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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뉴질랜드의

병원 문화


글, 사진.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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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저는 공포 영화를 좋아해요.” 환자, 간호사 그리고 병원 직원이 모여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러 온 간호사가 차(tea) 또는 커피를 제공하러 온 병원 직원과 함께 한 병실에서 만났다.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마치 특별한 친밀도 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느끼는 듯 했다. 이러한 현상은 뉴질랜드 병원의 일반병실에서 늘 이뤄지는 문화다. 구성원을 통합하여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주는 일만큼 희망적이고 값진 일이 어디있을까. 병원의 역할과 기능은 오로지 24시간 환자 치료를 위한 최적의 물적, 인적 환경뿐만 아니라 심리적·정신적 환경 등을 제공함에 있다.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는 새벽 2시, 3시에도 혈압을 체크하기도 한다. 간호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느냐에 따라 치료도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병원의 식문화는 좀 특이하다. 급한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응급실로 들어간다. 응급처치를 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자의 상태가 차츰 나아진다. 간호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묻는다. “커피 또는 차를 드릴까요? 아니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라도 드릴까요?” 보통 한국에서는 환자에게는 물을 마시도록 하는데, 뉴질랜드에서는 커피를 마시도록 하는 문화가 놀랍다. 일반 병실에서의 식문화는 어떤가. 전통적으로 뉴질랜드는 쌀을 주식으로 밥을 먹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을 유입한 결과, 밥을 주식하는 민족, 빵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 그리고 육식과 채식이 혼재돼 있다.

필자가 며칠 동안 뉴질랜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식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와서 식사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메인 메뉴를 선택하라고 한다. 밥이 포함된 메뉴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하는 메뉴를 아무리 들어봐도 밥이 포함돼 있는 것을 듣지 못했다. 세계화 시대에 이럴 수가…. 그 직원은 밥이 포함된 식사는 없다고 했다. 제공된 식사는 주로 감자, 호박, 당근, 호박죽, 버섯죽, 삶은 완두콩, 옥수수, 소고기, 닭고기 등이었다. 퇴원하는 날까지 한 번도 밥이 제공되지 않았다. 이러한 식단은 환자들의 상황을 고려한 저염식인 데다가 기본식단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담당 직원이 커피, 우유, 설탕, 컵 등을 얹은 트롤리를 끌고 다니면서 각 병실마다 배달한다. 환자 개개인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마실 것인지를 묻는다. “커피 또는 차 가운데서 어느 것을 드시겠습니까?” “커피는 블랙을 원합니까. 아니면 우유 또는 설탕은 얼마나 넣어야 됩니까?”라고 반드시 물어본 후, 이를 만들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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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병원에서 제공되는 식사
 

이렇듯 환자 개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자극성이 있는 커피를 권하지 않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뉴질랜드는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대부분의 환자가 커피를 마신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설령 환자가 수술을 할 경우라도 예외가 거의 없다. 수술 전, 수술 직후 바로 커피를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며 원할 경우 바로 제공된다. 물론 병실에는 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이 환자 개개인에게 제공된다. 이 물은 약을 먹을 때 또는 갈증을 느낄 때 먹으라는 의미이다.

필자는 병원에 수건, 치약, 칫솔 등을 사기 위해 판매점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더니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한 후 1분도 지나지 않아 필요한 모든 것을 갖다 주는 게 아닌가. 환자들이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비하고 있음에 배려 문화란 어떠한 것인지를 실감케 했다. 물품 값을 지불하려는데 모두 무료라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타월이 진열돼 있어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한 번도 병원비 중간 정산을 알려주지 않았다.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퇴원할 때 접수비를 포함하여 전체 병원비를 알려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퇴원할 때 간호사가 처방전과 운동요법 등 몇 가지 자료만을 줬다. 어디에서 병원비를 정산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뉴질랜드 시민권자냐고 물었다. 시민권자는 아니지만 영주권자라고 이야기를 하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료”라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부터 케어, 입원까지 받았는데 이 모든 게 무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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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뉴질랜드에서는 국공립병원의 접수비, 입원, 진료비 등이 모두 무료다. 이러한 엄청난 재원 마련이 어디서 이뤄지는가. 뉴질랜드 시민권자, 영주권자들이 내는 엄청난 세금에 기인하고 있다.

뉴질랜드 병원의 또 색다른 면을 보자. 필자가 입원한 후 이튿날 아침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옆 침대에 있던 뉴질랜드 국적의 환자가 간호사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수술 날짜와 퇴원 날짜를 정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만이 가득했다. 간호사의 몇 차례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 환자는 옷을 갈아입더니 퇴원한다면서 나가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놀랍게도 병원 직원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이 위협을 가하는 행위가 뉴질랜드 전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환자는 직원에게 가위를 들고 위협한 사례도 있다. 병원이 존중받기보다는 폭력적인 공격에 노출돼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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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병원의 이동식 판매대. 병실마다 끌고 다니며 신문과 잡지 초콜릿 등을 판매한다.
 

뉴질랜드 의사협회 회장인 파월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2018년 6월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면회를 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됐다. 병원 복도에 술에 취한 듯 오가며 걷는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병원 직원과 환자들을 보호하고자 그 남성에게 밖에 나가서 걸을 것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환자는 온갖 욕설을 하는 등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현장에 있었던 간호사와 직원들이 여러번 제지도 했지만 그 남성이 워낙 거칠게 나와서 제지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사건들이 모든 병동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심각하다.

뉴질랜드 병원은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헌신적인 직원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관용을 베풀 수 없다. 그 일환으로 경찰관 배치를 고려하고 있는가 하면, 비상용 알람 기기가 제공되고 있다. 아울러 응급환자를 호송하기 이전에 폭력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을 사전에 응급실로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개인주의와 방종이 심화되면서 정신적으로 미약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헌신은 상호 교감과 이해라는 공통기반 위에서 이뤄진다. 늘 존경, 감사, 자신감, 자긍심으로 가득 찬 뉴질랜드 병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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