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신화가 깃든 섬,
림노스(η Λήμνος)


글, 사진. 김현우 평론가・사진작가



01.jpg
동굴교회,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를 가려면 카카부 바위산을 지나가야한다.
 



그리스는 인구 1100만 명의 3천 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삼면이 바다인 아름다운 섬이 많은 나라다. 동쪽으로는 에게해, 남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로 둘러싸여 있다. 외관상 비슷한 듯 보이지만 막상 섬에 첫발을 내딛을 때마다 전혀 다른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기는 이야기 많은 섬이다.


 


02.jpg
 


림노스는 철을 다루는 야금술로 유명하다. 불의 신 헤파이토스(‘Ηφαιστος, 이패스토스)의 섬으로 림노스섬 고대인들의 야금 기술의 발전은 헤파이스토스의 축복이란 찬사를 받았다. 전해지는 말로는 제우스 신은 질투의 여신이자 그의 아내인 헤라(Ήρα, 이라)와 부부싸움 후,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그의 어머니 헤라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올림푸스 산에서 그를 내던져버렸다. 그 결과, 올림푸스 산에서 데굴데굴 굴러 림노스 섬까지 굴러 떨어졌고 그때 부상으로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Όμηρος)에 따르면, 림노스 섬의 첫 번째 거주민들은 동쪽 ‘프리기아(Φρυγία)’ 지방에서 온 거칠고 불친절한 사람이었고, 다친 헤파이토스를 림노스 섬에서 보살펴주는 댓가로 대장간을 만들어 불의 신으로부터 금속다루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신티에스 족들(οι Σίντιες)’은 미노아문명의 소아시아에서 오는 철로 만든 청동 무기를 만들어낸 우수한 대장장이들로 유명했다. 특히, 뽈리오크니(Πολιόχνη)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의 거대한 주거지 흔적에서 트로이 전쟁 신화와 유사한 유물들이 발견 됨으로써 신티에스 족들의 실존이 증명 되었고 야금술의 신, 헤파이토스를 섬기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뽈리오크니에 도시를 형성했던 걸로 보고 있다.

헤파이토스는 요정 ‘카비로(Καβειρώ)’들과 그들에게서 얻은 자식들에게 야금술과 관련된 기술을 전수했고 후에 그들은 림노스 섬과 카비리오Κ(αβείριο) 지역에 세워진 특별 성소에서 그를 위한 예배를 드렸다.

이 섬의 포도 재배의 시작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와 관련이 있다. 포도 재배에 대한 지식과 술 빚는 법은 크레테 섬에서 비롯되었으나 신화에 따르면, 크레테 섬의 미노아스(οΜίνωας)왕은 에게해의 섬들을 점령하도록 ‘패스토스 라다만띠(ΦαιστούΡαδάμανθυ)’의 왕을 보냈는데 그는 아리아드니(Αριάδνη)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또안타스(Θόαντας)에게 림노스 섬을 선물했다. 또안타스는 림노스 사람들에게 포도나무 재배법과 술 빚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림노스는 ‘떼살로스 미니이스(οιΘεσσαλοίΜινύες)족’ 과이올코스(οΙωλκός)의 왕 크리떼아스(οΚρηθέας)가 점령하고 있었고, 그들은 미리나스(οΜύρινας)의 딸을 또안타스왕의 신부로 주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림노스 섬의 가장 큰 도시를 수도로 정하고 그 지명을 ‘미리나스’라 했는데 오늘 날까지도 이곳이 림노스의 수도 미리나(ηΜύρινα)로 남아있다.

이밖에도 신화에서는 미니에스인들(οιΜινύες)과 미노아 사람들(οιΜινωίτες) 사이에서 림노스를 차지하기 위한 몇 번의 투쟁이 있었는데 결국 타협으로 좋게 마무리되는 전쟁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예로부터 이 섬은 많은 민족들이 욕심내는 천연자원과 곡물 재배에 적합한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는 해상을 통한 북유럽이나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섬이었다. 또 안타스왕의 통치 기간, 림노스 섬의 여인들은 아쉽게도 미의 여신 비너스(ηΑφροδίτη) 섬기기를 게을리 했다. 이런 이유로 분노한 여신은 지독한 악취가 그녀들의 몸에서 나게 함으로써 그들을 벌하였는데, 남자들은 림노스 여인들을 피해 다니면서 뜨라키(η Θράκη)섬에서 여인들을 데려왔다. 그때 질투와 여자로서 모멸 감에 화가 치민 림노스 여인들은 페타쏘(τοΠέτασσο)언덕 위에서 섬의 모든 남자들을 바다 밑으로 밀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남자 살인’이라는 뜻의 안드로포니오(τοΑνδροφώνιο)라고 불렀고 오늘날의 안드로니(τοΑνδρώνι)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림노스 여자들은 배신한 남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잔치를 이용했는데, 남자들에게 많은 포도주를 권하며 취하게 만든 후 그들이 잠든 사이 바다에 던져버렸다. 오직 또아스(οΘόας)라는 왕만이 살아남았는데, 그의 딸 잎시필리(ηΥψιπύλη)가 그를 커다란 항아리 속에 숨겼기 때문이다. 그 댓가로 후에 그녀는 아버지의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섬 주민이 모두 여인만 남게 되어 섬 인구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크레테 섬 출신의 또안타스 장군의 군인들을 그녀들의 남편과 애인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섬의 영속적인 토착민으로 받아들였다.

