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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푸줏간 이야기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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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덕분에 부자가 되고, 런던 시장까지 지낸 휘딩턴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 힐에는 고양이 석상이 있다. ‘딕 휘딩턴의 고양이’라고 알려진 고양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석상이다.

휘딩턴은 1350년 영국의 글로체스터에서 태어나 런던 시장을 네 번이나 지냈으며, 영국 국왕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때 고아가 되어 가난하게 살았는데, 고양이 한 마리를 사서 기른 덕에 부자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딕 휘딩턴의 고양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휘딩턴은 청년이 되자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왔다. 런던은 황금이 넘치는 큰 도시라는 소문을 듣고 성공하기 위해 제 발로 찾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런던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황금이 아니었다. 거리마다 들끓는 쥐들과 혹독한 굶주림이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었다. 휘딩턴은 며칠을 굶고 있다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잠이 들었다. 그 집은 무역업을 하는 휴 피츠워렌이란 상인의 집이었다. 휘딩턴을 발견한 피츠워렌은 그를 가엾게 여겨 자기 집에서 살게 해 주었다. 그의 집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휘딩턴은 다락방에서 살며 잔심부름을 하고 무역업을 배웠다.

그는 다락방에 쥐가 들끓어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쥐들이 침대 위에까지 기어 올라와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휘딩턴은 돈을 모아 고양이 한 마리를 샀다. 그러자 쥐들은 다락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피츠워렌이 집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번에 무역선 한 척을 동방에 보내기로 했소. 여러 가지 상품을 많이 사서 동방으로 가져가면, 그 상품을 판 돈으로 동방의 상품을 사서 가져올 것이오. 동방의 상품들은 유럽에서 열 배로 비싸게 팔리니, 이번 항해에 성공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요. 여러분에게도 무역선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소. 돈이 없으면 아무 물건이라도 좋으니 다 내놓으시오. 그 물건을 팔아서 생긴 이익은 전부 돌려 드리겠소.”

휘딩턴도 무역선에 투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 유일한 재산인 고양이 한 마리를 내놓았다.

피츠워렌의 무역선은 곧 동방을 향해 떠났다. 하지만 항해는 순조롭지 않았다. 풍랑을 만나 파선의 위기를 겪고 나서 어느 낯선 항구에 도착했다. 무역선을 처음 맞이한 그 나라의 왕은 피츠워렌 일행을 궁전으로 초대했다. 궁전 넓은 방에는 일급 요리사가 만든 음식들이 차려졌다. 식탁 앞에 앉은 피츠워렌은 식탁 위에 놓인 긴 막대기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식기도 아닌데 왜 막대기가 사람 수대로 식탁 위에 놓여 있지?’

이런 의문은 잠시 뒤에 풀렸다. 음식 냄새를 맡은 쥐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사람들은 저마다 막대기를 들어 쥐들을 쫓아야 했다. 식사 자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쫓아도 굶주린 쥐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었고,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피츠워렌은 무역선에서 휘딩턴이 맡겼던 고양이를 가져왔다. 고양이는 식사 자리에 다시 나타난 쥐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 죽였다. 쥐들은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났고, 고양이가 무서워 얼씬도 하지 않았다.

왕은 깜짝 놀라며 피츠워렌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동물이 없는데…. 이 동물의 이름이 뭡니까?”

“고양이입니다. 쥐를 잡는 데는 선수이지요.”

“아, 그렇습니까? 고양이를 저희에게 파십시오.”

왕은 고양이 값으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내놓았다.

몇 년 뒤 피츠워렌은 무역 일을 마치고 무사히 런던으로 돌아왔다. 휘딩턴은 피츠워렌이 고양이 판 돈을 고스란히 넘겨줘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 뒤로 휘딩턴은 피츠워렌의 딸과 결혼해 그의 사위가 되었으며, 재산을 불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휘딩턴은 아내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출세하여 런던 시장을 네 번이나 지낸 그였지만, 죽을 때가되자 자신의 재산을 뜻 깊은 일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유언을 남겨 엄청난 재산을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그가 남긴 재산으로 학교・병원 등이 세워졌다. 휘딩턴은 고양이 덕분에 부자가 되었기에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고양이를 자기 가문의 문장으로 삼았으며, 고양이 석상까지 세워 주었다.





“런던탑에 갇혔던 헨리 와이어트 경은
고양이 덕분에 굶주림을 면했다면서요?”


헨리 와이어트 경은 1460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헨리 7세의 총애를 받으며 80세가 넘도록 부귀를 누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리처드 3세 때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를 왕으로 모시려는 거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와이어트는 독방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감옥에서는 충분한 음식을 주지 않았기에 늘 배가 고팠다.

