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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깃든 울창한 숲의 푸른 섬


스코펠로스

(ηΣκόπελος)


글, 사진. 김현우 평론가・사진작가



그리스는 인구 1100만 명의 3천 개가 넘는 섬들로 이루어진 삼면이 바다인 아름다운 섬이 많은 나라다. 동쪽으로는 에게해, 남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로 둘러싸여 있다. 외관상 비슷한 듯 보이지만 막상 섬에 첫발을 내딛을 때마다 전혀 다른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기는 이야스코펠로스시와 로라마을 기 많은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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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펠로스(Σκόπελος)의 고대 이름은 뻬빠리또스(Πεπάρηθος)다. 이 섬에 처음 정착한 스타필로스(Στάφυλος)의 형제였다. 이 섬의 아름다운 해변을 이루는 지역 이름이기도 한 스타필로스는 다산과 포도나무,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와 크리티(Κρήτη) 섬의 미노아스(Μίνωας) 왕의 딸 아리아드니(Αριάδνη)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아티나(Αθήνα)의 왕 애개아스(Αιγαίας)의 아들인 띠세아스(Θησέας)가 크리티 섬의 크노소스 궁전 미로에 갇힌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물, 미노타브로스(Μινώταυρος)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가던 중 머물렀던 곳이다. 크리티의 왕 미노아스는 괴물로 태어난 아들을 부끄러워하여 미노타브로스를 미로에 가둬두고 아티나에서 먹이로 줄 남자 7명과 여자 7명을 제물로 데려오게 했다. 띠세아스는 이런 불의를 참지 못하고 미노타브로스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희생 제물의 한 사람이 되어 크리티 섬로 떠나게 되었다. 크리티에 도착한 띠세아스를 본 아리아드니 공주는 금세 사랑에 빠졌고, 그에게 실타래를 주며 미노타브로스를 죽이고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준다. 띠세아스는 아리아드니를 데리고 고향땅 아티나로 돌아오던 중낙소스(Νάξος) 섬에 그녀를 버려두고 온다. 버려진 아리아드니는 낙소스 섬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림노스(Λήμνος) 섬으로 데려온다. 그들은 림노스에서 또안타스(Θόαντας), 이노피온타스(Ινοπίονας), 스타필로스(Στάφυλος), 뻬빠리또스(Πεπάρηθος) 등 4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 중 두 명의 이름에서 섬의 이름과 지역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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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펠로스 항구
 


스코펠로스 섬은 크리티 왕국의 번성기 시절 미노아 문명의 식민지였음은 물론,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였던 아르고리다(Αργολίδα)를 비롯해 키클라데스 섬과 북아시아, 소아시아 등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동쪽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신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섬의 동남쪽에 위치한 스타필로스(Στάφυλος) 반도에서 출토된 미케네 시대의 고고학적 흔적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스타필로스 왕의 칼이다. 길이 32㎝이며 손잡이가 금으로 만들어진 이 칼은 1936년 고고학자 플라토나스(Ν. Πλάτωνας)에 의해 무덤에서 발굴됐다. 당시 그 곳 이름이 ‘스타필로스’로 천년 동안이나 같은 이름을 유지해왔고, 또 신화 속 영웅 스타필로스 왕의 흔적과도 일치해 이곳이 바로 신화 속 장소인 것으로 추정했다. 발굴된 칼은 현재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스코펠로스의 고대 이름 뻬빠리또스(Πεπάρηθος)는 접미사 ‘θος’에서 알 수 있듯 선사시대 이전의 이름이다. 소아시아의 카레스(Κάρες)족이 처음 정착한 이후 미노아스민족과 미키나이코스민족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루키(Παλούκι)산 아래에 위치한 스타필로스 지역과 북서쪽 글로싸(Γλώσσα) 지역에 궁전을 세워 뻬빠리또스의 수도로 삼았다. 7세기 초부터 8세기에 걸쳐 이곳 거주민들은 스타필로스를 버리고 섬의 남서쪽에 있는 빠놀모스(Πάνορμος)와 오늘날의 루트라키(Λουτράκι) 지역인 셀리누스(Σελινούς) 그리고 현재의 스코펠로스인 뻬빠리또스(Πεπάρηθος)로 서서히 주거지를 옮겨 갔다.

