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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들이 가고 싶어 했던 환상의 섬이 있다. 그들에게는 고달픈 현실을 벗어난 피안의 세계이자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지아비와 아들이 살고 있을 것이라 믿은 위안의 섬이었다. 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섬, 바로 이어도다. 이어도의 정확한 명칭은 ‘파랑도’다. 전설 속 이어도는 피안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섬이었다. 삶을 위해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 그리고 그 바다가 삼켜버린 사람들. ‘이어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자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설 속의 섬 ‘이어도’가 작년 하반기부터 한·중·일 세 나라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학적인 감수성 때문도, 전설 속 이야기 때문도 아니다.
국가의 권력을 나타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상징 ‘방공식별구역’ 때문이다.

중국이 지난 11월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하자 한·미·일 세 나라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이어도를 관할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여간 골칫거리가아닐 수 없었다.
 
중국은 과연 무슨 이유로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했는가. 또한 우리 정부는 관할권이 있으면서도 사전에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에 넣지 못했는가. 중국의 이번이어도 방공식별구역 설정으로 한국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어도, 영토 아닌 수중암초
 
이어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의 영토주권이 미치는 영토가 아니다. 섬이 영토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토지로서 물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며 1년 365일 수면위에 떠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어도는 영토가 아닌 수중암초에 해당된다.

수중암초인 이어도는 수면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이 해수면 아래 4.6m에 있으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해서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에 이른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가 처음 발견했다. 이어도를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고 불렀던 것도 처음 이어도를 발견한 선박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38년 일본은 해저전선 중계시설과 등대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m, 수면 위로 35m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구조물을 이어도에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허나 일본의 이러한 계획은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됐다.

우리에게는 전설의 섬이요, 피안의 섬으로 불렸던 이어도의 실재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이다. 국토규명 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 속에서 실체를 드러낸 이어도 정봉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혔다. 이후 1984년 제주대학교-KBS 파랑도 학술탐사 팀이 암초의 소재를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1986년에는 현 국립해양조사원 조사선에 의해 암초의 수심이 4.6m로 측량됐다. 이어도 최초의 구조물은 1987년 해운항 만청에서 설치한 이어도 등부표(선박항해가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무인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로표지 부표)로서 그 당시 이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표한 바 있다.
 
 
이어도 62년 만에 KADIZ 설정
 
중국이 이어도 상공을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으로 설정한 후에야 우리 정부는 뒤늦게 이어도 상공을 한국방공식 별구역(KADIZ)에 넣었다.
62년 만의 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그동안 이어도 상공을 KADIZ에 넣지 못했는가.
 
이와 관련 권문상(법학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정책 연구소장은 “62년 전의 KADIZ는 미국 태평양사령부에 의해 취해진 것으로 2008년 우리 정부가 국방부 고시를 통해 KADIZ를 선고할 때에 이어도를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바는 아니었다”며 “당시 독도의 JADIZ 포함 여부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어 성사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CADIZ 설정 전에 일본의 JADIZ 역시 이어도 상공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강한 대외적 대응과 조정력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면서도 “국방안보적 측면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일부 작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어도는 영토문제가 아닌 한국과 중국 간 해양경계획정의 문제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이어도는 한·중 간 해양경계획정의 대상이 되는 해역이며 이는 한·중 외교부가 2006년 이미 합의한 바가 있다.

우리 정부의 이어도 관할권에 대해 권 소장은 “양국 간 동중국해 대안(對岸) 거리는 400해리가 안 되는 해역이며 또한 해당 수역에서 양국은 동일한 대륙붕을 향유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즉, 지형 및 지질적 요소가 고려되기보다는 특정 사안을 고려한 중간선 방법으로 경계선을 획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때 양국이 주장하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도 해당 해역은 명백하게 우리나라 배타적 경제수역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경계획정 전이라도 우리나라가 관리를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양국 간 경계획정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수역에서의 어업자원에 대한 접근은 양국 국민 모두에게 접근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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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어도를 탐내는가? 한·중·일 방공식별구역 중첩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이유 중 하나는 풍부한 수산자원과 해양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도를 둘러  싼 한·중·일의 관심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권문상 소장은 “한·중·일의 이어도를 둘러싼 관심은 이 지역이 갖는 군사전략적 활용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며 “이어도는 조어대 주변수역 및 남중국해 공간과 연계돼 중국의 대양진출과 해군력 활용의 핵심 공간으로 판단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는 반대로 일본에게 중국의 세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선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어도는 단순한 관할권 다툼이 아닌 동북아에서의 두 세력 간의 갈등과 주도권 확보를 위한 핵심 공간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래저래 중국과 일본의 힘자랑에 한국만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이어도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관심으로 이제 이어도는 한·중·일 삼국의 방공식별구역이 됐다.

이와 관련 권 소장은 “이어도는 한·중·일 삼국의 방공식별구역 중첩으로 향후 중국과 일본의 긴장관계에 따라 해당 공역에서의 위기가 보다 제고(提高)될 수 있는 구역”이라며 “이는 중·일의 해양관할권 혹은 도서 영유권과 관련되는 공간은 아니나 오히려 그 외측에서의 힘겨루기로 확대 혹은 시험적 갈등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재의 동북아는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혹은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일본, 미국과의 거대한 동북아 패권 확보의 갈등과 직결된다”며 “우리나라의 정책대응 방향 역시 이들 거대 세력 간 갈등구조를 적절하게 혹은 필요시 우리나라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별도로 수립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중국이 이어도를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키면서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어도를 한국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할 수 있는 ‘62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국의 눈치를 보느라 수수방관했던 것인지, 무관심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은, 만일 중국이 이어도를 중국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이어도’는 과연 한국방공식별구역에 포함돼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어도가 전설의 섬이 되지 않게 지금부터라도 우리 것에 관심을 갖고, 지킬 줄 아는 정부 그리고 국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