그리스 북서쪽 소아시아를 ‘히타이트 족들(οιΧετταίοι)’이 정복한 이후, 트로이 전쟁의 무대였던 ‘아르다넬스 해협(οΕλλήσποντος)’은 폐쇄되었고, 림노스 섬의 뽈리오크니(Πολιόχνη)지역의 대륙 진출을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서 크레테인들과 키클리데스 그리고 미케네인들은 그리스옆 나라인 사이프러스(οΚύπρος)광산으로 관심을 돌렸고, 기원전 14~13세기에는 구리 채굴을 위한 옛 경로인 흑해와 신화 속 지역인 콜티다(ηΚολχίδα)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 당시 림노스는 ‘아르고 원정대(οιΑργοναύτες)의 활약과 트로이 전쟁의 중간 기착지점으로서 가치를 다시 얻게 되었다.

처음에 림노스 여인들은 그들을 해적으로 생각하고 섬의 상륙을 허락치 않았고 그들과 전쟁 준비를 하였으나,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 여신의 참견으로 결국 나이와 외모에 상관없이 림노스 섬의 모든 여인들의 성적 필요를 만족시킨다는 조건하에 원정대가 섬에 상륙하는 것에 합의했다. 원정대는 림노스에 수년 간 머물면서 많은 자손들을 남기며 새로운 세대의 림노스주민들을 형성하였다. 그 당시 림노스의 여왕 잎시필리(ηΥψιπύλη)는 아르고 원정대의 영웅이자 선장이었던 야소나스(οΙάσονας)와 사이에서 에브니오스(οΕύνηος)와 또안타스(οΘόαντας),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아르고 원정대가 머무는 동안, 잎시필리 여왕은 그녀의 아버지를 기념하여 스포츠 경기를 자주 개최하였는데 이 시기에 달리기, 높이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이 함께 이루어지는 스포츠 5종 경기가 최초로 실시된 것이다.

이처럼, 림노스 섬 남자들을 몰살 시킨 대참사와 황금양모를 찾아 항해했던 ‘아르고 원정대(οιΑργοναύτες)’ 선원들과 림노스 여인들의 결혼은 림노스 섬의 종족 순환을 상징하는 대사건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크게 다루고 있다.



03.jpg
 
04.jpg
 
05.jpg
 
06.jpg
 


이패스티아
(ηΗφαιστεία)

콘토뿔리(τοΚοντοπούλι)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가다 보면 고대 유적지 이패스티아(ηΗφαιστεία)에 도달하는데, 이곳은 기원전 5~4세기 동안 황금기를 누렸던 곳으로서, 고대 림노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주요도시였다. 이 지역은 구리와 금, 은 같은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ηΧαλκλιθικήεπoχή)’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변함없이 주민들이 거주했던 번화한 도시였다. 림노스의 수호신이자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οΉφαιστος)의 이름에서 지명을 따온 것으로 헤파이스토스 신의 보호를 받았으며 중요한 예배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림노스 섬에 철을 다루는 야금술을 전수한 그는 화산 속에서 거주하면서 주민들의 수호신으로서 섬김을 받았는데 ‘흘로이(ηΧλόη’)라는 희망봉 북쪽에 있는 유명한 ‘카비론 성전(οΙερότωνΚαβείρων)’은 그에게 바쳐진 대표적인 성소였다.

이패스티아의 발굴 작업은 이탈리아 고고학자 ‘델라 세타(ΝτέλλαΣέτα)’에 의해 헬레니즘 시대의 고대 극장, 대규모의 공동묘지, 목욕탕, 우물, 대저택, 성소 등이 세상에 드러났고, 동시에 많은 고대 무기들, 금, 생활용품, 점토 인형들과 이 지방 특유의 무늬로 장식한 도자기들도 함께 출토되었다. 그리고 복원 작업이 완전히 끝남으로써 2010년에 개관한 헬레니즘-로마 극장도 이때 함께 발굴된 것이다.

