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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나오 이슬람 자치정부 수립 2주년

필리핀 민다나오 평화의 주역

한국인 ‘HWPL 이만희 대표’


글. 송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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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5월 25일 필리핀 민다나오 마긴다나오주 블루안 체육관에서 ‘세계평화선언 2주년 행사’가 열린 가운데 반군을 포함한 이슬람 가톨릭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군 주요지도자 등이 대거 참여해 민다나오의 평화 유지와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HWPL 이만희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평화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분쟁지역 민다나오
“민다나오에 평화오면 세계평화”
이만희 대표, 2014년 현지 방문
가톨릭-이슬람 평화협정 이끌어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도 못한 일”
“이만희 대표 진정성이 이룬 기적”
민다나오, HWPL평화기념비 세워
2018년 SBS일요다큐팀 현지 확인


지난 6월 16일 북한이 개성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 북한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무력도발을 예고하는 담화를 발표한 지 사흘만이었다.

북한의 행보는 ‘정치적 평화협상’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더불어 정치와 이익을 떠나 ‘아래로부터의 평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일깨웠다.

오는 8월 6일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이슬람자치정부가 수립된 지 2주년 되는 날이다. 민다나오 이슬람 주민의 숙원이던 자치정부 수립 배경에 한국인 평화운동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14년 1월 이역만리 전쟁터를 찾아가 기적처럼 평화를 선물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를 재조명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필리핀 민다나오 주민들에게 ‘평화’란 꿈같은 단어였다. 가톨릭-이슬람 종교분쟁으로 시작된 민다나오 분쟁은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이라는 악명을 떨치며 40년 넘게 이어졌고, 그로 인해 12만 명 이상의 주민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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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이만희 대표가 지난 2014년 1월 24일 총알이 빗발치던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 약 40년간 이어진 가톨릭-이슬람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분쟁으로 무려 12만 명의 주민이 숨진 민다나오는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 지역’으로 꼽혀왔다.
 


‘민다나오에 평화가 오면 지구촌에 평화가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다나오의 평화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있었다. 가톨릭-이슬람 종교갈등으로 시작된 민다나오섬의 40여 년 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주민 12만 명이 목숨을 잃고, 민다나오는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지역으로 악명을 떨쳤다.

필리핀 대통령과 수많은 정치인이 분쟁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중재는 늘 실패로 끝났다. 오랜 분쟁은 현지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가족을 빼앗아갔다.

이만희 대표의 민다나오 방문은 2013년 9월 필리핀 평화순방 시 만난 안토니오 레데스마 카가얀드오로 가톨릭 대주교가 이 대표에게 민다나오 분쟁 종식에 나서 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2012년부터 “지구촌 전쟁종식과 평화를 이루라”는 천명을 받고 세계평화 순방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민다나오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였다. 84세라는 고령,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지역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이 평화를 위해 와 달라는 데 뿌리쳐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국경, 인종, 종교를 넘어 이역만리 전쟁터로 향했다.

민다나오 분쟁의 본질이 가톨릭-이슬람 간 종교분쟁임을 간파한 이 대표는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제너럴 산토스에서 민다나오 지역 처음으로 각 종단과 민다나오 주립대 학생, 국제청년단체 회원 등 1000여 명과 평화걷기대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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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사)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대표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필리핀 분쟁지역 중 하나인 잠보앙가시에서 1만 2000여 명이 참여하는
평화걷기대회를 이뤄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사진제공: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걷기대회를 마친 후 이 대표는 제너럴 산토스 시내 호텔에 모인 가톨릭-이슬람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청년단체, 대학교수 등 참석자들에게 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표는 오랜 세월 서로의 말과 종교를 빌미로 분쟁을 조장한 종교지도자들을 강하게 질타하며 “신의 뜻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석자들에게 “평화를 원하는지, 전쟁을 원하는지” 묻고 평화를 원한다면 손을 들도록 했다. 참석자 전원이 손을 들자 이 대표는 “그렇다면 평화협약서에 서명하라”며 현장에 참석한 가톨릭-이슬람 대표를 앞으로 불렀다. 즉석에서 이뤄진 평화 협정식엔 가톨릭 대표로 페르난도 카펠라(Fernando R. Capalla) 전 대주교, 이슬람 대표로 이스마엘 망구다다투(Esmael G.Mangudadatu)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 마긴 다나오 주지사가 참석했으며, 양측은 전쟁종식과 세계평화 협약에 합의했다.