어느 날 그의 독방 창문 쇠창살 사이로 고양이 한 마리가 숨어 들어왔다. 외로웠던 와이어트는 고양이를 무척 귀여워했다. 와이어트와 친해진 고양이는 그를 위해 날마다 비둘기를 잡아다 주었다. 와이어트는 이 비둘기를 친한 간수에게 넘겨 요리를 부탁했고, 고양이 덕분에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와이어트의 감옥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리처드 3세가 헨리 7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영국의 메이드스톤에 있는 세인트 메리 앤드 올 세인츠 교회에는 와이어트 기념 석상이 있다. 거기에는 와이어트에 대해 소개하면서 “리처드 3세 때 런던탑에 갇혀 고문 받았던 사람으로, 고양이 덕분에 목숨을 이어갔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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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휘딩턴 가문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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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우편 배달은 푸줏간에서 시작되었다?


중세에 독일 사람들은 소・말・돼지・양고기를 많이 먹었다. 1397년 베를린에 사는 상류층 사람들은 하루 평균 3파운드 이상의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도시와 농촌할 것 없이 돼지・소 등의 가축을 기르는 집이 많았다. 각 가정에서는 가을이 되면 일제히 가축을 잡아 겨울에 먹을 고기를 소금에 절여 저장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만으로는 고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 각 도시의 시장에는 푸줏간이 있었다. 푸줏간에서는 판매대에 소나 양의 그림을 그려 넣고 소・돼지・양 등의 고기를 팔았다.

푸줏간에는 자기들이 기른 가축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푸줏간 주인은 이들에게서 가축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기 수요를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차를 타고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축을 사들였다. 2~3일에 한 번씩 거의 정기적으로 농촌 마을을 순례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농촌 사람들에게 도시로 우편을 배달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 일을 계속맡다 보니 우편 배달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일이 되었다. 나중에는 푸줏간 상인 조합과 각 도시 간에 우편배달 계약을 맺어 우편 배달 업무를 도맡아 했다.

푸줏간 주인은 마을에 도착하면 반드시 나팔을 불었다. 이 나팔은 우편의 상징물이 되어 오늘날 독일에서는 우체국 마크로 사용되고 있다.

푸줏간 주인은 마차를 이용해 가축을 실어 나를 때 우편물을 얹어 함께 배달했다. 그런데 15세기에 와서 독일에는 우편물만 전문적으로 배달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독일로 이주해 온 이탈리아의 귀족 프란츠 탁시스였다. 탁시스는 우편 사업에 뛰어들어 1만 필이 넘는 말과 마차를 마련하여 우편 배달을 시작했다.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네덜란드・에스파냐 등 유럽 전역을 연결하여 활발하게 영업을 했다.

빨간 마차가 상징인 ‘탁시스 우편’은 유럽의 우편망을 손안에 넣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에게 우편 사업의 독점과 세습의 특권을 부여받아,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까지 진출했다. 2만여 명에 이르는 배달원을 동원해 빠르고도 정확한 우편 업무를 수행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탁시스 우편’은 후손들에 의해 계속 운영되어 300년 넘게 우편 사업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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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우체국 상징물


 

“우표는 언제 처음 생겼나요?”


1840년의 어느 날 영국의 우체국 직원 로렌드 힐은 우편배달부와 시민이 다투는 광경을 보았다. 그때는 우편 요금이 후불제였는데, 편지를 받은 시민이 우편 요금을 내기 싫어 편지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당시엔 우편 요금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벌어졌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우편 요금을 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로렌드 힐은 이런 생각이 들어 우편 요금 선불제를 영국 정부에 제의했다. 영국 체신부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1840년 5월 6일 세계 최초로 우표를 발행했다. 1페니짜리로, 빅토리아 여왕의 옆모습을 담은 우표인 ‘페니블랙’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우표가 마음에 들어 60년 동안 사용하게 했다. 1페니짜리 우표 한 장만 있으면 14그램 이하 우편물은 영국 어디든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선불용 우표이기 때문에 수취를 거부하는 일도 없었다.

로렌드 힐은 이 우표를 제안한 공을 인정받아 빅토리아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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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창주문학상, 소천문학상 등 수상
지은 책으로 <엉뚱 별난 한국사>,
<엉뚱 별난 세계사>, <2000년 서
울 이야기>, <세계사로 배우는 법
이야기> 등과 시집 <매미가 벗어
놓은 여름>, <햇빛 잘잘 끓는 날>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