고대 이패스티아 야외 유적지는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개관하며 무료입장으로 월요일은 휴관한다.


뻬디노 지역과
빨료, 네오 뻬디노
(τοΠαλαιόΠεδινό, τοΝέοΠεδινό)

뻬디노(τοΠεδινό0와 ‘옛날 뻬디노’라는 뜻의 빨료뻬디노(τοΠαλαιόΠεδινό), 네오 뻬디노(τοΝέοΠεδινό) 마을은 무드로스 만을 사이에 두고 무드로스(οΜούδρος)시를 마주보고 있다. 뻬디노의 원래 지명은 최소 14세기 이후부터 뻬스페라노(το Πεσπέραγο)라고 불렀는데, 주민들은 그 단어가 터키어에서 기원했다고 여겼기 때문에 1955년에 ‘뻬디노’라고 개명한 것이다.

1968년 대지진 이후 마을이 파괴되고 그곳에 정착하던 주민들은 살던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곳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세웠고 새로 정착한 마을 이름을 ‘새 뻬 디노’라는 뜻의 네오 뻬디노(τοΝέοΠεδινό)라고 불렀다. 이러한 주민들의 주거지 이동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늘날 습지로 남아있는 무드로스 만과 접한 얕고 짠물인 호수에 치명적인 전염병을 초래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해에 마을근처 메간기아(ηΜελάγγια) 위치에 ‘갈리폴리 전역(ηεκστρατεία τηςΚαλλίποληςτου1915)’에 참여했던 연합군 기지를 세웠다. 그 결과 군영 캠프 근처에 병원, 수로, 교회 등 다른 시설들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황금빛 밀밭으로 변한 들판에 그 흔적과 잔해들이 오늘날까지 보존 되어 있다.



뽈리오크니
(ηΠολιόχνη)

림노스 동쪽 해안 카미니아(Καμίνια) 마을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 있는 뽈리오크니(ηΠολιόχνη)는 에게해의 신석기 시대, 즉 기원전 5000~4000년 전에 브로스코포스(οBρόσκοπος)만의 언덕 위에 건설된 고대 도시로서 북부 에게 해 전역을 거쳐 가장 유명한 ‘아크로폴리스(ηακρόπολη)’의 잔해가 남아있는 유적지이다. 반면, 정확히 뽈리오크니의 맞은 편에 위치하고 트로이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트로이(ηΤροία) 지역은 뽈리오크니보다 천년이나 뒤쳐진 성장을 보였다. 일찍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문화성장을 빨리 이루었던 뽈리오크니는 주민 1500여 명이 정착하는 대도시로 번창해 갈 무렵, 트로이는 겨우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고대도시 뽈리오크니는 반듯한 사각형의 주택 구조로 디자인된 돌로 쌓아 올린 벽과 우물, 의회와 집회 장소로 사용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공 건물들과 반듯한 바둑판 모양의 골목들은 선사시대 그리스 고대인들이 얼마나 문명화 되고 발전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수세기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같은 장소에 다른 역사와 문화, 건축양식들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고고학자들은 시대별 구분을 색상으로 코드화할 필요성을 느꼈고, 야외 유적지와 뽈리오크니 실내 박물관을 찾는 여행객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검정, 파랑, 빨강, 노랑, 초록 등의 색상분류를 해 놓았다. 아직도 발굴 작업이 한창인 이곳은 1930년 고고학자 ‘델라 세타(ΝτέλαΣέτα)’가 발굴의 수석 보좌관으로 하여 아테네 대학, 이탈리아 고고학 학교와 함께 발굴 작업에 들어감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07.jpg
 


08.jpg
 



동굴 교회,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
(ηΠαναγιά Κακαβιώτισσα)

동굴 교회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ηΠαναγιά Κακαβιώτισσα)’는 미리나(ηΜύρινα) 항구에서 불과 4㎞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그곳을 방문하려면 현지인조차도 어렵게 느낀다는 다소 복잡한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곳에 가려면, 우선 미리나(ηΜύρινα) 항구에서 출발해 쁠라티(Πλατύ) 방향 남동쪽으로 주요도로를 가다 보면 미리나스의 간선도로와 교차하는 지점이 나온다. 거기서 좌회전으로 1㎞를 더 간 다음 우회전을 하면 상태가 좋은 포장도로로 진입하면서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 교회’ 표지판이 나타난다. 안내 표지판이 있는 지점에서 비포장도로를 2.5㎞ 더 가면, 오른쪽으로 바위산 아래 자동차를 주차할 확 트인 넓은 공간이 있다. 그곳에 차를 주차해 놓고, 교회가 있는 카카부(τοΚάκαβου) 바위산 꼭대기로 향하는 가파르고 좁은 돌계단 1300m을 걸어가야 하는데, 올라가면 갈수록 뾰족뾰족 솟아오른 바위산의 수려한 풍경에 푹빠지게 된다.

