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닭,

누구냐 넌?


글. 백은영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01.jpg
쌍계도 雙鷄圖
 


새 아침이 밝았다. 분명 어제도 그제도 봤던 똑같은 태양이건만 새악시 볼처럼 붉은 것이 유난히도 크고 고와 보인다. 심지어 새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 새해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태양이 힘차게 떠올랐다. 때맞춰 닭도 제 힘껏 “꼬끼오~”라며 목청을 돋우니, 그 소리가 참으로 정겹다.


02.jpg
계명도 鷄鳴圖
 


“여기 모인 양반님들~ 이 내 얘기 한 번 들어보소. 때마침 나의 해(年)도 맞았겠다. 그동안 그대 지체 높으신 양반님들에게 쌓인 감정 한번 풀어볼 터이니, 귓구멍 크~게 열고 정신 바짝 차리시오! ‘아~ 문장 꽤나 쓰신다는 양반들이 걸핏하면 ‘닭대가리’라 면박주고, 툭 하면 ‘닭 모가지 비튼다’고 겁박하고, 심심하면 ‘병든 닭’이라고 정죄하니~ 아이고 난 못 살겠소. 그러는 고상하신 양반님들은 머리에 벼슬 한번 올려봤소? 세상 위해 목 놓아 울어보기는 했소? 닭 모가지 비튼다 말고, 비틀어진 그 심보나 한 번 제대로 풀어보소!”

내 안에 오덕(五德) 있다”


우리네 선조들은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미명(未明), 닭은 제 목소리를 높여 아침을 밝혔다. <후한서>의 ‘동이열전’이나 <삼국지>의 ‘동이전’에 닭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과 닭의 공존은 고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함께했던 그 오랜 시간만큼 닭은 우리의 역사와 생활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는 벽사의 기능으로서의 닭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 상서로운새)이자 길조(吉鳥)로서의 모습이다. 상서로운 새로 여겨졌기 때문인가. 닭의 울음소리를 새로운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닭이 울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얘기나, 새해가 되면 닭을 그린 *세화(歲畵)를 벽장이나 대문에 붙이는 풍습에서 벽사의 기능을 가진 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책의 표지에 닭 그림을 사용했다고 하니, 닭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네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던 존재였던 것이다.

   


03.jpg
오동계자도 梧桐鷄子圖
 


집에서 키우는 짐승 중 가장 몸집이 작으면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닭. 힘들고 못살았던 시절, 닭 한 마리만 있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닭장 문을 열면 떡하니 놓여 있는 달걀은 주린 배를 달래줄 그야말로 고마운 먹거리였다.

어디 닭이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배고픔만 달래 줬겠는가. 지금도 여전히 제 몸을 초개와 같이 불태우며 수많은 치킨마니아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가. ‘치느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닭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가까이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단지 맛있는 음식으로서만 닭이 ‘치느님’으로 대접받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벽사의 기능과 함께 부지런함과 단란한 가족애를 나타내는 닭은 그 특성답게 알뿐 아니라 ‘오덕(五德)’을 품은 존재로도 인식된다.

조선 후기 하달홍(河達弘, 1809~1877)은 <축계설(畜鷄說)>에서 <한시외전(漢詩外傳)>의 고사(故事)를 인용해 “닭은 머리에 관(볏)을 썼으니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니 무(武),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니 신(信)”이라 했다. 사람으로 치면 군자의 면모를 두루 갖춘 꼴이니 과연 ‘치느님’으로 불릴 만하다.


오덕(五德)을 지닌 닭의 모습은 옛사람들의 그림이나 연적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변상벽의 ‘계도(鷄圖)’나 ‘금계도(金鷄圖)’ ‘계명도(鷄鳴圖)’ ‘닭 모양 연적’ 등이 좋은 예다.


04.jpg
십이지 신장 닭 신(酉神) 미기라 대장 十二支神將 酉神 迷企羅 大將
 


“난 이런 닭이야!”
닭은 유독 빛에 민감하다. 뇌 속 뇌하수체 전엽에 존재하는 송과체로 인해 눈이나 피부로 들어오는 빛을 직접 흡수하기 때문이다. 내분비기관인 송과체는 생체 내 생리작용을 조절하고 혈액 내 농도가 하루 중 새벽에 가장 높아 생리적으로 시각을 인식한다. 어둠을 물리치고 빛이 밝아오는 것을 말 그대로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너무도 예민한 닭’은 그래서 이른 새벽부터 그렇게도 목 놓아 울었나 보다.

여기서 잠깐! 잠시 삼천포로 빠져보자.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전해지는 전설이나 민간설화 등을 바탕으로 제작돼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매주 방송돼 인기를 끌었던 KBS드라마가 있다. 이름하여 <전설의 고향>. 이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가 바로 ‘귀신’이다.