이 모든 역사적, 신화적 이야기들은 스타필로스뿐만 아니라 드라콘토스키스마(Δρακοντόσχισμα) 등 섬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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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나기차 두 삐르구 교회
 


스코펠로스 시
(η Σκόπελος)와
호라(η Χώρα) 마을


스코펠로스 섬은 아떼아토(Αθέατο), 루트라키(Λουτράκι) 마을을 포함한 글로싸(Γλώσσα)구와 빨료클리마(Παλιό Κλήμα)와 네오클리마(Νέο Κλήμα)를 포함하는 클리마(Κλήμα), 이렇게 2개의 중심 구로 나뉜다. 그리고 섬의 이름과 동일한 행정도시 스코펠로스가 중심 도시다.

스코펠로스의 호라(χώρα) 마을은 원형극장 형태로 지어진 전통마을로, 마을의 좁은 골목들과 집들이 경사를 이루는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어서 어느 골목에서든지 멋진 바다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좁은 골목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교회를 비롯해 하얀 집들과 온갖 꽃으로 가득한 마당에 정신이 팔린다. 또 우연히 마주치는 주민들과의 짧은 인사에도 정이 가는 마을이다. 특히 호라 마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집의 구조인데, 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의 삘료리티코-마케도니코스(πηλιορείτικο-μακεδονικός)식이다. 내부는 화려한 장식의 가구들과 여행에서 돌아온 선원들이 가져온 여러나라의 도자기들로 장식돼 있다. 호라 마을의 또 다른 관광 명소로는 스피티-무시오 투 빠블루 미르바나(το Σπίτι-Μουσείο του Παύλου Νιρβάνα) 박물관과 민속박물관(Το λαογραφικό μουσείο), 스코펠로스 항구 끝자락에 위치한 빠나기차 투 삐르구(η Παναγίτσα του Πύργου) 교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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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싸(η Γλώσσα)와
루트라키(το Λουτράκι)


글로싸는 스코펠로스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섬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루트라키 항구 위의 언덕에 형성된 높은 지형의 마을로 아름다운 전망과 석양으로 유명하다. 사실 ‘글로싸’는 그리스어로 ‘혀’를 뜻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역의 모양이 혀 모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섬에 처음 정착한 미노아스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크노싸(Κνώσσα)의 이름과 관련짓는 이들도 있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글로싸 마을에 도달하기까지 혀가 뽑힐 만큼 숨이 막히는 오르막을 한없이 올라야 하기 때문이라는 유머러스한 설명도 있다.

글로싸 대부분의 지역은 샘을 비롯해 올리브나무, 아몬드와 자두나무로 빽빽히 들어차 있다. 집들은 마케도니아의 영향을 받아 붉은색 기와지붕과 나무로 된 발코니가 특징이다.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풍경 또한 으뜸이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지금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여인들을 만날수 있는데, 실제 주민들은 관습과 방언 등 전통을 고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고대 선사시대부터였다. 미노아 시대에 크리티 섬의 식민지였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많이 발굴되기도 했다. 글로싸뿐만 아니라 루트라키(Λουτράκι) 주변 지역에서도 고대의 성과 탑, 테라스와 건물 등 다양한 시대의 흥미로운 고고학적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글로싸 북쪽 쁠라타나(Πλατάνα) 지역의 아기오스 탁시알키스(μοναστήρι του Αγίου Ταξιάρχη) 수도원 안뜰에는 672년에 세워진 초대 교회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스코펠로스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알려졌다.

글로싸의 작은 항구 외곽에는 에게해의 맑은 물과 넓은 해변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루트라키 해변이 있다. 방문객들 사이에서 예쁜 자갈과 아름다운 석양이 소문이 나면서 해변 주변에 주점과 식당, 카페테리아가 많이 모이게 되었다. 배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에게는 수영을 즐기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스코펠로스 항구에서 아기오스 리기노스(Αγίος Ρηγίνος)를 거쳐 오면 28.5㎞ 떨어진 거리이고, 스코펠로스 항구에서 스타필로스(Στάφυλος)와 아그논타스(Αγνώντας)를 거쳐 오면 33.1㎞ 떨어진 거리이며 차로는 약 45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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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싸 마을
 


