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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과 어울린 역사의 향(鄕) ‘국태민안’의 성지


전 국민이 나서 재앙 극복
되살아난 아름다운 해안

마한 유적~조선 진영까지
문화재의 보고이자 최고의 관광지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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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 소원 만리포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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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꽃지
 




태안(泰安)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땅이다. 오랜 역사 동안 왜 ‘태안’이란 이름을 지녀온 것일까. 태안이란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안전’이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줄인 이름이다. 고을 이름이 이보다 더 좋은 지명은 없을 것 같다.

9년 전 태안 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기름띠 사건은 ‘미증유(未曾有)의 재앙’이었다. 악취가 진동했고 어민들은 망연자실 어구를 놓고 실의에 잠겼다. 그런데 태안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학생부터 80세가 넘는 어르신들까지 태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군인과 학생, 사회단체, 공무원, 부녀회 모두 기름 닦을 수건을 들고 바닷가 바위와 모래사장을 헤집고 다녔다. 전 국민이 기름때 제거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눈물과 땀, 애정으로 지킨 태안반도였다. 태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기름 냄새로부터 말끔히 치유되기 시작했다. 9년이 지난 후 태안반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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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가의도
 



태안의 역사 ‘마한 신소도국과 고랍국’

고대 태안을 개척한 집단은 마한 신소도국(臣蘇塗國)과 고랍국(古臘國). 마한 54개국 중 두 개의 나라가 이 태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해안이었다. 이는 기름진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태안의 구명(舊名)이 소태(蘇泰)·소주(蘇州)·소성(蘇城)이란 점에 대해 마한에서 제사를 지냈던 소도(蘇塗)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한은 중부지역과 서해안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청동기시대의 고대 성읍국가이다. 그 수부는 지금의 천안·안성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는 목지국(目支國)이다. 청주는 애양국(愛襄國, 마한의소국)의 고지로 추정되고 있다.

태안에서는 이른 시기의 마한시대 유물인 고인돌(지석묘)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신소도국의 고지인 태안읍 장산리에 7기, 고남면 고남리에 1기 등 모두 8기가 있다. 아직 발굴은 안됐지만 마한시대의 대규모 주거지와 유물이 출토될 것으 로 전망된다.

안면도(安眠島)의 고남면에서는 청동기시대보다 앞선 시기의 사냥돌, 긁개, 찌르개 등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수습되고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패총(조개 무덤) 10여 개소가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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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
 



중국 고대 문화 전수의 관문

백제시대 태안은 성대혜현(省大兮懸)으로 불리었다. 서해를 통해 중국과 가장 가까웠던 이점으로 제일 먼저 대륙으로부터 문화를 수용했다. 그 역사적 증거물이 바로 국보 제307호인 태안마애 삼존불이다.

이 마애삼존불은 백화산의 태을암 옆 암벽에 동남향하여 조상(彫像)되었으며 한국 마애불의 시원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불상은 중국 고대 불교 유적인 석굴 바깥벽에 새겨진 불상들과 유사하다. 당당한 신체와 강건한 얼굴, 묵중한 법의(法衣) 등은 6세기 후반의 백제 불상 양식을 나타낸다. 마애불 주변에서는 백제 고식의 와편도 발견된다.

마애불은 큰 바위에 사각형의 감실(龕室)을 마련하고 남북으로 여래상을 새겼으며 중앙에 낮은 보살입상을 봉안했다. 일반적인 삼존불 배치의 예와 달리 가운데에 보살상을 배치한 독특한 모습이다. 불상의 높이는 왼쪽 불상 2.96m, 오른쪽불상 3.06m, 중앙보살 2.23m이다.

마애불상으로 오르는 입구 암벽에는 조선 후기 김규환(金圭桓)이란 사람이 조성한 ‘태을동천(太乙洞天)’과 ‘일소계(一笑溪)’라는 글씨가 각자되어 있다. 태을이란 도교에서 옥황상제를 뜻하며, 동천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신성한 곳을 지칭한다.

