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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 오른 ‘국보 1호’ 교체론
‘숭례문’ 이대로 괜찮겠어요?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의 운명이 위태하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국보 1호 해지’ 논의가 있었던 만큼 이번 국보 1호 교체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특히 2008년 2월 10일 방화소실 뒤 최근 복구됐으나 각종 비리와 부실로 국민에게 실망을 주면서 숭례문의 ‘국보 1호’로서의 자격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글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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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저녁, 숭례문에 발생한 화재로 2층 문루가 소실되고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적인 것은 방화로 인한 화재라는 사실이다. 허나 이보다 더 충격인 것은 방화소실 후,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발표와는 다르게 각종 비리와 부실의 산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보물 1호에서 국보 1호가 되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돼 1398년 2월에 준공된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600여 년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했다. 조선왕조의 흥망성쇠와 우리 민족의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지켜본 것이다. 서울도성의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남쪽에 있다 하여 일명 남대문(南大門)으로 불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 지금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됐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개국공신인 유학자 정도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다섯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행(五行)을 따서 서울 성곽의 사대문(四大門)에 이름을 붙였다. 정동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정서의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정남의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정북의 숙청문(肅淸門, 북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조선왕조 도성의 정문으로 세워진 숭례문은 서울성곽 8문(사대문, 사소문)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컸다. 1396년(태조 5)에 축조됐을 때는 석성과 토성이 섞여 있었으나, 세종이 1422년(세종 4) 중수할 때 전부 석성으로 개축했다. 세종 때의 기록에 따르면 새로 지어지는 것(신작, 新作)과 마찬가지인 대규모의 중수를 거쳤다. 건축물로서의 상징성보다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상징성이 컸다 할 것이다.

숭례문은 1934년 일제가 제정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의해 보물 제1호로 지정됐다. 이후 1962년에 <문화재보호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전국의 문화재를 다시 지정하는 작업에 따라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 고쳐 지정됐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일제가 왜 숭례문
을 보물 1호로 지정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와 관련, 임진왜란 당시 전쟁 발발 20일 만에 수도 서울이 일본군에 의해 함락됐을 때 숭례문으로 개선한 장군 가토 기요마사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에게는 민족의 문화재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마치 개선문과
같은 승리의 기념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도 모자랄 판에 일제가 자신들의 기준에서 지정한 보물을 제대로 된 판단기준 없이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일제가 우리 문화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이름이기에 숭례문으로 부르는 것이 바르다.
 
굳이 일본과의 관계성이 아니더라도 여러 번에 걸친 개수와 중수공사로 인해 원형을 찾아보기 어렵고, 2008년 화재 이후 제대로 된 복구가 아닌 국민에게 실망만 안긴 일명 ‘짝퉁 숭례문’이 됐으니 이미 국보 1호로서의 자격이 사라졌다는 것이 통론이다.

숭례문은 화재 사건 이전에도 이미 김영삼 정권 당시인 1996년 국보 1호 해지 논의가 있었고, 2005년에는 감사원에서 ‘국보 1호 해지’를 권고했으나 문화재위원회가 ‘사회적 혼란’을 이유로 부결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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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국보 1호 교체론’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는 데에는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와 (사)우리문화지킴이(명예회장 김상철)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 10만 서명 운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2014년 초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숭례문의 국보 1호 해지
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어 이번 서명 운동이 숭례문 국보 1호 해지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혜문스님의 경우 <조선왕실의궤> 환수, 대한제국 국새 반환청원 운동 및 문정왕후 어보 환수를 위한 백악관 10만 서명 활동인 ‘응답하라 오바마’를 통해 올 4월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시 대한제국 옥새인 ‘황제지보’를 비롯한 국새 및 어보 9점을 직접 반환한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는 등 실질적인 결과를 낳고 있어 이 두 단체의 이번 활동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다.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 10만 서명 운동’의 경우 지난 11월 11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발대식을 가진 후(아래사진), 5일 만인 16일 2만 명을 넘어서는 성과를 이뤘다. 서명 사이트 개설 24시간 만에 5000명을 돌파한 것 또한 심상치 않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스님은 이번 서명 운동과 관련 “더이상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숭례문은 대한민국 국보 1호로 자격이 없다”며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지정하려는 노력은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시도됐지만 그때마다 ‘국보 1호는 관리번호에 불과하다’ ‘국보 1호를 교체하면 혼란을 준다’ ‘국보번호를 없애자’는 등의 논의가 혼재되면서 무산되어 왔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20년에 걸친 숙제를 하고 있다”며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감사원이 숭례문 국보 1호 해지를 권고한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제는 조선 총독이 지정한 국보 1호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지정한 국보 1호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훈민정음’이었으면 한다”고 서명운동의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문화지킴이 김상철 명예회장은 “한글은 우리 민족이 창조해낸 위대한 문자이며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훈민정음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창조물이다. 우리나라 국보 1호로 마땅하다”고
전했다. 한글과컴퓨터 이홍구 부회장 또한 “세종대왕은 가장 문화적인 사람이었으며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었다”며 “‘한글과컴퓨터’도 한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서명운동에 적극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움직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 같다’ ‘인류 지적문화 발전의 진수 중에 진수인 훈민정음이야 말로 국보 1호가 되는 것이 정당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일이 있는 문자, 한글은 인류의 보물이다’ ‘당연히 국보 1호는 우리글이어야 한다. 등수가 아닌 우리 민족의 정체성 문제라고 본다’ 등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물론 찬성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보에 순서를 매긴 것은 단순히 관리번호를 매긴 것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주장과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어도 그 또한 우리의 문화이기에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등 ‘국보 1호 교체론’에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보 1호 교체에 대한 찬·반을 떠나 중요한 것은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러한 말이 다시금 화두가 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금강경에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혹은 돌아온다’는 의미를 가진 이 말에서 한 가지 의미를 찾는다면, 이 시대가 지금 회복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 나오고, 왜곡된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는 일, 그 길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주길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