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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이슈/특집
 문화재 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
"국새 반환, 그 중심엔 국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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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자기 본연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빛이 나는 법이다.
문화재 역시 그렇다. 질곡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 선지 우리에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오랜 세월 남의 나라를 떠돌고 있는 문화재가 너무도 많다. 이 가슴 아픈 현실 앞에 문화재를 지켜주고 되찾아오겠노라고 다짐한 이가 있으니 바로 문화재 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이다.
 
글 백은영 사진제공 문화재청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는 신념을 가지고 약탈 문화재 환수에 힘쓰고 있는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 그는 이십대 중반 갑자기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특별히 믿던 종교가 없던 그였지만 불교에 귀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단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선 불도의 길에서 그는 명확하고도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빼앗긴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국민이 함께 이룬 쾌거

지난 4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은 6·25전쟁 당시 미국이 불법 반출해갔던 대한제국 국새와 어보 등 9점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정해진 방한 일정에 맞춰 약탈 문화재를 돌려준 것이지만 혜문스님은 이 일을 두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사건이라고 말한다. 특히 제3세계 국가에 ‘신념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라고 평하며, 약탈 문화재 환수에 있어 무엇보다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대한제국 국새는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그중에서도 황제지보는 우리나라도 황제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존의 물건, 이른바 옥새이죠.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건이 6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나 이면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새의 귀환은 곧 왕의 귀환이다. 국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말과 같다. 이는 또한 새롭게 바뀐 세상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사실 대한제국 국새가 수난을 겪은 것은 비단 6·25전쟁 때만은 아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은 대한제국 국새를 압수해 일본 궁내청으로 이전했다. 이후 해방과 함께 맥아더 장군이 한국으로 돌려줬던 것을 6·25전쟁 때 다시 분실한 것이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총 13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돌아온 국새는 황제지보를 포함해 관리의 임명에 날인했던 유서지보, 준명지보와 고종이 순종에게 황제를 양위한 뒤 만들어진 수강태황제보, 서화감식 도장 등 개인 인감으로 사용된 왕실의 인장 등 총 9점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벗어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의 상흔으로 또 다시 자기의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땅에서 잠들어있던 국새의 귀환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왕의 귀환으로 불리는 국새 반환의 중심에는 문화재제자리 찾기 회원들과 미국의 13개 한인단체 등 시민단체의 힘이 컸다.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지만 많은 이들이 국새 반환에 힘을 보탰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이들과는 다른 열정과 인내, 끈기가 있었기에 이뤄낸 쾌거다.
 
‘진짜로 하니까’ 돌아온 문화재 문화재제자리찾기는 2013년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을 통해 어보가 도난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그해 9월
반환결정이 내려지면서 미국 언론에서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이때 워싱턴의 한 골동품상으로부터 LA 샌디에이고에 어보를 소장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게 된다.

이번에 반환된 국새와 어보 9점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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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문화재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
은 간단합니다. 진짜로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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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문화재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진짜로 하니까요!”
우문현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빼앗긴 문화재를 하도 쉽게 찾아오니 뭔가 그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진짜로 하기 때문’이라는 가장 정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무엇보다 절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특정 문화재를 찾아오겠다고 작정한 날로부터 대부분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는 도난과 약탈의 근거를 냉정하게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에서 반박할수 없는 증거가 모아지면,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문화재를 돌려줄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또 다른 방법을 세워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패배의식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문화재 반환’의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해 고민한 시간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가 하나의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상당했다. 문정왕후 어보가 처음 발견된 것이 2010년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말처럼 문화재를 돌려받기까지 대략 5년 정도가 소요된다. 안타깝게도 문정왕후 어보는 이번 국새 반환에 포함되지 않았다.