태안은 신라 통일기에는 소태현(또는 소주)이라 불리었다. 고려 성종 2년(983) 전국을 12주로 나눌 때 지금의 홍성인 운주에 속하게 된다. 충렬왕 24년(1298)에 소태현(蘇泰縣) 출신 이대순(李大順)이 원(元)으로부터 총애를 받자 군으로 승격되면서 태안으로 개칭되었다.

태안군은 서산군에 병합되어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태안군으로 복군됐다. 태안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8개 읍면에 65개 법정리, 186개 행정리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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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삼존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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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삼존불 입구 암벽에 새겨진 글씨
‘태을동천(太乙洞天)’과 ‘일소계(一笑溪)’
 




조선 역사의 잔영 안흥성

조선 중기 해안을 지키는 진영(鎭營)을 보여주고 있는 안흥성은 태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성은 북벌 의지가 한창 타오르던 조선 효종 때 옛날의 판축성지에다 보축하여 축성되었다. 안흥성의 초축(初築)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학술조사가 필요하다.

경기도에 살던 학자 김석견(金石堅)은 안흥진(安興鎭)을 쌓아 강도(江都)의 외권(外圈)이 되게 하기를 조정에 소청했다. 왕이 이 건의를 듣고 지경연사(知經筵事) 이후원(李厚源)에게 물었다. 이후원은 “이곳은 바다 가운데로 수 십리를 뻗어 들어가 있으므로 여기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양곡을 저장하면 안으로는 강도의 표리(表裏)가 되고, 밖으로는 호남과 영남을 제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효종은 감사에게 명하여 진영을 쌓게 하였다.

성안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동문은 수성루(壽城樓), 남문은 복파루(伏波樓), 서문은 수홍루(垂虹樓), 북문은 감성루(坎城樓)라 하였다. 성을 쌓은 돌에 인근 고을의 석공 이름들이 새겨져 있어 태안 지역에 살던 백성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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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성
 




천혜의 관광지 안면도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 안면도는 해안선 길이가 1300리다. 푸른 바닷물, 해안 송림과 어우러진 하얀 모래사장은 최고의 풍경이다.

안면도는 본래 곶(串)으로서 육지인 남면과 연륙되어 있었다. 그러나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는 것이 불편하자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함으로써 섬이 되었다. 현재는 연륙교가 놓여 육지와 이어져있다.

북쪽에 솟은 국사봉(107m)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간조 때에는 간석지가 넓게 펼쳐진다.

안면도에는 전국에서 가장 혈통 좋은 노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500여 년간 조선왕조의 철저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했다. 안면도 소나무는 예전부터 국가에서 관리해온 만큼 질이 우수하고 크기도 장대해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용 목재로 사용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선시대 경복궁을 지을 때와 오래된 궁궐을 보수할 때도 반드시 안면도의 소나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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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꽃지 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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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 생가
 




안면도의 절경은 바로 낙조. 학바위에서 조망되는 낙조는 은은함이 넘친다. 또한 노을이 지는 시각, 달빛 속에 어리는 간월도(看月島)의 풍경은 최고다.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유명하며 조선시대 이태조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의 설화가 어린다. 무학은 달빛에 물든 이 섬을 완상(玩賞)하면서 도를 깨쳤다고 한다. 간월도, 간월암, 간월도리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안면도에는 불우한 삶을 아름답게 살다 간 고(故) 천상병 시인이 살던 옛집이 옮겨져 있다. 문학동호회 회원들은 안면도에 오면 천 시인의 집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의 아름다운 시 ‘귀천(歸天)’을 애송하기도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왜 천 시인의 집이 안면도로 옮겨진 것일까. 평소시를 좋아하며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모종인 씨의 노력에 의해 이뤄졌다. 안면도에서 팬션을 운영하고 있던 모 씨는 천 시인이 살던 의정부 수락산 판잣집이 도시개발로 헐리게 되자 이를 옮겨 왔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의 삶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은 이제 그를 추모하는 문학관이 되었다.



