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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어떻게 사람과 살게 되었을까?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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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하늘과 땅을 만들고 동물과 식물을 만들던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이다.
브라흐마는 개를 만들었다.
개는 브라흐마 신곁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브라흐마는 개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브라흐마는 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얘야, 네가 앞으로 세상에 나가서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될 것이다. 즐거운 일도 많이 생기겠지만 때로는 위험스러운 일도 만나게될 거야. 너는 그 때마다 적절히 잘 대처해야 한다.”

개는 귀를 쫑긋 세우고 브라흐마의 말을 들었다.

“얘야, 만일 너한테 즐거운 일이 생기면 말이다. 이렇게 하거라. 꼬리를 세우고 살랑살랑 흔들어라.”

개는 브라흐마가 가르쳐 준 대로 꼬리를 세우고 살랑살랑 흔들어 보았다.
브라흐마는 얼굴에 흡족한 미소를 담았다.

“잘했다. 그렇게 하면 너는 남들에게 귀염을 받게 될 거야.”

조용히 듣고 있던 개가 물었다.

“위험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브라흐마가 대답했다.

“위험이 닥쳤을 때는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해라. 상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려라. 그러다가 큰소리로 컹컹 짖어라.”

개는 브라흐마가 일러 준 것을 귀담아들었다.

그래서 브라흐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허공을 잔뜩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브라흐마가 박수를 쳤다.

“아주 잘했다. 그렇게 하면 위험은 사라질 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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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브라흐마를 모신 태국 방콕 ‘에라완 사원’
 


개는 브라흐마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가 다시 또 물었다.

“제가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브라흐마가 대답했다.

“너는 주인을 따라다니며 주인이 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

“주인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냥이다. 너는 사냥을 도와야 한다. 그 다음 네가 할 일은 주인이 잠들어 있을 때 주인을 지켜 주는 거다.”

“주인, 주인 하시는데 제 주인은 누구입니까?”

“네가 찾아보아라.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이 네 주인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브라흐마는 개를 세상에 내려보냈다.

개는 땅에 발을 내딛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개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숲길을 따라 걸어갔다. 숲 한 켠에는 개울이 돌돌 흐르고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숲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가 돌아보니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코끼리는 앞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쓰러뜨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코끼리가 나타나자 주위에 있던 동물들은 허둥지둥 피했다. 코끼리 발에 짓밟힐까 봐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개는 이 광경을 보고 생각했다.

‘대단하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은 코끼리가 틀림없어.’

그래서 개는 코끼리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코끼리님, 저를 종으로 받아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코끼리님을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코끼리는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나를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그 녀석 참 기특하구나. 알겠다, 나를 따라다니며 잔심부름이나 해라.”

코끼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키득키득 웃으며 개를 종으로 삼았다.

개는 코끼리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밤을 맞이했다.

코끼리는 금세 잠이 들었다. 하지만 개는 잠을자지 않았다. 주인을 지켜 줘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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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속 개의 모습(출처:국립중앙박물관)
 

밤이 이슥해졌을 때였다. 나뭇가지 꺾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위에서 원숭이가 한 짓이었다.

그러나 개는 위험이 닥친 줄 알고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이 때 코끼리가 깨어났다. 코끼리는 기겁을 하며 길게 늘어져 있는 코로 개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조용히 해! 사자가 사냥을 다닌단 말이야. 사자에게 잡아먹히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

개는 코끼리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주인을 잘못 골랐구나. 코끼리보다 더 힘센 사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개는 코끼리가 다시 잠들자 코끼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사자를 찾아 나섰다.

개는 새벽녘에 숲을 벗어나 강가에 이르렀다.

강가에서 어떤 동물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사자였다.

개는 사자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사자님, 저를 종으로 받아 주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자님을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자는 껄껄 웃었다.

“모두가 나를 피하는데 종이 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오다니, 너는 겁도 없구나. 좋아 좋아, 그 용기가 맘에 들었다. 나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도록 해라.”

사자는 개를 선뜻 종으로 받아들였다.

개는 사자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이되자 사자 굴까지 따라갔다.