혜문스님과 문화재제자리찾기 회원들, 그리고 안팎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문화재 반환운동에 정부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정부도 약탈 문화재 환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국새 반환 때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이나 도움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처음 문정왕후 어보가 발견된 2010년에도 문화재청은 ‘반환대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별임대를 고려하겠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적이 있었죠. 역시 2013년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에도 특별한 지원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좀 불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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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국새 반환을 위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작년 8월부터 이른바 ‘응답하라 오바마’운동을 진행했다. 국새 반환과 관련, 백악관 청원사이트에 서명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작년 8월은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올 3월에 진행된 ‘응답하라 오바마’는 오바바 대통령이 직접 대한제국 국새를 반환하라는 내용의 서명운동으로 주변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를 조롱하던 목소리는 이번 오바마 대통령 방한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환지본처(還至本處),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봅니다. 부당하게 빼앗긴 우리 것을 돌려받자는 건데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환지본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는 뜻인데,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도 마찬가지로 이제 때가 되어 하나 둘 돌아와 제자리를 찾을 때가 됐다고 봅니다.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문화재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신념을 굳게 지킨다면 빼앗긴 문화재는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문화재의 귀환은 비단 물건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도 다시 돌려받는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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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빼앗긴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해요. 제가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모든 문화재는 아닙니다. ··· 제자리를 찾아
야 할 문화재는 민족혼이 담겨있는 아버지의 뼈 같은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의 뼈가 해외
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돈을 주고 사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뼈가 수 십 억의 가치
가있다고 해도 그것은 당연히 자손들의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혜문스님의 그런 신념이 문화재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05년 봉선사 말사인 내원암과 관련된 친일파 재산 위헌 법률 심판 청구,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한 현등사 사리구 반환운동 등 부당하게 반출된 불교 문화재 반환운동을 시작으로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에 나선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
 
2006년 동경대학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반환운동과 2011년 12월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우리 도서 1205책을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사건은 약탈 문화재 반환운동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어떤 이들은 빼앗긴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기도 해요. 제가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하는 것은 모든 문화재는 아닙니다. 따라서 성금을 모아 문화재를 돈으로 사오자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제자리를 찾아야 할 문화재는 민족혼이 담겨있는 아버지의 뼈 같은 것입니다. 이미 반환받은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실의궤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하죠. 자기 아버지의 뼈가 해외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돈을 주고 사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뼈가 수 십 억의 가치가있다고 해도 그것은 당연히 자손들의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국외문화재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약탈 문화재는 15만점에 이른다. 혜문스님은 이들 중에 어떤 것들이 불법적인 거래로 약탈된 물건인지를 심층 분석하는 게 문화재 환수를 위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시민단체이지만 9개의 ‘문화재 환수 우선 목표’를 정해 진행하고 있으며, 10년 동안 6점을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이에 혜문스님은 형식적인 발표에만 그치고 있는 정부기관에 “환수 대상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혜문스님은 돌아온 대한제국 국새를 종묘에 바치는 고유제에 대해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반환한 대한제국 국새는 국민과 정부가 합심해 이뤄낸 결과물”이라며 “종묘는 조선시대 왕의 위패를 모신 조선왕조의 중요한 공간일 뿐 국민 모두의 공간이 아니다. 종묘에서 고유제 및 환영식을 한다는 것은 대한제국 국새 반환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제국의 국새는 멸망한 조선왕조의 물건이 아니라 새롭게 건국한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문화재입니다. 만약 대한제국 국새의 반환을 축하하는 환영식이나 고유제가 진행된다면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든 전통문화의 공간 예를 들어 경복궁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 국민에게 ‘대한제국 국새의 환수’를 알리고 환영식을 거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가 찾아오겠노라고 결심하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빼앗긴 문화재들.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돌려주는 것은 빼앗긴 문화재가 아닌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역사가 아닌가 한다.
 
 
혜문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저 서: <되찾은 조선의 보물 의궤>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How are you? 이순신> <우리 궁궐의 비밀>
 
주요 활동:
•대한제국 국새 및 어보 9점 환수(2014년 4월. 오바마 대통령 직접 들고 옴.)
•문정왕후 어보 반환운동(2013년 9월 어보 반환 결정)
•조선왕실의궤 환수(2011년 12월, 조선왕실의궤 포함 우리 도서 1205책 환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환수(2006년)
•명성황후 표범양탄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확인.(2012년 5월)
•오구라컬렉션 반환운동 진행 중(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총 1100점.)
이 외에도 다수의 약탈 문화재 환수운동 및 왜곡된 역사·문화 바로잡기 활동을 진행하고 있음.
*오구라컬렉션: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문화재를 수집, 일본으로 반출함. 수집 당시부터 도굴의혹 제기. 도쿄박물관 역시 도굴품의 정황 인지. 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 측의 대표적인 반환대상 품목으로 논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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