야귀발동(夜鬼發動)이라 했던가. 드라마에서는 밤만 되면 어김없이 귀신(최다 출연 귀신은 아마도 처녀귀신일 것이다)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놀라게 한다. 이때 귀신을 쫓는, 아니 귀신이 알아서 도망가는 반가운 소리가 있으니 바로 “꼬끼오~ 꼬꼬. 꼬끼오~ 꼬꼬”다. 어릴 적 <전설의 고향>이 방영될 때면 무섭다고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보겠다는 일념 하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눈은 감았다 떴다를 무한 반복했던 그때 그 시절.

드라마 속에 귀신이 나타날 때면, 빨리 닭이 울어 귀신을 쫓아내기를 바랐던 기억이 있다. 닭이 가진 벽사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들어갔던 삼천포에서 다시 빠져나와, 닭이 등장하는 기록을 하나 살펴보자.


닭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충청도 은진현에서 암탉이 변해 수탉이 되었다.”라든가 “충청도 연기현의 백성 백춘희의 집에서 기르는 암탉이 두 해 동안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깠는데, 올해에는 수탉으로 변하여 깃털의 모양과 빛이 바로 수탉과 같았다.” 등의 믿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난소 퇴화로 인한 호르몬 변화, 사육환경 변화, 유전적 요인 등이 변화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허나 홍수나 가뭄, 지진이나 해일 등의 천재지변이나 일식·월식·혜성 혹은 신기한 동식물의 출현과 같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들에 대한 당시의 부정적 인식을 감안했을 때 ‘암탉이 변해 수탉이 됐다’는 소문에 대한 기록을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기엔 부족할 수 있다.

닭을 논할 때 빼놓으면 서운하다고 평생을 ‘쪼아댈’ 유명한 이야기가 있으니 <삼국유사>에 나오는 박혁거세와 김알지 신화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은 계룡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고, 입은 닭의 부리를 닮았다고 한다. 또한 황금 궤안에서 나온 김알지는 하얀 닭이 그의 탄생을 알렸다. 임금이나 왕후의 탄생을 알리는 상서로운 임무를 맡은 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큰 광명이 시림속에서 나타남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에 뻗치었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고 그 빛이 궤에서 나오며 또한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우는지라. 이것을 왕에게 아뢰었다. 신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삼국유사> 김알지 탈해왕대).”

이외에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꾼 꿈은 그가 임금이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흥미롭다. 닭이 울고, 꽃이 지며, 무너지는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훔쳐 지게에 짊어지고 나오는 꿈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닭이 울면서 내는 *꼬끼오는 고귀하다와 같은 음이기에 고귀한 일이 있을 징조다. 꽃이 지면 곧 열매가 맺힐 것이니 좋은 의미다. 사람이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면 임금 왕(王)자가 된다. 곧 임금이 될 꿈이다.”

이쯤 되니 그동안 툭 하면 ‘닭대가리’라는 소리를 들었어야 할 세상의 모든 닭들에게 미안해진다. 겉모습만으로 속단하고 판단하여 생겨난 오해와 편견들.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관념들로 인해 이면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일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정유년 새해 ‘붉은 닭’의 기운을 빌려 바라본다.



05.jpg
다리미
 


* 세화(歲畵)
조선 시대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주던 그림

* 꼬끼오
꼬끼오를 글자로 쓰면 고귀위(高貴位) 또는 고귀유(高貴有)라고 쓰니 장차 높고 귀한 자리에 앉게 된다는 뜻이다.



닭찾아봐라


광야(曠野)
이 육 사 / 시인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


- <심청전> 中


06.jpg
 





길조어와 속담

◎ 닭이 감나무에 올라가면 재수가 좋다.

◎ 닭이 항상 나무 밑에 있으면 그 집안에서 벼슬할 사람이 나온다.

◎ 닭이 쌍알을 낳으면 집안이 흥한다.

◎ 꿈에 달걀 깨진 것을 보면 속 시원한 일이나 돈이 생긴다.

◎ 꿈에 달걀이 크게 보이면 수명이 길다.

◎ 알 품은 닭이 삵을 친다.
→ 부모가 자식을 위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에게도 대든다.

◎ 쌀고리에 닭이다.
→ 갑자기 먹을 것이 많고 복 많은 처지에 놓인다.

◎ 구시월 닭이다.
→ 먹이가 흔할 때의 닭처럼 먹을 복이 많다.

◎ 봄 닭띠는 자식이 흥왕한다.
→ 닭띠로서 봄에 나면 자식이 많다.


0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