사자는 굴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하지만 개는 잠을 자지 않았다. 사자 굴 앞에 앉아 주인을 지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끼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개는 위험이 닥친 줄 알고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이 때 사자가 깨어났다. 사자는 굴속에서 나와 개에게 눈을 부라렸다.

“조용히 못하겠니? 사람들이 사냥을 다닌단 말이야. 사람들에게 잡히면 우리는 끝장이야.”

개는 사자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또 주인을 잘못 골랐구나. 사자보다 더 힘센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개는 사자가 다시 잠들자 사자 곁을 떠났다. 그리고 사람을 찾아 나섰다.

개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누런 들판이 나타났다. 개는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를 종으로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낮에는 주인님의 사냥을 도와 드리고, 밤에는 주인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대로 하려무나. 그동안 적적했는데 앞으로 심심치 않겠구나.”

사람은 개를 흔쾌히 종으로 받아들였다.

개는 사람을 따라 오두막집으로 갔다. 사람은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밤이 되었다. 개는 오두막집 마당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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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고의 신으로 불리는 브라흐마
 

집 안에서는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개는 피곤하여 졸음이 쏟아졌지만 일부러 눈을 부릅떴다. 주인을 옆에 두고 잠들 수는 없었다.

개가 이렇게 졸음과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어둠 저편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바람 소리였다. 그러나 개는 위험이 닥친 줄 알고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었다.

이 때 사람이 깨어났다. 사람은 몽둥이를 들고 오두막집에서 뛰쳐나왔다.

“누구냐?”

사람은 이렇게 소리치며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개에게 다가와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잠도 자지 않고 나를 지켜 주는구나. 고맙다, 개야. 나는 네 덕에 잠을 편안히 잘 수 있게 되었구나. 앞으로도 무슨 기척이 있으면 큰소리로 짖어 다오.”

사람은 개에게 이렇게 부탁한 뒤 오두막집으로 들어갔다.

개는 사람이 잠든 오두막집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비로소 주인을 제대로 만났구나. 나는이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지.’

개의 머리 위에는 달님이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화 이야기 해설
인도는 신들이 많기로 소문난 나라다. 코끼리ㆍ원숭이ㆍ소ㆍ말ㆍ쥐ㆍ뱀 등의 동물도 신이고 물ㆍ불ㆍ돌ㆍ나무ㆍ별도 신이다. 오죽 신들이 많으면 ‘인도에는 갠지스 강변의 모래알만큼 신들이 많다.’고 했을까? 인도 사람들이 믿는 힌두교 경전에는 무려 3억 3000만에 이르는 신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많은 신들이 있어도 힌두교에서 가장 위대한 신은 브라흐마다. 브라흐마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신인데,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자기 몸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 신화에서 브라흐마는 개를 만들어 세상에 보내면서 몇 가지 당부를 한다. 앞으로 살아가자면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될 텐데, 즐거운 일이 생기면 꼬리를 세우고 살랑살랑 흔들어라, 그리고 위험이 닥쳤을 때는 피하려 하지 말고 상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어라. 또한 세상에 나가서 할 일이 있는데, 주인을 따라다니며 사냥을 돕고, 주인이 잠들어 있을 때 주인을 지켜 주어라….

개한테는 즐거우면 꼬리를 흔들고, 위험이 닥치면 상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다가 큰 소리로 컹컹 짖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개를 만든 브라흐마가 가르쳐 줘서 생긴 버릇이라니 참 재미있다.

개는 사람을 도와 사냥을 하거나 집을 지켜 주는 등 주인에게 충성을 다 바친다. 이는 개가 브라흐마의 충고를 받아들여 성실히 주인을 섬기기 때문이다.

오늘 신화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동물이 자기 주인이라는 말을 듣고, 개가 주인을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개는 덩치 큰 코끼리, 사나운 사자를 섬기다가 사냥을 다니는 사람이 가장 힘센 동물임을 알고 사람을 주인으로 모신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개가 어떻게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개는 사람을 잘 따르고 사냥과 집 지키는 일을 도와주니, 사람과 한솥밥을 먹으며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개를 언제부터 기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문헌이나 그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으로부터 2만 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나 동양에서 개를 기르기 시작했으며 개의 조상은 이리, 재칼, 늑대 가운데 하나로 짐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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