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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월드컵 반대 시위에 나섰나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 불고 있는 변화

브라질 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뜨겁다. 그러나 가장 뜨거워야할 개최국 브라질에선 월드컵 반대 시위가개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월드컵 최다우승(5회)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축구 관련 기록을 남긴 브라질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글 송태복 사진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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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월드컵 가나의 앙드레 아유(왼쪽에서 두 번째)가 22일(한국시간) 포르탈레자의 에스타지우 카스텔랑에서 열린
2014브라질월드컵 G조 조별리그 독일과의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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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브라질에서 2014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00여명이 상파울루에 모여 반(反)월드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이날 경기장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지역에서 럭셔리 차량을 판매하는 매장과 은행에 난입해 난장판으로 만들고 강력한 폭죽으로 경찰을 공격했다. 또 주요 고속도로 위에서 쓰레기에 불을 붙이는 등의 시위를 벌였다. 데모는 5시간 가량 계속됐다. 2014.06.20
 
 
 
 
백인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희망으로

“유럽 축구 스타일은 산문, 브라질 축구 스타일은 詩.”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표현이다. 이처럼 특유의 리듬감으로 삼바 축구, 예술 축구라 불리는 브라질 축구지만 그 속엔 아픈 역사가 있다. 백인에 의해 19세기 말에 브라질로 유입된 축구는 20세기 초까지도 백인의 전유물이었다. 유색인은 경기장에 들어설 수도 없었다. 흑
백 혼혈인 카를루스 알베루투는 1916년 플루미넨스 경기에서 흰 쌀가루를 얼굴에 발라야만 했다. 인종갈등은 우여곡절 끝에 1933년 프로 선수 제도 도입과 더불어 누그러졌다. 이후 브라질은 각종 축구 신화를 만들어냈다. 삼바 춤이 계층을 아울러 브라질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 듯 축구도 그랬
다. 특히 맨발로 축구 황제가 된 펠레처럼 이어진 초특급 스타의 출현은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겼다. 서민들에게 축구가 신분상승의 통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브라질 전역엔 축구에 맹목적으로 목을 매는 청소년들이 넘쳐났다.

브라질 국민, 왜 월드컵을 반대했나

축구의 나라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건 당연해보였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를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브라질 국민이 월드컵 직전까지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브라질 월드컵에 앞서 ‘다타폴라’라는 브라질 현지 여론조사업체의 설문결과, 월드컵 개최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지지도는 불과 48%에 머물렀다. 2008년 11월 조사 때 나타난 79%보다 무려 31%P 감소했다. 실제 지난해 6월부터 브라질 곳곳에서는 월드컵 반대 시위가 벌어져 100만 명 가까이 시
위에 참여했다.
 
월드컵 반대 이유에 대한 보도도 이어졌다. 주로 브라질 경제상황 악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브라질은 인플레이션 상승 억제에 실패하면서 4년째 저성장 기조를 나타내고 재정 악화도 심화됐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 국민 복지에 쏟을 돈을 월드컵 준비에 쏟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월드컵 개최에 쓰일 50~100억 달러의 정부 예산을 차라리 교육기회 확대나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해 쓰는 게 훨씬 낫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룰라의 저소득층 지원책, 생각을 바꾸다

최근 전문가들은 경제상황 악화보다 ‘브라질 국민의 축구에 대한 인식변화’가 월드컵 반대시위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룰라 전 대통령의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 ‘Bolsa Familia’가 축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근본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룰라 대통령 이전 브라질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책은 막연히 퍼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은 저소득층의 생계비를 자녀들의 학교 출석률에 따라 제공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저소득층의 교육기회가 확대됐고, 이는 서민들의 의식 변화로 이어졌다. 굳이 축구가 아니어도 먹고 살 수 있는길, 교육을 통해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축구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실제 길거리에서 축구나 스프레이 낙서(그라파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청소년들도 중산층 자녀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직종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자 기술을 익혀 직업을 가지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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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0일 주요 8개국(G8) 및 주요 5개 신흥국가 정
상회의에 참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앞 왼쪽)과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뒤 왼쪽)이 이와 별도
로 열린 청소년 정상회담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브라질 축구 선수들의 대량 수출도 인식변화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수 수출은 늘었지만 펠레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같은 초대형 축구 스타 배출은 오히려 줄면서 축구 선수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감이 줄어든 것도 축구에 대한 맹목적 애정이나 집착이 감소한 이유가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룰라 이후 브라질 내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시각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축구는 운동 그 이상을 의미한다. 식민과 제국의 역사로 점철된 브라질에서 축구는 아픔과 갈등을 넘어 온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이었다. 많은 사연을 딛고 뿌리내렸기에 지금 브라질 국민의 축구에 대한 인식변화가 곧 축구에 대한 애정변화라 단정 짓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브라질 국민이 축구를 만난 후 보여준 놀라운 결과들은 그들이 축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DNA를 가졌음을 입증했다. 이것이 브라질 국민의 축구 사랑이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가
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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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실바 가족이 19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 있는 자택에서 자신들의 육손을 보여주며 브라질의 6번째 월드컵 우승을 기원하는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이 가족 전원이 선천적 기형인 다지증으로 손가락이 6개다. 201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