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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와 함께한

뜨거웠던 겨울 이야기


글 전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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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축제였다. 실패할 것이란 염려도 있었고, 남의 나라 잔치가 되고 말 것이란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헛된 걱정이었다. 막상 뚜
껑을 열자 세계의 눈과 귀들이 이곳으로 쏠렸고, 정말 끝내주는 멋진 잔치로 막을 내렸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세 번의 도전 끝에 어렵게 따낸 올림픽이었다. 국민적 무관심과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올림픽 사상 가장 성공한 대회로 평가를 받으며 우리 국민의 저력을 또다시 뽐낼 수 있었다.

올림픽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기를 잘 진행하는 것은 기본이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등 많은 국제단체와 각국 선수들과 임원, 관중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잘 관리해야 한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에 대한 서비스도 대회 운영의 핵심 중 하나다.

대회의 성공 여부는 언론의 평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들의 시선과 판단도 중요한 기준이지만 언론이 대회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치를 때, 조직위원회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언론 서비스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미디어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이뤄졌다. 올림픽에 참가할 각국 미디어들의 등록을 돕고, 이들이 묵을 숙소를 미리 배정하고, 공항에서부터 숙소와 미디어센터, 경기장 등으로 편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수송 편의를 제공했다. 대회 기간에는 숙소와 미디어센터, 각 경기장 등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송 서비스를 가동하고, 메인프레스센터(MPC)와 각 경기장 미디어센터 등의 시설과 물자 등을 사전에 잘 배치해 미디어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각 경기장 내에 마련된 베뉴미디어센터(Venue Media Center)는 기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작업하는 곳이다.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는 주로 대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하고 IOC와 조직위원회 등의 주요 기자회견 등이 이뤄지고, 베뉴미디어센터(VMC)는 기자들이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곳이다. 베뉴미디어센터는 대회 기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기자들도 늘 예민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미디어들을 상대하는 조직위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 역시 늘 초긴장 상태로 지내야한 한다.

기자들은 올림픽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클라이언트 중 하나다. 대회의 성패를 평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다 이들의 불만이 기사로 반영돼 대중에게 알려지면 대회에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행여 작은 불만이라도 제기하게 되면, 조직위 지휘부에서 ‘난리’를 치기 때문에 현장의 미디어 담당 스태프들은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평창올림픽에서는 스키와 썰매 경기가 열린 설상(雪上) 경기장에 6개, 스케이트와 아이스하키, 컬링 경기 등이 열린 빙상(氷上) 경기장에 5개, 두 곳의 선수촌과 메달플라자 등 비경기 베뉴에 3개 등 모두 14개의 베뉴미디어센터(VMC)가 운영되었다. 각 베뉴미디어센터에는 미디어 업무를 총괄하는 프레스 매니저와 부 매니저 그리고 믹스드 존(Mixed Zone) 감독관 등 3명의 핵심 인력이 배치되었다. 이 3인방이 중앙과 지방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등과 호흡을 맞춰 현장의 미디어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였다.

경기장 미디어센터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은 기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재빨리 알아챌 수 있어야 하고,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고약한 상황을 맞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눈치’ ‘재치’ ‘배짱’ 이 세 가지가 미디어 담당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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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컬링 경기장의 프레스 3인방 중 김희석 프레스 매니저가 컬링 여자 대표팀의 사인을 받은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2. 컬링 여자 대표팀 기자회견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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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베뉴 프레스센터의 각 핵심 3인방들 모두 ‘완벽’할 만큼 멋지고 근사했다. 외국인 포함 총 36명의 프레스 인력들이 투입되었는데, 한 결 같이 눈치, 재치, 배짱이 있었고 재주가 넘쳤다. 덕분에 현장의 미디어 서비스는 정말 끝내주게 좋았고, 세계 각국의 미디어들이 우리 미디어 스태프들을 향해 ‘엄지 척’을 했다. 미디어들에게 칭찬을 듣는다는 건,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컬링 경기장의 프레스 3인방도 ‘엄지 척’의 주인공이다. 컬링 경기장은 우리나라 여자 대표 팀이 사상 최초로 올림픽 은메달을 따내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던 곳이다. 이곳에서 김희석 프레 스 매니저와 김선정 부 매니저, 강유진 믹스드 존 감독관은 선수단과 기자들과의 교량 역할을 아주 잘해냈고, 덕분에 언론과 선수단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그들은 미디어센터 관리와 자원봉사자 등 인력 운용, 기자회견 진행 등 힘든 업무 과정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씩씩한 모습으로 선수단과 미디어들에게 헌신하였다. 대회 도중 엄청난 폭풍이 몰아쳐 미디어센터가 무너질 것 같은 위기를 겪었고, 기자 배낭이 폭발물로 오인되어 관중 입장이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는 등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잘 견뎠고, 잘 이겨냈다.