도보 400m를 올라가다 보면 바위산은 갑자기 뾰족한 산꼭대기 부분을 잘라내버린 것 같은 평평한 평지로 변하고, 그 평지를 걸어가다 보면 멀리 무드로스(οΜούδρος) 만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 풍경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솟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동굴들을 형성하고, 아찔하게 경사진 절벽 같은 산을 겁 없이 뛰노는 염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게 산꼭대기의 평지를 약 20분 걷다 보면, 또 하나의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데 그 산의 좁고 가파른 돌계단을 10분 정도 올라가면 오목하게 패인 동굴 속에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 교회’가 나타난다.

‘빠나기야 카카비오티싸 교회’는 1300년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데, 투르크인들의 습격을 피해 산으로 올라온 것으로 보고 있다. 오목하게 파인 동굴 속에 지붕이 없는 예배당으로 실제로 들어가 보면 동화책 속이라도 들어온 듯 한 아주 작고 아담한 교회로서 오늘날까지도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누군가는 기도하며 예배당에 켜놓은 올리브기름 호롱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매일 그 먼 길의 여정을 감수하며 호롱의 올리브기름을 채워 놓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붕이 없는 독특한 교회이다.



09.jpg

마리나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 기념품도 팔고, 체험공방도 하고 있다.

 



10.jpg
빠나기야 카카바오티싸 동굴교회
 



11.jpg
따노스 산에서 바라본 에브가티 해변과 마을
 



아기오스 요아니스
(Αγ ΙωάννηςΚάσπακας)

림노스 섬의 서쪽에 위치하고, 수도 미리나(η Μύρινα)에서 북쪽으로 8㎞ 거리에 있는 카스빠카스(Κάσπακας) 지역의 ‘아기오스 요아니스 (Αγ Ιωάννης)’ 해변은 그곳에 있는 교회 이름을 지명으로 쓰고 있다. 서쪽으로 할키디키(ηΧαλκιδική) 지역을 마주보고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바다 건너 ‘아토스 산(οΆθως)’이 보인다. 주목할 만한 것은 2014년 ‘아기오스 요아니스 해변’은 서쪽에 위치하는 지리적 조건으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즐길 수 있다는 것과 아스팔트 도로로 목적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 용이함과 편의시설, 고운 모래와 얕은 바다 등 여러 조건에 부합하여 ‘푸른 깃발(ηΓαλάζια Σημαία)’을 받았다.




12.jpg
쁠라카 등대 대장 파니스 삐나키스
 



유럽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마지막등대,
쁠라카 등대
(οΦάροςτηςΠλάκας)

림노스의 쁠라카(ηΠλάκα) 지역은 원래 ‘성자 이빠티오스(οΑγίοΥπατίο)’가 살았던 곳이고,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모시던 옛 도시 ‘이패스티아(ηΗφαιστία)’의 계절 농장이 있던 곳이다. 바다를 향해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쭉 뻗어 나간 형세가 트로이(ηΤροία)와 아토스(οΆθως)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몇몇 학자들은 트로이의 멸망 소식을 불을 피워 전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봉화대(τοΕρμαίονλέπας)라 말하기도 한다. 지형의 가장자리 높이는 겨우 70m에 불과하지만 뾰족하게 뻗어나간 바위로 된 지반은 바다 깊숙이 돌출되어 영해를 둘로 나누는 듯 한 모양을 시각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에게해 북동쪽이라는 매우 전략적인 지리적 위치 즉, 북쪽으로 사모뜨라키(ηΣαμοθράκη) 섬이 보이고, 동쪽으로 11마일의 가까운 거리에 터키 땅 ‘괴크체아다 섬(ηΊμβρος)과 ‘다르다넬스 해협(τα Δαρδανέλια)’이 있어 그리스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경선 역할을 하는 등대가 이곳 쁠라카 지역에 있다.

