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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수고했다 말하며

눈 녹듯 녹아내렸던 마음들


그 겨울 평창은 평생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을 것


글 전경우, 고승훈



올림픽에서는 언론인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취재기자뿐 아니라 사진기자들을 위한 시설과 장비, 물품을 사전에 잘 갖춰두어야 하고 정보제공과 애로 사항 해결 등 수준 높은 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동계올림픽의 경우 설원과 빙상 경기장에서 경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추위와 강한 바람은 사진기자들에게 큰 장애가 된다. 안전사고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사진기자들을 응대하는 조직위 직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은 그런 점에 특히 관심을 두고 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평창동계올림픽 포토운영팀은 사진기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았다. 고승훈(31) 매니저도 포토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2015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수원 JS컵 국제청소년축구대회 조직위원회에서 미디어 업무 기획과 현장운영을 담당하였다. 2016년 9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입사하여 대회 종료 후 해산절차 단계까지 약 2년간 프레스운영 관련 업무를 하였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전 평창과 강릉 등 올림픽 경기장에서 테스트 이벤트로 벌어진 각종 세계대회에서 포토 매니저로 활동하였고, 올림픽 기간 중에는 기자들의 주된 작업 공간이자 핵심 미디어 창구인 메인프레스센터(MPC, Main Press Center)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다. 여러 국제대회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지식이 평창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덕분에 그의 존재감이 항상 빛을 발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데다 친화력도 좋아서 조직위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는 물론 기자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고승훈 매니저가 기억하고 있는 평창올림픽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포토운영팀은 평창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에참가한 각국 사진기자들에게 원활한 촬영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다. 프레스운영부 내에서 포토운영팀은 베뉴프레스운영팀과 더불어 경기현장에서 클라이언트(기자)들과 직접 부딪치고 가장 가까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프레스운영부의 핵심적인 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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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막을 31일 앞둔 지난 1월 9일 첫 운영을 시작한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메인프레스센터(MPC) 내 유니폼 및 메인 등록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내외신 기자 및 대회 운영 인력들에게 출입카드를 발급해주고 있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 겨울에 개최된 22개의 올림픽 및 장애인 올림픽 시범 대회(테스트 이벤트)를 치를 때는 정말 힘들고 갈등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쉬지 않고 약 5개월간 진행되었던 테스트 이벤트 탓에 조직위 모든 직원들이 지쳐 있었다. 같은 부서 내 팀끼리도 갈등이 야기되는 순간이 매우 잦았으며, 타 부서끼리는 언성을 높이고 다투는 모습들이 일상처럼 여겨질 정도로 모두가 예민했던 시기였다. 게다가 기자라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던 프레스운영부 직원들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이었다.

20㎏ 이상의 무거운 카메라 장비들을 휴대하여 지친 육신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훌륭한 사진촬영을 위해서라면 어디로든 이동하려고 하는 사진기자들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또한 성격 자체가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내가 남들을 통제하는 업무란 결코 쉽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사진기자들은 현장의 포토매니저가 지정하는 동선 및 시간, 구역 내에서만 촬영이 가능하였지만 규정을 따르지 않는 사진기자들이 항상 존재했고, 이 때문에 다른 사진기자들뿐만 아니라 타부서 직원들로부터 항의를 들어야 하는 경우가 엄청 많았다. 평소 흡연을 즐기는 나였지만, 대회 기간 동안에는 하루에 두, 세 갑 이상의 담배를 피울 정도로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버텨내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힘든 순간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하루의 경기가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그날 올라온 경기 뉴스를 확인하였는데, 직접 운영했던 대회의 멋진 순간들이 사진기사로 게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면 그때만큼은 하루의 힘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고 뿌듯한 보람이 느껴졌다.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아니었지만, 스포츠팬들에게 대회의 역동적인 모습과 선수들의 열정을 전달할 수 있는 사진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지원한다는 것이 포토운영 업무의 매력이었다.

경기 종료 후, 하루의 힘든 일과가 끝나고 베뉴미디어센터(VMC) 내에서 업무를 마무리한 기자들과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운영 도중 서로 티격태격했던 마음이 눈 녹듯 풀리는, 따뜻한 순간들이었다. 2017년 4월 중순, 드디어 22개의 모든 테스트 이벤트가 성황리에 종료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에 집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테스트 이벤트 종료 후, 사무실로 복귀하여 육체적으로 힘든 근무는 줄었지만 테스트 이벤트의 정산과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를 위한 인력 및 물자, 계약, 운영기획 등 산더미 같은 업무에 파묻히다 보니 어느덧 올림픽 대회의 개막일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업무로 인하여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고승훈 매니저 것이 나에게는 일상이었고, 결국 대회 개막을 2개월 앞둔 2017년 12월,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약에 의존하여야 잠을 청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기피하게 되는 공황장애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부장님의 권유로 1년 넘게 몸담았던 포토운영팀을 떠나 같은 부서내 타 팀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마치 힘든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1년 넘게 고생하며 기획했던 포토운영의 업무를 정작 대회에 이르러 참여하지 못 한다는 것이 큰 자괴감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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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팀 이동은 나에게 비단 정신적인 회복뿐 아니라 새로운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새로 이동하게 된 MPC 팀은, 기사작성 공간과 식사 및 세탁소, 카메라 정비 등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춘 메인 프레스 센터(Main Press Centre)의 운영과 관리를 하는 팀이었다. 많은 경기장 내에서 이뤄지는 포토운영과 달리, MPC 팀은 메인프레스센터 한 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업무에 집중해야 했다. MPC 팀의 주된 업무는 MPC를 관리한다고 표현되지만, 그 업무의 범위는 정말 광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MPC의 시설관리에서부터, VIP 응대와 각종 행사, 기자회견진행까지 성격이 다른 업무들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임시 텐트 건물의 난로에 등유를 붓다가 황급히 손에 묻은 기름을 닦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MPC를 방문하는 고위 인사를 맞이하러 달려가는 일이 MPC 팀원들의 일상이었다.

다른 프레스운영부의 팀들과는 달리 MPC 팀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대회가 진행되는 시기가 아닌 대회 시작 2주 전이었다. MPC에는 세계 각국에서 2000여 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방문을 하는 곳인데, 기자들은 대회 개최 1주일에서2주일 전부터 MPC 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시기에 기자들은 경기에 대한 취재를 할 수 없으므로, 기사를 MPC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로 인해 MPC 내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만 했다. 다행히MPC 내에 돌아다닌 청소로봇과 과자서빙로봇,무료 캐리커처 서비스와 케이터링 만찬 등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하여 큰 불만 없이 무사히 운영되었다. 개막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MPC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기자들이 각자 담당하는 종목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설상과 빙상 경기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MPC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비교적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하였던 약 2년간의 시간은 나에게 꿈만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힘들고 좌절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프레스운영부 동료들의 도움으로 일어서고 버틸 수 있었다. 비단 프레스운영부 동료들뿐 아니라 모든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전 세계의 호평과 칭찬 속에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뽐내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아직도 눈 내린 그 겨울의 평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해 그 겨울의 평창은 평생 내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