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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三門) 너머 한걸음,

영축산 통도사서 하늘을 보다


글. 장수경 사진. 강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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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온 신라시대 고승인 자장율사의 마음은 얼마나 설 을까. 선덕여왕 15(646)년 당나라에서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온 그의 발길은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경남 양산 영축산(영취산)에 멈췄다. 이곳 남쪽 기슭에 지어진 한국의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졌으니 이때부터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장소가 된다. 부처는 과연 무엇을 중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걸까. 싱그러움이 가득한 계절, 탐방팀은 통도사에 담긴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연분홍 꽃물결 넘실거리는 영축산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한 색깔 중 가장 아름다운 색이 있다면 생명력을 주는 연두색이 아닐까. 연두 물결을 입은 영축산은 다른 험준한 산에 뒤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산세가 곱다 할까. 그래서 이 근방을 영남알프스라 하나보다.

양산 통도사 주위로 암자가 즐비해 있다. 극락암에서 백운암 방향으로 거닐면 영축산에 오르는 길이 나온다.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하늘 높이 치솟은 해발 1081 의 영축산. 곳곳에는 길게 뻗은 소나무가 마치 춤추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깊어질수록 하늘도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과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산철쭉인 연달래가 하나둘씩 머리를 내밀고 인사했다. 진달래 지고 난 자리를 대신해서 연이어 피어 연달래라고 불린다. 영축산 정상에 오르니 백운암, 극락암 등 암자들이 다문다문 연이어 보이고 낮은 산 사이로 기와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통도사다.

그럼 영축산과 통도사는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 영축산 혹은 영취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불교를 창시한 석가와 관련 있다. 평소 석가가 설법하던 곳이 인도의 영취산이었다. 이곳 산의 풍모가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다고 하여 영축산(영취산)으로 불렀다. 또 인도의 산과 통한다고 하여 사찰 이름을 통도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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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석가와 인도 영취산에 얽힌 일화가 떠오른다. 석가에게는 10명의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석가께서 영취산에 설법을 하러 오시는데 평소와 다르게 연꽃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의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설법은 안 하시고 연꽃을 들고 지긋이 미소만 짓는 게 아닌가. ‘석가께서 왜 그러실까.’ 모두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제자 가섭만은 달랐다. 석가의 미소에 화답하듯 그는 지긋이 미소 지었다. 여기서 비롯된 말이 있으니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불교적 용어로는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한다.

이 일화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눈에 보이는 산, 돌이 다가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리수(菩提樹)’라는 말이 있다. ‘보리살타’의 준말이 ‘보살’인데, 뭔가를 깨닫고자 탐구·연구하며 득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 고행에서 깨달은 사람이 바로 보리수다. 결국 산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산이 전부가 아니요, 인산인해(人山人海)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모인 곳이 산이 되겠다. 영취산과 통도사도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뜻을 알 때 비로소 석가에게 미소로 화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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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길게 뻗어 올라가는 영축산 소나무
 


지형 그대로 자리한 통도사
영축산이 감싸고 있는 통도사는 불(佛:교주)·법(法:경전)·승(僧:승려)의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삼보(三寶) 사찰 중 불보사찰에 속한다. 석가의 진신사리를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봉안하고 있어서다.

진신사리는 부처의 몸이자 곧 법이다. 법이 이곳에 있으니 승려가 되고 불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금강계단에 와서 반드시 계(戒)를 받아야 한다. 통도사 주위로 둘린 십여 개의 암자는 이곳의 위상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통도사는 주변 산세를 훼손하지 않고 지형대로 지어진 가람배치가 특징이다. 이곳은 금강계단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나뉜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통도사 산문 입구부터 1㎞ 구간은 ‘무풍한송로(無風寒松路)’다. 계곡을 따라 난 길 양옆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가 겹겹이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춤을 추는 듯한 소나무는 고개를 치켜들어야 할 만큼 하늘로 길게 뻗어 있다. 바위틈을 뚫고 나온 소나무도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버텨야만 했을까. 그 강인한 생명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조금 더 길을 걸으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주차장과 산내암자로 들어가는 길이고 산모퉁이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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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일주문
 

