못된 놈들이네.’

브라흐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입, 귀, 코 등 그의 몸의 구멍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분노의 불은 아주 무시무시했다. 하늘과 땅, 온갖 생물들을 모조리 태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손을 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온 세상이 불에 타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큰일 났네. 분노의 불로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어.’

인간들을 다스리는 신인 루드라는 보다 못해 브라흐마를 찾아갔다. 그러고는 허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호소했다.

“브라흐마 신이시여, 제발 화를 그쳐 주십시오. 당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낳은 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루드라의 말에 브라흐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얼른 화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네 말이 옳구나. 모든 생물이 나의 자손인데 그들을 없앨 수는 없지. 내가 잘못했다.”

브라흐마는 사과를 하고는 루드라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생물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을 줄일 방법이 없구나. 좋은 수가 있으면 말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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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흐마 신이시여, 생물들을 완전히 없애지 말고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게 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얼마쯤 살다가 죽게 만드는 겁니다. 죽었다가는 또다시 태어나게 하고….”

브라흐마는 얼굴빛이 환해졌다.

“그거 참 좋은 방법이구나. 죽음이 있다면이 세상이 오늘날처럼 생물들로 들끓지는 않겠지.”

브라흐마는 분노의 불을 껐다. 그러자 브라흐마의 몸에서 한 여인이 나왔다. 그 여인은 빨간 옷을 입고 있는데, 두 눈이 붉고 손바닥 발바닥도 붉었다. 그리고 목걸이, 귀고리를 하고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브라흐마는 여인을 불러 말했다.

“너는 ‘죽음의 여신’이라 불릴 것이다. 죽음의 여신이여, 모든 생물에게 죽음을 안겨 주어라. 사람의 경우에는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많이 배우든 적게 배우든 가리지 말고 저승으로 데려가거라.”

그러나 죽음의 여신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큰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죽음의 여신은 본래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모든 생물에게 죽음을 안겨 주라니 너무너무 무섭고 끔찍했다. 죽음의 여신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브라흐마 신이시여, 어째서 저한테 그런 끔찍한 일을 맡기십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형제, 자매, 부모, 친구를 갈라놓는 아주 잔인한 짓입니다. 저는 도저히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듣기 싫다. 시키는 대로 하지 웬 잔말이 많으냐? 나는 생물들에게 죽음을 안겨 주려고 너를 만들었다.”

브라흐마는 명령을 따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죽음의 여신은 바로 그 명령을 좇지 않았다. 맡겨진 일을 하려고 세상으로 가지 않고 데누카라는 곳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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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여신은 그 곳에서 힘든 고행을 했다. 무려 100만 년 동안 한쪽 발로만 서 있었으며, 또 100만 년 동안 맹수들과 같이 지냈다. 그리고 2만 년 동안 공기만 먹고 살고, 8000년 동안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죽음의 여신은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산맥으로갔다. 그 꼭대기로 올라가 발가락 하나로 서서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런 고행도 브라흐마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 브라흐마는 여전히 죽음의 여신에게 이렇게 명령했던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어서 내가 맡긴 일을 하라니까. 네가 눈물을 흘리며 버틸수록 생물들에게 화가 돌아갈 것이다. 무서운 병을 앓게 되거든. 그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빨리 눈물을 그치고 세상으로 돌아가라.”

브라흐마의 저주 앞에 죽음의 여신은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죽음의 여신은 정해진 때가 되면 생물들에게 죽음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죽음의 여신은 생물들이 불쌍해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세상에는 생물들에게 고통을 주는 병이 계속 생겨났다.

신화 이야기 해설
인도 신화에는 많은 신들이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신은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다. 브라흐마는 네 개의 얼굴과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 네 개의 얼굴은 동서남북의 사방을 향하고 있고, 네 개의 손에는 힌두교 경전인 <베다>와 지팡이 또는 염주와 활과 주발이 쥐어져 있다. 왕관을 쓰고 수염을 길렀는데, 지혜의 신이자 우주의 창조자다.

브라흐마는 하늘과 땅, 해와 달을 만들었으며, 모든 신과 악마들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들었는데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다. 브라흐마는 자신의 몸을 둘로 나누어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브라흐마에게서 도망친 여자를 쫓아가 온갖 생물로 변해 세상에 많은 생물들이 태어나게 했다.

오늘 이야기를 읽고 힌두교의 창조주 브라흐마는 기독교의 창조주 여호와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여호와는 “코끼리야, 생겨나라!”하고 말하면 “짠!” 하고 코끼리가 생겨난다.

그러나 브라흐마는 말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여자를 짝으로 삼아 그와 결혼함으로써 모든 생물을 만들어 냈다. 즉 자신의 몸속에서 모든 생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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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브라흐마는 자신의 몸으로부터 ‘죽음의 여신’도 만들었다. 그는 죽음의 여신에게 “모든 생물에게 죽음을 안겨 주어라”하고 명한다. 세상의생물들은 모두 브라흐마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이어서 브라흐마처럼 누구도 죽지 않았다. 따라서 땅의 여신이 그 많은 생물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들끓는 생물들을 줄이기 위해 모든 생물에게 죽음을 안겨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여신은 브라흐마의 명령을 곧바로 따르지 않았다. 데누카라는 곳에 가서 힘든 고행을 했다. 백만 년 동안 한쪽 발로만 서 있었고, 또 백만 년 동안 맹수들과 같이 지냈으며, 2만 년동안 공기만 먹고 살고, 8천 년 동안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로 올라가 발가락 하나로 서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고행은 힌두교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수행법이다. 몸을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 견디기, 한 발로 서 있거나 꿇어앉기, 여름에 불을 피워 놓고 앉기, 겨울에 추위 속에서 밤새우기, 가시덤불 위에 누워 있기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오늘 이야기에서 죽음의 여신은 브라흐마의 마음을 되돌리려고 일부러 고행을 했다. 그러나 브라흐마는 코방귀도 뀌지 않고 죽음의 여신에게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결국 죽음의 여신은 브라흐마에게 항복하고 세상으로 돌아가 생물들에게 죽음을 안겨 주는 일을 시작한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몸은 죽어 없어져도 영혼은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사람이 착한 일이나 수행을 많이 하면 귀한 신분의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동물이나 벌레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번 태어나고 죽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인도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윤회의 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러 저 세상으로 떠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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