대통령도 해결 못했던 민다나오 유혈분쟁 필리핀 대통령도 법도 교황도 하지 못했던 민다나오 유혈분쟁 종식이 한국인 평화운동가에 의해 기적처럼 이뤄진 현장은 필리핀 국영방송 PTV와 민영방송 등을 통해 보도됐다.

이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평화협정은 바로 다음날인 1월 25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필리핀 정부 간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그해 5월 필리핀 의회에서 이슬람 자치정부법, 이른바 방사모로법이 통과됐고 4년만인 지난 2018년 8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 법안에 최종 서명하면서 내전은 사실상 완전히 종식됐다. 이 대표의 중재로 실현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확실한 결과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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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나오섬 Zamboanga(잠보앙가) 시티에서 일어난 유혈 분쟁 현장
 


2014년 1월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성사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전했던 필리핀 PTV 엘리자베스 카친 기자는 기자와의 두 차례 인터뷰에서 극적인 평화 성과의 배경으로 이 대표의 ‘평화를 향한 진정성’을 꼽은바 있다.

카친 기자는 “이만희 대표와 정치인들은 달랐다. 이 대표는 오직 평화를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민다나오까지 이역만리를 왔다”고 했다. 이어 “분쟁에 지친 민다나오 주민들은 정치인과 이 대표의 차이를 금세 알았다. ‘평화’를 향한 이 대표의 진정성이 그들을 움직였다”면서 “이만희 대표이고, HWPL이었기에 평화협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 언론은 “그동안 수많은 평화협약을 통해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으나 또 다른 분쟁은 늘 있어 왔다. 이를 위해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열매를 맺은 것은 한국에 본부를 둔 HWPL”이라고 보도했다.

이만희 대표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번 평화협정은 개인을 넘어 한국의 위상을 높인 일”이라며 “한국인이 이룬 평화행보에 세계가 놀랐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종교를 초월한 평화운동이 반세기 동안 피를 뿌리던 분쟁지역에 평화를 가져왔다”며 “라모스 필리핀 전 대통령께서는 ‘본인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민다나오에 세워진 ‘HWPL 평화기념비’ 2015년 1월 민다나오 마긴다나오주는 이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평화기념비’를 세웠다. 현장에는 반군을 포함한 이슬람 가톨릭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군 주요지도자 등이 대거 참여해 민다나오의 평화 유지와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이뤄진 1월 24일을 ‘민다나오 평화협정 기념일’로 5월 25일을 ‘HWPL DAY’로 제정했다.

2015년 9월 HWPL이 주최한 만국회의 1주년 행사에 참석한 알 하즈 무라드 이브라힘 모로이슬람해방군(MILF) 대표는 당시 인터뷰에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주지사인 망구다 다투를 통해 이만희 대표가 이룬 이슬람-가톨릭 지도자 간 평화협정 소식을 들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그는 “우리는 18년간이나 정부군과 협상을 해오고 있었지만 타결을 못한 상태였다. 2014년 1월 이만희 대표가 민다나오 마긴다나오에서 이룬 이슬람-가톨릭 지도자 간 민간 평화협정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필리핀 정부가 공식 협정을 이루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 많은 사람이 이를 믿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2016년 1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쿠다랏에도 ‘HWPL 평화기념비’가 세워졌다. 민다나오 평화가 HWPL을 통해 이뤄졌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2018년 10월 7일 오전 SBS는 일요다큐멘터리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을 통해 2014년 평화협정 이후 평화로워진 민다나오 현지 소식을 전했다. “총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줄 알았다”던 현지인들이 총을 버리고 가톨릭-이슬람 주민 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행복해했다.

이만희 대표는 수많은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나에게 진짜 상(賞)은 평화”라고 언급한 바있다. 그가 원하는 진짜 상이 지구촌 가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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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월 24일 HWPL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필리핀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주둔지 내에서 2016년 1월 24일 열린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에서 두 번째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이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유엔공보국(DPI)에 등록된 민간 평화단체다. ‘하늘의 문화로 지구촌을 평화세계로 변화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립자 이만희 대표는 6・25 참전용사로 “전쟁 없는 평화세계를 이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자”며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해법으로 ‘전쟁종식 국제법 제정’과 ‘종교대통합’을 주창했다. 이를 위해 국경, 인종, 종교, 문화를 초월해 전 세계 170여 개 지부를 설립하고 활동하고 있다.