김희석 매니저는 ‘평창’을 이렇게 회고한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종목 중 하나가 컬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올림픽 이전에는 유배지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힘든 경기장이었다. 컬링의 인기는 없고 경기시간은 길고…. 실제로 2017년 3월 이곳 강릉 컬링경기장에서 올림픽 테스트 대회로 열린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선 하루에 2~3명의 기자만이 경기장을 찾았고, 10명 정도의 기자가 오면 특이사항으로 언급할 정도로 한산했었다. 때문에 올림픽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의 베뉴미디어 센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관심 밖이었던 종목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개막식 전에 시작한 몇 안 되는 경기 중 하나였고, 초반 믹스더블경기부터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여 인기가 점차 상승하였다. 김은정 선수 특유의 카리스마와 국민유행어 ‘영미’의 탄생, 모든 선수의 이름이 ‘김’ 씨였던 점, 연승행진, 선수들의 올림픽 기간 중 휴대폰 사용금지, 예선전의 패배와 준결승에서의 복수 한일전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요소들이 컬링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올림픽 시작 전 컬링경기장을 맡았다는 나에게 비웃음을 날리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영미~” 를 실제로 들었느냐, 컬링경기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둥 하며 연락을 해 왔다. 컬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하였다.

100석 규모의 베뉴미디어센터로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급하게 추가로 책상과 의자를 지급받아 설치하였다. 경기장 내 취재석인 미디어트리뷴에도 간이의자를 추가로 배치하였다.

IOC는 컬링의 인기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취재석 일부를 관중들에게 판매하도록 하였고, 이 때문에 대회가 시작되고 기자들의 몰려들자 취재석이 턱없이 모자랐다. 취재석을 확보하지 못한 기자들은 경기장 밖에 있는 베뉴미디어센터에서 TV로 경기장면을 보면서 취재를하였다. 많은 기자들이 이에 항의를 하고 불만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웃으며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인 ‘착한’ 기자들도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우리 한국 여자팀은 너무 많은 어려움을 안고 싸우고 있었다. 우리나라 컬링협회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고 했다. 우리 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 도중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몇번이나 울었다!!

우리나라 남녀 대표 팀에는 언론을 대상으로 업무를 하는 프레스 아타셰가 없었고, 이 때문에 감독이 그 역할을 담당하여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컨트롤해야한 했다. 언론에 익숙하지 않은 여자 대표 팀 감독은 경기 때마다 그날 인터뷰 할 선수와 내용 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기자회견 전에 기자들에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경기가 끝난 뒤 바로 인터뷰가 이뤄지는 믹스드 존(Mixed Zone)에서의 인터뷰와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공식 인터뷰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재미있던 것은 우리 여자 대표 팀 감독의 ‘특별’ 부탁이었다.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을 보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모두 거둬 직접 보관하고 있었다.

때문에 선수들은 “영미~”가 크게 유행하고 자신들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감독은 그래서 기자들이 선수들과 인터뷰를 할 때 그들이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기자들에게 감독의 뜻을 사전에 전달하였고, 기자들도 호응해 주었다.

결승전이 끝나고 마지막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감독과 선수들은 눈물과 웃음을 섞어가며 그동안 겪어왔던 일들을 회상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우리들은 선수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뜨거웠던 우리들의 평창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났다. 경기장 안에서는 “영미~”를 외치며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착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미’와 함께했던 우리들의 평창 이야기가 두고두고 그리울 것이다. 쭉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