통도사의 상징인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만나기 위해서는 삼문(三門)을 통과해야 한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은 수많은 통도사 건축물 중처음 만나는 건물이다. 4개의 기둥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정면 3칸을 이루며 맞배지붕으로 돼 있다. 일주문에 쓰인 ‘영축산통도사’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다. 사찰 입구마다 서 있는 일주문의 속뜻은 무엇일까. 세속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구도자의 길을걷기 위해 경내로 들어서려면 세속과 인연을 끊어야 하는데, 한마음으로 행해야 한다. 이곳이 그 첫 번째 관문이다.

잠시 후 천왕문(天王門)이 모습이 드러냈다. 내부는 중앙에 통로를 내고, 좌우에 거대한 목조 사천왕상이 서 있다.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은 불전을 수호하는 존재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수호하는 네 생물인 네 천사장이 등장한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하나님께 인도하는데, 독수리 곧 천사장의 인도를 받는다. 사천왕도 일주문을 통해 세상 인연을 끊고 구도의 길에 들어온 사람들을 인도한다. 또 신앙인이 잘못된 길을 가면 심판하기도 하고 방해하는 대적과 싸우기도 한다. 사천왕이 든비파, 용과 불씨, 칼, 창과 보탑 역시 이들의 사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세히 발을 보니 사천왕은 선비와 도둑을 밟고 있다. 마치 성경에서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늘이 하나이듯 모든 종교가 하나라고 하지 않던가.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맥상통한 신의 섭리가 담겨 있는 듯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경내의 마지막 문은 불이문(不二門)이다. 이곳은 구도의 길을 가는 신앙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문이다. 이 문은 무슨 뜻일까. 불교의 불(佛)자를 보면 사람인변(亻), 아닐 불(弗)을 사용한다. 사람이 아니라 부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해탈경지에 들어서고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을 불이(不二)라 하고 부처라고 한다. 하늘이 원하는 대로 영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순간 비로소 완전함을 입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신의 반열, 불교적 용어로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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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천왕문에 설치된 ‘사천왕상’
 


대웅전과 적멸보궁, 금강계단
불이문을 지나면 비로소 극락 천국에 들어서게 된다. 저 멀리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눈에들어왔다. 상로전의 주 건물인 통도사 대웅전(국보 제290호)이다.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인조 23)년 우운스님이 중건했다. 대웅전의 규모는 양측 면이 5칸, 정면이 3칸의 평면이다. 지붕의 형태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각 면의 현판은 달리 걸려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적혀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금강계단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석가모니의 신체를 모셔 놓았기에 불상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한다. 대웅전 안에는 통유리가 있는데 금강계단이 바라보인다. 이 때문에 대웅전은 참배의 기능만 갖고 있다.

대웅전의 내부 천정은 우물천정으로 돼 있고 이들은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해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우아하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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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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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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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단
 

대웅전에 닿아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은 통도사 경내에 현존하는 석조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계단(金剛)’이라는 것은 계율(戒律)을 수여하는 의식을 행하기 위한 제단이다.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의미한다. 그 무엇도 다이아몬드를 깨뜨릴 수 없다. 오히려 다이아몬드가 다른 성질을 가루로 만든다. 기독교 경서인 <성경>에 보면 시편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고 했다. 다니엘 선지자는 뜨인돌이 우상을 부수고 하늘의 사상으로 온 세상을 새롭게 한다고 했다. 결국 유불선 모든 종교가 바라는 참뜻이 여기에 담긴 것이다.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 곧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이 시대에서 진정으로 알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세는 하늘의 것을 보고 이 땅에 장막을 지었고, 석가는 생로병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자처했다.

즉 만물 가운데 담긴 신의 뜻을 깨닫고자 한것이다. 모든 종교가 하나일 것 같으면 영축산과 통도사가 품고 있는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힘써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비로소 하늘이 허락한 참 신앙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두타(頭陀)의 길을 행한 후, 하늘이 우리에게 보여준 만물을 통해 또 다른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때가 눈앞에 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