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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역사와

뉴질랜드의 목욕 문화


글.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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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기본은 잘 씻는 데 있다. 먼지, 세균,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인류가 오랫동안 지속 발전시켜 온 목욕 문화가 있다. 목욕은 휴식과 청결을 동반한다. 목욕탕에는 입욕(入浴)할 수 있는 욕조가 있는데, 따뜻한 물에 장시간 몸을 담가 피로를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목욕의 역할은 치유와 생기의 힘을 불어넣어준다.

기원전 3세기 시라쿠사의 왕인 히에론 2세는 평소 의심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쓰는 왕관이 100% 금으로 만든 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에게 그 진위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어느 날 휴식을 하고자 목욕을 하기로 한다. 욕조에 물을 준비한 그는 욕조에 발을 담그자 물이 넘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기쁜 나머지 옷도 걸치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오면서 “유레카(Eureka, 발견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목욕에 대한 일화다. 목욕의 힘이 훗날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계기가 됐다.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목욕은 신성한 행위였다. 특히 로마에는 온천이 발달했는데, 이는 화산국가이기 때문이었다. 또 공중목욕탕도 발달돼 ‘테르마이’라는 스파식의 목욕탕과 ‘발네움’이라는 동네목욕탕이 많았다. 목욕은 로마인은 물론 유럽의 일상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목욕에 심취한 로마인들은 1세기부터 영국에 원정까지 갈 정도였다. 그들이 간 곳은 훗날 유명한 온천도시로 등극하게 된다. ‘바스(Bath)’라는 도시다. ‘바스’란 ‘목욕’이란 어원에서 탄생된 지역명이다. 14세기 초까지 영국 런던에는 약 20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약 20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목욕 문화에 대한 반감을 사게 했다. 흑사병 발병 이유가 좋지 않은 공기를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것이 위험한 행동임을 지적했다. 열과 물에 의해 피부의 모공이 열리면서 해로운 증기가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그런 연유로 감염병이 있을 때마다 목욕탕에 가지 말것과 목욕을 하지 말라는 강력한 제재를 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이 목욕을 자제할 것을 강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목욕을 하면 인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없다고 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감염 보호막을 형성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왕과 왕비를 비롯해 전 국민이 목욕을 하지 않았다. 황당한 일이다. 목욕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왕과 왕비는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으로 대신했다. 루이 14세를 보자. 그는 수시로 사교 클럽에 나가 사람들과 춤을 추기도 했으며, 펜싱을 좋아해 열심히 연습을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씻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자신이 깨끗하다고 했다. 씻지 않은 대신 옷을 자주 세탁했으며, 세탁한 옷을 하루에 세 차례나 갈아입었다.

뉴질랜드는 온천수를 함유한 스파(spa) 시설이 있다. 일부 지역의 지열 활동이 활발하다. 그래서 진흙이 끓어오르고 땅에서 증기가 솟아오르는 관계로 진흙 온천이 있다. 마오리족이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것은 약 800년 전이었다. 그들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유황 온천을 발견해 요리와 목욕에 온천을 이용했다. 마오리족 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는데 전장에서 다치면 온천과 머드로 치유했다. 염증 치유와 피부에 특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온천을 이용할 때 누구도 비누를 준비하지 않는다. 온천물이 천연 소다수이기 때문이다. 물이 미끈거려 한참을 온천탕 속에 있으면 비눗물에 불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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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루아는 오클랜드의 남동쪽 약 200㎞ 지점의 로터루아호(湖) 남서 끝에 위치하며 온천이 많아 관광·휴양도시로 발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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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로터루아 인근의 한 머드풀
 

어느 추운 겨울 날 필자가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 겸 해서 숙소로 들어가기 전 훈훈한 대중목욕탕이 필요했다. 뿌연 수증기가 있는 안개탕, 뜨끈한 열탕, 따뜻한 온탕 등이 있는 목욕탕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뉴질랜드에는 대중사우나라는 개념이 없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숙소를 예약한 곳은 꽤 큰 롯지(Lodge)였다. 외관이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와 어우러져 귀족적이었다. 내부가 넓어서 개인 사우나 시설 또는 대중을 위한 사우나 시설을 찾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웠다. 뉴질랜드에는 한국의 대중목욕탕 같은 건물이 없다. 이는 대중목욕 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수질이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수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뉴질랜드인들은 어떻게 씻을까. 샤워문화다. 대부분의 가정집 욕실에는 샤워부스가 설치돼 있다. 물론 일부 가정집에서 욕조와 샤워부스가 함께 설치된 곳도 있다. 목욕 시설이 없으니 탕에 들어가는 문화도 발달돼 있지 않다. 따라서 때를 미는 문화도 없다.

뉴질랜드인들은 공중목욕탕이 없는 데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에 온천이나 체육 시설이 있는 곳에 마련된 사우나를 이용한다. 이때 주의사항이 있다. 사우나를 이용할 때 탈의실에서 반드시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이곳 사우나실은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 구분이 돼 타월만 걸치는 한국의 사우나와 판이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 차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