스코펠로스
민속박물관
(το Λαογραφικό Μουσείο Σκοπέλου)


스코펠로스 민속박물관은 스코펠로스의 전통과 역사, 생활양식 등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건물 자체는 1991년 니콜라이디스(Νικολαϊδης) 가문이 스코펠로스 시에 기증한 것이다. 1795년에 세워진 후 잘 관리돼 오다가 1963년의 대지진에 의해 건물의 1층과 2층이 크게 손상됐다. 이후 1971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됐으며, 1992년 8월부터 박물관으로서 탈바꿈해 전통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으로는 니콜라이디스 가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들과 그림, 전통 자수로 만든 수많은 식탁보와 옷감, 거실과 벽난로를 장식하는 당시의 생활용품들을 비롯해 신부의 방에 전시된 옷들과 신부에게 보내는 예물 등이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전시돼 있다.

거실의 소파 옆에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리스 국기를 든 여성이 입었다는 스코펠로스의 유명한 전통 여성 의상들과 신부복(웨딩드레스, 약혼복)이 전시돼 있다. 스코펠로스의 전통 드레스는 강한 원색의 색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수많은 보석과 액세서리가 눈에 띈다. 또 신부복과 일상복, 파티복의 구분이 확실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색상의 약혼복은 이 옷을 입은 여성에게는 남성들이 구애하지 않도록 접근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검은 색의 과부복은 남편을 잃은 여성이 평생 입어야 했던 복식이었다. 그리고 무게가 7㎏에 달한다는 웨딩드레스는 검은색 새틴 옷감에 금색 자수로 장식했고 식물과 꽃모양의 모티브 자수는 밝고 강한 색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치마에 많은 주름이 잡힌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속치마와 2중 옷감의 스커트, 총 5장의 옷감은 1㎝이하의 폭으로 주름을 잡아 주변부 폭의 길이가 6.34m에 달한다고 한다.

박물관 지하는 당시 하녀들이 머물던 곳으로 부엌이 있고 술과 곡식, 올리브기름 등을 보관하던 커다란 보관용 도기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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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펠로스식 전통 웨딩드레스
 


07.jpg스코펠로스 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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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료 클리마 지역에서 바라보는 바다 전경
 



드라콘토스키스마
(Δρακοντοσχισμα)


드라콘토스키스마는 스타필로스(Σταφύλος)와 아마란토스(Αμάραντος) 사이에 있다. 스코펠로스에서 글로싸 방향의 주요 도로에서 스타필로스를 조금 지나 우회전으로 돌면 사람의 손 모양을 한 깍은 듯한 웅장한 바위와 낭떠러지가 짙푸른 청록색 바다와 만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절벽의 해안으로 접근하여 이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경로는 뱃길 밖에 없다. 그래서 보트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벽 위의 경치에 만족해야 하거나, 보트를 빌려 그곳으로 가야 한다.

드라콘토스키스마라는 이름은 스코펠로스의 전설 속 이야기 중 하나에서 유래했다. 전설에 따르면 800여 년 전 스코펠로스에는 주민들을 죽이고 잡아먹는 공룡 한 마리가 살았다. 그 누구도 섬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주변 섬들에서는 사형에 처해진 죄수들을 공룡의 먹이로 이곳으로 보냈다. 이 일은 이후로도 약 400년 동안 계속됐는데, 이 소식을 들은 성자 리기노스(Άγιος Ρηγίνος)가 자신이 직접 공룡을 없애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죄수들의 배에 올라타 스코펠로스로 오게 된다. 섬에 다다른 그는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자비(ο έλεος του Θεού)만이 공룡을 무찌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여긴 그는 “엘레오스(έλεος, 자비라는 뜻)”를 부르짖었다. 이 때문에 드라콘토스키스마가 있는 지역의 이름이 엘리오스(Έλιος)가 됐다는 설이 있다.



