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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아름다움이

결합된 석조문화Ⅱ


글, 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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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청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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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홍예교
 


석교(石橋)는 계곡이나 개천에 돌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다리가 무너지지 않게 정교한 건축기술을 동원하고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는 형태로 축조했다. 일반적으로 교각을 세워서 평면으로 다리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안전성이 있고 건축 조형미를 갖춘 아치형 홍예교를 많이 선호하였다. 사찰에 많이 있는 홍예교 중에서 금산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있는 홍예교가 주변 경관과 어울려 가장 멋있는 다리이다.

불국정토인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도 아름다운 계단식 석조 돌다리이다. 이 다리의 중심부에는 기다란 장대석이 중간에 설치되어 있어 아래 계단이 청운교이고 위의 계단이 백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의 아래는 홍예로 다리를 받치는 형상인데 실제로 구품연지로 흘러드는 물이 청운교 홍예 아래로 흘렀다고 한다.

백운교의 홍예는 다리 밑으로 사람이 통행하도록 만든 구조라고 한다. 화강암을 나무처럼 둥글게 다듬은 장대한 다리 난간은 부드러움을 주고 있으며 3단으로 쌓은 석축과 함께 장중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어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에 이끌려 불국세계로 들어가게끔 만들었다. 일반인이 보아도 아름다운 다보탑을 만든 석공들이 다리에도 한껏 멋을 부려 만들어 놓아 올라갈 때 불심이 저절로 일어나 다보탑과 석가탑에 경배하도록 한 의도가 엿
보인다.

나주와 함평의 경계에 있는 함평 고막천 석교는 일명 ‘똑다리’ 또는 ‘떡다리’라고 불리고 있는데 전체 길이 20 , 너비 3 , 높이 2.1 의 고려시대 석조다리이다. 이 다리는 삼국시대 목조다리 양식을 석조형태로 바꾼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로 만든 다리이다. 마치 나무를 베어내듯 자유롭게 돌을 자르고 짜 맞춘 솜씨가 돋보이는 이 다리는 현재 석조다리로서는 유일하게 보물 제13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원종 14(1273)년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말 ‘동학농민혁명’때 이 다리 근처의 고막포(古幕浦)에 집결한 농민군과 관군이 이 다리 위에서 전투를 벌여 다리 위에 수많은 농민군들의 피를 흘린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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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 고막천 석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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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안양시 만안교, 우)함평 석교 노면
 



이 다리의 건조 방식을 살펴보면 좀 투박해 보이면서도 멋 부리지 않은 옛날식 그대로의 운치가 있다.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은 화강암의 석재 4~5개를 포개어 교각을 만들고 네모난 돌을 한두 개 받쳐 굄돌로 삼았다. 그 위에 다시 시렁돌을 올렸는데 이 돌은 노면보다 양쪽으로 50㎝ 가량 튀어나와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다리의 날개처럼 보인다. 교각과 교각 사이 위에는 3개의 판석을 노면(路面) 안쪽으로 ‘└’ 과 ‘┴’ 형태로 판석을 놓게끔 가공한 길고 넙적한 판석 3개를 나란히 얹어 노면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 3개의 판석 사이에 6개의 작은 판석을 가로로 놓아 평평한 노면을 만든 것이 목조건물에 사용되는 과학적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매우 독창적인 기술이다.

과학 기술이 바탕이 된 우아한 석조 다리, 기술과 정성이 묻어나는 시골 마을의 돌담길 등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석조문화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전통 문화의 단절과 해방 후 무분별하게 사용한 시멘트와 대리석이 아름다운 전통의 석조문화를 대체했다.

현재 시멘트로 건축한 볼품없는 건축들만 도시와 지방에 널려있고 전통 석조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은 필자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민족은 아름다움과 민족의 긍지를 갖고 있는 전통 석조문화를 사랑하고 보전하며, 널리 보급하여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