쁠라카 등대는 1912년 프랑스 등대 건설 회사 ‘ADMINISTRATION GENERALDES PHARES DE L' EMPIRE OTTOMAN’에 의해 빛이 20마일 반경에 다다르는 회전등이 있는 30m 높이의 등대로 세워져, 1913년 4월 14일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등대는 등의 초점 높이 약 50m, 구조물 높이 25m의 돌로 된 탑과 등대지기가 머무는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수 십년 동안 경유로만 불을 밝히다가 1981년에 전기 발전기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등대대장 ‘파니스 삐나키스(οΦάνηςΠινάκης)’ 씨는 수 십년 동안 이곳 외에도 에게해에 있는 18개 등대의 정확한 작동을 체크하고 관리 보수작업을 맡고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해안선이 무척 긴 림노스에는 14개, ‘아기오스 에브스트라티오스(οΆγιο Ευστράτιο)’에는 3개의 작은 등대들이 있다고 한다.




13.jpg
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마지막 등대, 쁠라카 등대의 전경
 


14.jpg
수상스포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케로스 마을
 

수상 스포츠를
즐기기에 적당한
쁠라티스와
케로스 마을
(οΠλατύς, οΚέρος)

그리스의 여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멜테미(τομελτέμι)라고 불리는 바람이다. 그리스 바다, 특히 에게해에서 부는 바람으로 매년 여름 6월 초부터 러시아 남부에서 불어오는 북풍으로 낮에는 시원하고 밤에는 아늑하고, 9~10월에는 공기는 차갑고 물을 따뜻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멜테미 바람이 주는 혜택을 에게해 한복판에서 맘껏 누리는 섬이 림노스이다. 바람과 파도와 아름다운 해변 그리고 화산이 만들어 놓은 바다와 접한 암벽은 윈드서핑, 수상 스키, 다이빙 등 다양한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환경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 림노스 섬에는 바다 스포츠로 유명한 해변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쁠라티스 얄로스(οΠλατύςΓιαλός)’ 해변과 ‘케로스 해변(οΌρμοςΚέρος)’은 윈드서핑과 수상 스포츠 학교가 있고, 동시에 발리 코트나 비치 바 등의 편의시설 등의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섬의 수도인 미리나에서 3.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쁠라티스(οΠλατύς)는 바다 근처 언덕에 위치한 마을로, 중세 시대에 항구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들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쁠라티스 얄로스 해변(ηπαραλία ΠλατύςΓιαλός)’이 여기에 있고, 넓고 광활하게 펼쳐진 해변과 강한 바람 덕분에 윈드서핑이나 파도타기 같은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섬의 동쪽 중앙 해안에 위치한 케로스(οΚέρος) 마을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가장 활기차고 젊은 해변으로 유명하다. 또한, ‘Natura 2000’이라는 자연 생태계 보호 구역인 소금 호수로 유명한 ‘알리키 호수(ηΛίμνηΑλυκή)’와 철새들이 서식하는 ‘홀타로림니(ηΧορταρόλιμνη)’, ‘아스쁘로림니(ηΑσπρόλιμνη)가 근처에 있어 자연 생태계 보호 구역 일부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15.jpg
 



16.jpg
바로스 빌리지 호텔의 풍차 스위트룸
 
 

림노스의 풍차들
(ΟιανεμόμυλοιτηςΛήμνου)

림노스를 상징하는 건축 양식이나 장식품들 중에 하나로 풍차를 빼놓을 수 없다. 1204년 라인강 하류지역의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프랑크족(ΟιΦράγκοι)이 그리스에 처음으로 풍차를 설치했는데, 그 첫번째 섬이 바람이 거센 림노스 섬이었다. 그래서 거의 800여 년 동안 지속된 림노스만의 풍차 역사와 전통이 있다. 섬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많은 폐허가 된 풍차들이나 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풍차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기념물로서 보존되거나 아님 복원, 개조하여 호텔이나 별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림노스의 콘티아스(οΚοντιάς) 마을의 풍차들이나 바로스(τοΒάρος) 마을 언덕 위의 폐허가 된 풍차 잔해들이나 VarosVillageHotel에 있는 풍차 호텔이 유명하다.

특히 콘티아스(οΚοντιάς) 마을은 소나무 언덕과 전형적인 지방색을 띄는 석조 주택이 아름다운데, 동네 입구에는 밀을 빻았던 오래된 풍차들이 줄지어서있다.

‘끊임없는 바람’이란 의미의 림노스의 별칭 ‘아네모에싸(ανεμόεσσα)’가 말해 주듯이 바람이 많고 강하게 불어오기 때문에 이곳에서 풍차와 밀 생산으로 유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예전에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농업에서 최고의 밀 교배종으로 치는 품종이 바로 이 섬을 가리키는 ‘림노스’라고 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림노스를 여행하는 동안 풍차 호텔이나 풍차 별장에서 머물며 동화 같은 여행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17.jpg
콘티아스 마을의 풍차 카페와 호텔
 




logo1.jpg

후원. 

1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