스타필로스
(ο Στάφυλος)

공룡은 성자 리기노스를 보자마자 공포에 떨며 도망쳤고, 이곳에 도달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공룡은 절벽 바위에 부딪혀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때 절벽 바위가 부서지고 금이 간 형상에서 ‘공룡이 찢은 것’이라는 뜻의 드라콘토스키스마 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절벽 바위 가장자리에는 성자 리기노스를 기리는 한 평 남짓한 성당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올리브유로 불을 밝히거나 촛불을 켜고 건강과 사랑을 기원한다. 다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주의를 요해야 하는데 안전장치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동반할 경우 되도록 낭떠러지 근처에 접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름답기는 하나,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 해변은 스타필로스 왕의 이름을 따 명명된 곳이다. 왕의 무덤이 있던 장소이자 유물이 발견된 곳으로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해 여행객들에게 인기있는 곳 중 하나로, 소나무 숲을 이룬 작은 섬이 불뚝 나와 만을 이룬다. 이를 기점으로 왼쪽에는 고운 모래사장이 깔린 아름다운 해변이 있고, 오른쪽은 다이빙하기에 적합한 깍아내린 바위 해안선으로 이뤄져 있다. 정오쯤에는 그림자를 만들어줄 파라솔이 필요할 만큼 햇살이 뜨겁다. 성수기에 속하는 7~10월에는 해변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와인바나 돗자리·파라솔을 대여하는 노점상을 이용할 수 있다.



아그논타스
(ο Αγνώντας)


아마란토스(Αμάραντος) 아래에서 정확히 꺾어지는 지점에 소나무들이 무성한 아그논타스(Αγνώντας)가 있다. 스코펠로스 호라 마을에서 8㎞ 떨어진,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시내에서 잠시 수영과 산책을 하러 나오기에 적당한 마을이다.

이곳 지명은 기원전 569년 올림픽 챔피언인 ‘뻬빠리띠오스 아그논타스(Ο Πεπαρήθιος Αγνώντας)’의 이름에서 따왔다. 올림피아(Ολυμπία) 트랙경주에서 우승하여 돌아올 때 이 지점에서 배를 타고 내렸는데 백성들이 그의 명예를 치켜세워 주기 위해 그의 이름을 지명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고대의 은화에도 그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아그논타스는 많은 어선과 낚시꾼들의 배가 정박하는 작은 항구다. 말 그대로 소나무 숲이 바다와 맞닿아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 일몰도 멋진 곳이다. 어부들은 오징어 등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매일 밤 출항했다가 아침에 돌아오는데, 그날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여러 수산물 타베르나(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아름답고 잔잔한 해변 중앙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늙은 뽕나무가 있다. 이렇듯 그리스 전역에 걸쳐서 광장 한가운데 뽕나무를 심는 것은 그 잎이 넓어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늙은 뽕나무를 둘러싸고 그 그늘 아래 탁자들을 늘어놓은 ‘아그논타스 무리아(AGNONTAS MOURIA)’ 식당의 푸짐한 해산물과 생선요리의 맛은 일품이다. 식사를 하며 점심 수영을 즐기는 이들을 한가로이 바라보거나 저녁 일몰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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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논타스
 


빠놀모스
(ο Πάνορμος)


호라 마을에서 12.3㎞, 스코펠로스 시에서 스타필로스와 아그논타스를 잇는 도로를 경유하면 18㎞ 떨어진 거리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빠놀모스(Πάνορμος) 해변. 자동차로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울창한 숲과 이 섬의 독특한 자연경관이 주는 아름다움과 쾌적함이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주행속도를 내지 않고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을 느긋하게 느껴보는 것도 휴가를 즐기기에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으로 깊게 패여 거대한 만을 형성하는 해안선은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바다를 끌어안고 있고, 해변의 맑은 물은 매우 투명하여 바다 밑의 조약돌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이게 한다. 특히 태양이 바다를 만나는 환상적인 일몰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대체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으로 해안선을 따라 호텔, 식당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제한적이지만 주차장 시설도 잘 돼 있다.

수 년 전 겨울에 큰 눈이 내렸을 때,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부러져 도로가 차단된 적이 있을 만큼 빼곡한 나무들이 부러움을 사는 곳이다.

빠놀모스 지역의 빨래오카스트로(Παλαιόκαστρο) 언덕 위에는 고대에 건설된 아크로폴리스(Ακρόπολης)가 있는데, 그 성벽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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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놀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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