안면도 먹거리 게국지

안면도 먹거리 하면 ‘게국지’를 빼놓을 수 없다. 알이 꽉 찬 꽃게와 김치를 함께 끓여낸 게국지는 일반 김치찌개나 해물탕과는 다른 진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태안 서산의 향토음식으로 ‘밥도둑’이란 별칭을 갖기도 한다.

원조 안면도 게국지맛집으로 알려진 ‘시골밥상(대표 인남선)’은 10여 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맛집. 이 식당의 대표가 전하는 게국지 맛의 핵심은 바로 신선한 꽃게다. 봄 꽃게 중에서도 암 꽃게를 사용해야 속살과 알이 풍성해 진미를 낸다고 한다.



순결한 사랑의 상징 백합… ‘백합 축제’ 성료

백합(百合)의 꽃말은 ‘순결과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릴리(Lily)’로도 불리며, 문학속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상징하는 단어로 많이 쓰여 왔다. 지난 2002년, 2009년 태안 꽃박람회를 성공시킨 태안군은 올해 8월 백합축제를 열었다.

백합 축제는 지난달 1일부터 10일간 남면 신온리 네이처영농조합법인에서 열려 전국에서 많은 꽃 애호가들이 몰렸다. ‘백합 향기 가득한 태안의 바다, 빛으로 물들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축제는 전 세계의 백합을 노지에 식재해 선보였다. 흰색,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등 여섯 종의 신품종 백합들 외에도 희귀성은 물론, 화려하고 자태가 뛰어난 품종들까지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특히 중국에서 술안주로 쓰이는 ‘서근 백합’과 봉우리가 수십 개씩 달려있는 ‘말나리 백합’이 시선을 끌었다. 또한 뿌리를 버터와 함께 요리한 백합뿌리 볶음, 계란찜, 튀김, 조림 등에 사용하는 백합근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 축제에는 다수의 요우커는 물론 동남아시아, 미국 관광객들도 찾아와 성황을 이뤘다. 야간에는 50만 송이의 LED 튤립과 100만 송이의 LED장미가 화려하게 불을 밝혀 환상적인 ‘백합꽃 천국’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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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기 군수 “태안 개발 청사진 반드시 실현”

한상기 태안군수는 군정의 당면 현안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24시간 뛰어다닌다. 땀을 흘린결과 기업도시 및 안면도 관광지 개발 등 난제로 남아 지지부진하던 주요 현안들이 대부분 해결됐다. 그는 올해에도 희망 태안, 최고의 해안 휴양지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올해 총 8158억 원을 투입, 종합운동장 조성과 바다목장 조성사업 등 7개 분야 59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2개 사업을 이미 완료했습니다. 특히 민선 6기 군정 목표인 ‘희망찬 태안, 행복한 군민’을 이뤄낼 수 있도록 전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중앙정부와 충남도에서의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군수가 추진하는 20대 미래전략사업은 지역개발, 관광산업, 수산발전, 농업발전, 보건·의료 분야 등 5개 분야의 기업도시개발 지속 추진, 군 장기종합개발계획 수립, 대규모 투자사업 유치, 마리나항 건설 추진, 대표 관광산업 발굴, 해상실크로드 테마특구 조성 등 20대 사업이다. 이 관광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추진되면 군은 장기적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기반을 갖추게 된다.


태안군은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주관 지역 활성화 사업 대상 지역으로 선정돼 10년간 국비 300억 원을 지원 받게 됐다. 또 안흥 마리나항만 사업과 영목 해양관광거점 사업을 확정짓는 등 지역개발 조성을 위한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원거리 지역 주민들의 교통비 부담을 크게 덜어준 농어촌버스 이원화 요금제를 정착시킨 한 군수는 태안문화원 이전, 작은 영화관 건립 등 문화·체육 분야에 대한 지원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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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기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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