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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없인 못 살아


글. 장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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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아메리카노’

그 이름 ‘아메리카노’. 노래로 불릴 정도로 커피는 현대인의 일상이 돼 버렸다. 아침 출근길부터 점심, 저녁 시간까지 커피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제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계절이 오고 있다. 눈만 뜨면 생각나는 커피,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의 입맛을 쏙 빼앗아 가버린 걸까.

한국에는 있지만 유럽은 없어
‘라떼’부터 ‘롱블랙’ ‘아포가토’까지…. 커피의 종류는 참 많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는 ‘아메리카노’다. 골목골목을 가도 참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메리카노. 하지만 유럽 전통 커피숍이나 영국 등을 가면 이 이름을 도통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걸까. 이 이름이 처음 등장하게 된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한다. 당시 이탈리아 군인은 에스프레소를 마신 반면,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은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고 진해 물에 타서 먹었다. 이 모습을 본 이탈리아 군인은 이 커피를 ‘미국인이 먹는 커피’라고 해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 미국을 뜻하는 아메리카에 ‘~처럼’의 접미사를 붙인 것이다.

홍차처럼 연하게 만들까
그럼 왜 미국인들의 입맛에 에스프레소가 진하게 느껴졌을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영토를 둘러싸고 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프렌치·인디언 전쟁, 1755~1763)’이 일어난다. 이 전쟁으로 영토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당시 영국인들이 홍차를 즐겨 마셨는데, 자연스레 미국인들도 홍차를 마시게 됐다. 이때 홍차보다 커피가 대중화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보스턴 차’ 사건이다. 이는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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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12월 16일 미국 주민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선박을 습격해 배에 싣고 있던 수백 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내버린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영국에서 미국 상인에 의한 홍차 밀무역을 금지했고 동인도 회사에 독점권을 주고 높은 세금을 부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인은 영국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인다. 평소 마시던 홍차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애국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인들은 커피를 최대한 홍차처럼 추출하길 원했고 최대한 묽게 추출한 후 물을 희석해 연한 커피를 만들었다.

이 같은 이유로 1900년대 초기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에스프레소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에게는 너무 진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레 미군은 에스프레소를 물에 희석해 먹었고 이게 아메리카노의 어원이 됐다.

고종, 커피와 사랑에 빠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스턴트커피가 생산된 후점점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한국 커피의 역사는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온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보면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고 처음으로 커피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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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애호가인 고종황제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인물은 고종황제다. 그는 ‘커피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1895년 을미사변 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이른바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의 베베르의 권유로 처음 커피를 맛보는데 강렬한 그 맛에 반하고 만다.

당시 러시아는 이미 커피가 일반화될 무렵이었고, 가져온 커피 열매를 건조해 잘 으깬다음 끓인 물에 넣고 우려서 진상의 커피를 고종에게 대접했다.

커피와 사랑에 빠진 고종은 환궁한 후에도 그 맛이 그리워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커피를 즐겨 마셨다. 이곳은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던 그야말로 휴식 공간이었다. 고종은 신하들에게 커피를 권하기도 했다.

<고종순종실록>에 따르면 커피를 ‘가배차’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으로 양차나 카피, 코히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커피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컵에 아주 곱게 간 커피를 넣은 후 각설탕 한두개를 컵에 넣어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저어준 다음 커피알갱이가 가라앉으면 마시는 방식이었다.

우리나라에 카페가 만들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베베르 공사관의 처형이었던 독일계 러시아인 여성 ‘손탁’은 고종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정동에 있는 사옥을 하사받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손탁호텔’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 1층에 ‘정동구락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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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커피를 마셨던 정관헌 외부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