HWPL에는 협력단체인 ㈔세계여성평화그룹(IWPG)과 산하단체인 국제청년평화그룹(IPYG)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2014년 1월 24일 아시아 최대 유혈분쟁이던 ‘필리핀 민다나오 유혈분쟁 종식’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전쟁종식 국제법 평화 선언문(DPCW)’ 10조 38항을 전 세계에 공표하고 이를 유엔에 상정해 전쟁종식 국제법화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 대표는 지구촌을 31차 왕래하며 세계 각국의 각계 요인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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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희 (사)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대표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필리핀 잠보앙가 시청에서 열린 평화 걷기대회의 의미와 출발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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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이만희 (사)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와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HED) 관계자가
지난 2018년 1월 23일 ‘평화교육’ MOA를 맺고 있다. 우)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시립 박물관 HWPL 평화박물관 지정(2016년)
 


필리핀 민다나오 내전
시작과 끝

“민다나오에 평화가 오면 세계평화가 온다.”민다나오 주민들에게 총성과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 가톨릭-이슬람 갈등으로 12만 명 넘는 주민이 숨진 필리핀의 민다나오(Mindanao)는 아시아 최대 유혈 분쟁지역으로 꼽혀왔다. 필리핀에서 루손섬 다음으로 큰 섬이자 인구 220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민다나오에는 필리핀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이슬람교도 대부분이 살고 있다. 이에 민다나오 자체로만 보면 가톨릭교도(63%) 다음으로 이슬람교도(32%)가 많다. 개신교도는 5%이다.

필리핀에 이슬람교가 전파된 것은 14세기로, 남부 말레이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됐다. 이슬람교는 1380년경 민다나오를 시작으로 필리핀 각지에 퍼지긴 했으나 16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의 가톨릭화 정책으로 현재는 민다나오 지역에서만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톨릭교는 327년간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전파됐으며, 17세기 중반부터 주민들 사이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개신교의 경우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부터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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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다나오섬 Zamboanga(잠보앙가) 시티에서 일어난 유혈 분쟁 현장, 하)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의 마라위에 대한 무슬림 무장반군의 포위 공격 사흘 후인 25일 마라위를 탈출
하려는 주민들의 대피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날 필리핀군을 태운 탱크들이 속속 마라위
로 진입하면서 총성과 폭발음이 계속되고 있다. 2017.5.25
 


민다나오에서 종교 갈등이 심해진 것은 이슬람 ‘모로인(‘무어인’의 의미로 무슬림의 것)’이 다수가 가톨릭인 필리핀에서 분리 독립하겠다는 입장을 무력으로 요구하면서부터다.

1970년대 초 필리핀대학 정치학 강사 출신의 누르 미수아리는 모로민족해방전선(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MNLF)을 결성, 민다나오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개시했다. 이후 MNLF 세력간 내분에 따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 MILF)이 창설되는 등 크게 4개의 이슬람군이 생겼다.

분쟁이 일상인 지역에 지난 2014년 1월 24일 한국인 평화운동가 이만희 HWPL 대표가 찾았다. 당시 나이 84세였던 그는 목숨을 걸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평화를 위해 갔다. 그리고 가톨릭-이슬람 대표를 세미나 현장에서 불러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양측은 각 지도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바로 다음날 정부군과 이슬람군은 이슬람 자치주 인정과 4개의 부속문서에 합의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3월에 공식 평화협정이 추가적으로 이뤄졌고, 지속적으로 세부 논의를 거쳐 지난 2018년 8월 6일 두테르테 대통령이 민다나오에 이슬람 자치정부를 승인하는 ‘방사모로법’에 최종 서명했다.

2014년 이만희 대표를 통해 갑자기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이뤄진 이후 한국에서는 ‘필리핀 정부도 못했던 일이었다’는 점을들어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현지 주민이나 언론은 “HWPL 이만희 대표를 통해 가톨릭-이슬람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민다나오 주민들이 평화를 얘기하며 걷는 기적이 일어났고, 민다나오 전역에 빠르게 평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평했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HWPL 평화기념비를 평화협정이 이뤄진 마긴다나오주와 이슬람군 주둔지에 세워 이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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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지난 2018년 10월 7일 오전 방영된 SBS 일요다큐멘터리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에서 현지 주민이 민다나오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기념해 세워진 HWPL 평화기념비를 배경으로 얘기하고 있다. 우)2018년 8월 6일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정부 법안에 최종 승인했다. 이날 두테르테 대통령은 알 하즈 무라드 이브라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대표에게 승인서를 전달했다. 사진은 2015년 9월 HWPL이 주최한만국회의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브라힘 대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