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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는

'닥스훈트’라는 개와

닮았다?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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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도그는 세계 어디를 가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시지 빵이다. 미국 사람들이 흔히 먹는 대표간식으로 금방 구워낸 뜨거운 것을 먹는 것이 정통 식사법이다.

핫도그는 ‘뜨거운 개’라는 뜻이다. 마치 뜨거워서 혀를 길게 늘어뜨린 개와 비슷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핫도그가 처음 팔린 곳은 1901년 프로 야구 뉴욕 자이언트 홈구장인 폴로 경기장이었다. 당시에는 야구장이나 유원지에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구워 팔았다.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독일이 원산지인데, 독일 사람들은 이 소시지를 ‘닥스훈트 소시지’라고 불렀다. 소시지의 모양이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인 닥스훈트와 비슷하다고….

폴로 경기장에서 아이스크림 행상을 하는 할리 스티븐스는 날이 선선해지자 이런 고민을 했다.

“이제 곧 겨울이 닥칠 텐데, 아이스크림이 팔리지 않는 겨울에는 무엇을 팔지?”

할리 스티븐스는 다른 행상이 파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보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관람객들이 야구 경기를 보며 먹을 수 있도록 소시지 빵을 만들자.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롤빵 사이에 넣어 파는 거야.”

할리 스티븐스의 소시지 빵은 대성공이었다. 내놓자마자 불티나듯 팔려 나갔다.

할리 스티븐스가 소시지 빵을 처음 팔던 날, 폴로 경기장에는 <허스트 신문>의 만화가 포머스 알로이시우스 도건이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팔려 나가는 소시지 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신문에 만화를 그렸다. 닥스훈트 개가 빵 속에 들어가 있는 만화였다. 도건은 만화 밑에 ‘닥스훈트’라는 독일어를 적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스펠링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뜨거운 개’라는 뜻으로 ‘핫도그’라고 간단하게 썼다.

이 핫도그는 그때부터 소시지 빵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끼운 롤빵을 ‘핫도그’라고 불렀다.

그런데 핫도그라는 이름은, 폴로 경기장에서 소시지 빵을 맛본 어느 손님이 “뜨거운 개고기 소시지를 먹는 것 같네.”라고 말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 유럽의 스위스 지역에서는 개고기 소시지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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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 핫도그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긴 막대에 소시지를 끼운 핫도그가 인기가 높다. 이 핫도그를 만든 것은 일본의 식품 회사 직원이었다.

1977년 기붕식품에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아이디어 제품을 모집했다. 여기에 뽑히면 발명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회사 생산부 직원인 다나카는 어떤 제품을 발명할까 궁리하다가 어느 날 버스에 올라탔다. 그때 그의 눈에 버스 손잡이를 잡은 어느 소녀의 손이 보였다. 그 순간, 다나카는 긴 막대에 소시지를 끼운 핫도그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다나카는 이 막대 핫도그를 발명하여 회사에서 보상금을 받았고,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막대 핫도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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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인형 ‘테디 베어’는
미국의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형이 있지만 ‘인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곰 인형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은 장난감이 곰 인형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장난감 회사들은 수많은 이름의 곰 인형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곰 인형은 ‘테디 베어’다. ‘테디’는 미국 제26대 대통령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으로, ‘테디 베어’는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곰’이란 뜻이다.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곰 인형이 생겨났을까? 그것을 알려면 1902년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해 미국에서는 루이지애나 주와 미시시피 주 사이에 심각한 경계 논쟁이 벌어졌다. 아무리 논쟁을 벌여도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직접 남부로 내려갔다.

여행 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여가를 이용해 남부 지역의 인사들과 함께 사냥을 하게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냥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첫날 사냥에 실패하여 참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남북 지역의 인사들은 대통령의 사냥을 도우려고 아기 곰을 대통령이 있는 곳에 데려다놓았다. 그들은 아기 곰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었기에 대통령이 사냥을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겁에 질린 아기 곰이 불쌍해 총을 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워싱턴 스타>라는 신문에 이 일을 풍자한 만화가 실렸다. 총을 손에 쥔 루스벨트 뒤에 겁먹은 아기 곰이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만화를 본 장난감 상인 모리스 미시톰은 아기 곰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여 ‘테디 베어’라고 했다.

테디 베어는 출시되자마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곰 인형은 오늘날에도 아기들의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다. 프랑스에서 팔리는 인형 백개 중에 86개가 곰 인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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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어떻게 저금통 모델이 되었나요?”

저금통 하면 누구나 돼지 저금통을 떠올릴 것이다. 개도 닭도 아니고 왜 하필 돼지 저금통일까? 돼지는 어떻게 저금통 모델이 되었을까?

중세에는 금속이 귀하고 비싸서 가정용품의 재료로 점토를 사용했다. 서유럽에서는 오렌지 빛깔의 ‘피그(pygg)’라는 점토가 풍부해서 그릇・접시・주전자・컵・꽃병 등은 모두 피그로 만들었다.

당시에 알뜰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은 부엌의 주전자나 꽃병에 돈을 모았나 보다. 물론 이때는 저금통이 돼지 저금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18세기 영국에서는 ‘피그(pygg)’라는 발음이 ‘피그(pig)’ 즉 돼지와 같아서 돼지 저금통이 만들어졌다. 도자기공들이 ‘피그’를 돼지로 착각하여 진짜 돼지 모양의 저금통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리하여 돼지는 얼떨결에 저금통 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