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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법


글.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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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풍문으로 들었소~ 내 마음은 서러워. 나는 울고 말았네.”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유행가 가사 중 일부다. 근원지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소문. 바람 따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 풍문이다. 비슷한 말로는 쑥덕공론, 유언비어, 항설 등이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가짜뉴스다.

현대인들은 미디어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람을 넘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다 자칫 잘못된 정보나 뉴스를 접하게 되면 이성 없는 짐승처럼 앞뒤 구분 못하는 상황에 빠질 때도 허다하다.

일명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누가 그렇다더라.” “이런 말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직접 봤다는데요.”라는 ‘풍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理性)’이라는 것이 있다면, 한번 쯤은 사실 확인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가짜뉴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그렇다면 가짜뉴스가 만연한 것이 지금만의 현상인가.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칼럼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그것을 수용하는 민중(국민)들의 모습 그리고 그 가짜뉴스가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에 대해 경고했지만 우이독경과 같았다.

전 세계가 이미 가짜뉴스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가짜뉴스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를 통해 가짜뉴스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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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속에서 진짜 찾기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2019)>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조카인 어린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즉세조의 이야기가 바탕이 된다. 영화 속 죽음을 앞둔 세조는 백성들에게 하늘이 내린 임금으로 남길 원했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명회가 당대 최고의 광대들을 불러 세조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중 세조 때의 일을 기록한 <세조실록>에 실린 40여 건의 기이한 일들을 광대들이 조작해서 만들어낸 사건으로 소개한다. 가령 세조가 기도하러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에 소나무 가지에 연(가마)이 걸릴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니 축 처져 있던 가지가 위로 올라가 연이 무사히 지나간 사건, 오대산에서 몸을 씻고 있던 세조의 등을 문질러 피부병을 낫게 해줬다는 문수보살 이야기, 세조가 세운 원각사를 뒤덮은 황색 구름과 꽃비 등이 각자가 가진 재주를 총동원한 이 광대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ㅋ

당시 권세를 가지고 있던 한명회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광대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성공적이었다. 이 사건을 본 백성들은 몇 명뿐이었지만 그 소문은 하루 이틀 사이 발 없는 말이 되어 삽시간에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세조는 ‘하늘이 내린’ 어진 임금이 됐다. 온 나라가 권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꾼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오직 시장 한복판에서 ‘계유정난’의 일을 재치 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광대 한 사람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전하는 광대의 말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고 외려 임금을 음해하지 말라며 외면했다. 왠지 가짜뉴스에 놀아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함이 묻어났다.

물론 영화의 말미는 왜곡된 가짜뉴스 즉 ‘풍문’을 만들어낸 이 광대들이 사실을 바로잡는 데서 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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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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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영화 <신문기자 (2019)>도 정부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가짜뉴스를 조장하는 정치세력과 언론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한 기자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아베 총리의 ‘사학비리사건’을 다룬 것으로 도쿄신문 소속의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의 동명의 저서 <신문기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정치권력이라는 거대한 힘에 쉽게 무너지는 언론과 가짜뉴스에 현옥되는 대중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에 익숙해져 버린 대중들에게 이미 진실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엄습한다.

한편 영화 <신문기자>에서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 역을 맡은 한국배우 심은경이 지난달 3월 6일에 열린 제4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불렸던 이 시대의 지성인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 되어버린 <제0호>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저널리즘을 비판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은 싸구려 글쟁이인 중년의 콜론나가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내일)>의 요청으로 신문사 주필의 대필 작가로 고용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또한 소설은 발행되지 않을 신문 <제0호>를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협박용 언론으로 이용하기 위한 발행인의 숨겨진 의도와 무솔리니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 등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목적이 따로 있기에 기자들의 아이디어에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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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다만 진실보다 특종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한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 등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실을 좇는 기자 브라가도초의 죽음 등을 통해 과연 오늘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천지분간’이라는 말이 있다. 각종 미디어와 언론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말 그대로 ‘홍수’이기에 제대로 분별해서 그 홍수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물도 가려 마셔야 몸에 좋은 작용을 하듯, 홍수로 이것저것 섞여 먹지 못할 흙탕물을 좋다 하며 마신다면 결국 탈이 나는 것처럼 언론도 마찬가지다.

천지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가 되지 말고, 천지를 분간할 줄 아는 똑똑한 대중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