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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마루대문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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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동해의 산과 바다 그리고 철조망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가 짙다
 
여름을 미리 만났다. 잘게 맺히는 땀방울, 짙어지는 잎사귀,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새 계절을 느낀다.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발끝에서부터 얻은 쉼은 마음의 위로까지 이어진다. 남북한의 경계를 품고 있는 강원도. 산과 바다를 넋 놓고 바라보다 그들의 일부인 양 자리하고 있는 철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6월을 앞두고,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그래서 더 향기가 짙다.

글 박미혜 사진 서효심 영상 임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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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에 이르려면 고행의 쓴맛부터
두타산·무릉계곡·삼화사·쌍폭포

 
우리나라는 예부터 신령님이 ‘산’에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산 이름마다 오묘하고 영적이며 종교적인 뜻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해시와 삼척시 사이에 있는 두타산과 청옥산 역시 그러하다. 두타(頭陀)란 ‘머리를 흔들어 온갖 번뇌와 극심한 고통을 이겨낸다’는 의미이고 더불어 두타행(頭陀
行)이란 ‘번뇌와 고통을 감내한 후 도에 정진한다’는 뜻이다.
 
모두 불교에서 비롯된 말이다. 두타산을 넘어서면 청옥산이 기다리고 있는데 청옥(靑玉)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일곱 보석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 묘사된 천국의 12가지 보석 중에 11번째 기초석이기도 하다. 두타의 고행을 마친 뒤에야 극락 또는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이치를 이 산들은 깨닫게 한다. 산의 형태도 신기하게 이를 대변한다. 두타산은 날렵하고 험준한 바위산이다. 반면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흙산이다. 대조적인 이 두 산 사이에 그 유명한 ‘무릉계곡’이 펼쳐져 있다.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무릉반석, 무릉계곡은 일찍이 명소로 알려졌다. 조선시대 삼척과 강릉을 드나들었을 시인 묵객들이 매끈한 바위에 흥에 넘치는 시구들을 빼곡히 새겨놨다. 그중 조선의 명필 양사언이 썼다고 전해지는 글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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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武陵仙境
너른 암반 샘솟는 바위 中臺泉石
번뇌조차 사라진 골짝 頭陀洞天

 
맑은 음색의 계곡 물소리, 천여 명도 너끈할 만큼 크고 넓게 펼쳐진 바위들을 보고 있으면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고 갔음직하다. 하지만 이곳도 역사의 소용돌이는 피해가지 못했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6·25전쟁 때엔 전쟁터가 되어 무릉계가 온통 핏물과 핏빛으로 변했었다고 전해진다. 너럭바위를 지나 봉긋이 선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두타산의 대표적인 고찰 삼화사가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세워진 절이나 고려를 세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기원하며 중창했다. 그때부터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 하여 삼화사(三和寺)라 불렀다.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가 이곳 삼화사에서 1000권의 불경을 빌려 읽었다고 전해진다.

두타산에는 거대한 암벽과 골짜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무릉계곡의 학소대를 지나면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이 깊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용추폭포와 박달령 두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폭포수가 만나는 쌍폭포. 양 갈래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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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의 별천지 조선,
단군과 발해를 밝히다
‘제왕운기’ 이승휴가 머문 천은사

 
두타산의 동쪽 계곡에는 천은사라는 절이 있다.

고려시대 문신 이승휴(1224~1300)가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 이승휴는 부정이나 비리에 대해 상소를 올리고 간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강직한 성품의 인물이다. 그 때문에 좌천과 파직이 되풀이됐다. 결국 친원 세력의 횡포와 충렬왕의 실정을 비판하다 왕의 미움을 사게 됐고, 외가가 있던 두타산 자락으로 내려와 지금의 천은사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왕조를 뒤로하고 은둔에 들어갔던 그가 침묵을 깨고 ‘제왕운기’라는 대서사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충의(忠義), 다시 고려 왕조를 위해서 였다. 대몽항쟁기에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고 본조의 역사뿐 아니라 중국 역대 왕국의 흥망성쇠 까지도 서술해 왕의 선정을 유도하고자 했다. 제왕운기가 당대 전해져온 역사서와 가장 남다른 점은 중화주의적인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단군’이 연맹왕국 및 삼국의 공동시조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 또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발해사를 우리 역사 속에 포함시켰다는 점 등이다.

요동에 별천지 있으니
중조와 확연히 구분되며
큰 파도 넓은 바다가 삼면을 둘러쌌고
북녘에 대륙 있어 실같이 가늘게 이어진 땅,
가운데 중방천리 여기가 조선이라오.
처음에 어느 뉘 나라를 세웠던고
그 이름 석제의 손 단군님이지.
요와 같은 해 무진년에 나라 세워

-<제왕운기> 하권 시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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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보다 빛나는 경치, 절벽 위의 죽서루

대관령의 동쪽 관동지방에는 예로부터 명승지 8군데를 꼽아 관동팔경이라 불렀다. 그 중 제1경이자, 제일 큰 누정이며 가장 오래된 건물이 죽서루다. 다른 곳은 모두 해변을 끼고 있는데 죽서루는 바다가 아닌 천(川)을 끼고서도 걸출한 기암 위에 서서 당당하게 제1경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누 아래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고 누각이 죽장사의 서쪽에 있어서 죽서라고 부르던 것에 기인됐다고 한다.
 
대관령의 동쪽 관동지방에는 예로부터 명승지 8군데를 꼽아 관동팔경이라 불렀다. 그 중 제1경이자, 제일 큰 누정이며 가장 오래된 건물이 죽서루다. 다른 곳은 모두 해변을 끼고 있는데 죽서루는 바다가 아닌 천(川)을 끼고서도 걸출한 기암 위에 서서 당당하게 제1경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누 아래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고 누각이 죽장사의 서쪽에 있어서 죽서라고 부르던 것에 기인됐다고 한다.
 
죽서루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주춧돌 대신 자연암반과 자연초석을 이용해 기둥을 세웠다는 것. 자연석의 성질을 그대로 살린 돌 위에 길이가 모두 다른 17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면모를 제대로 보려면 누각에서 나와 오십천 맞은편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깎아지른 벼랑과 오십천에 비친 기암들, 서쪽으로 우뚝 솟은 두타산과 태백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한눈에 담아갈 수 있다. 죽서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청풍 한벽루와 더불어 외신이나 지방 수령 등을 영접할 공간으로 쓰였던 향리와 관아의 정자로 대표된다.

죽서루의 동쪽에는 용문이라고 새겨져있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상부에 성혈(性穴)유적이 있다. 성혈이란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 돌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민간 신앙으로 정착돼 득남의 기원처로 바뀌었다. 용문바위의 성혈은 직경 3~4cm 크기로 10개가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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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아간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 촛대바위·토박이만 아는 부남해변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신현림 시인의 시 한자락이다. 바다는 산처럼 정상 정복이나 땀 흘리는 열정을 바칠 수 없는, 특히 여름이 아니고선 그저 바라보는 게 다일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산 못지않게 영감을 주는 자연의 일부다.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나 결코 그 마음이 높은 데 있지 않다. 작은 물줄기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결국엔 깊어진다. 그래서 마음이 넓은 사람을 바다 같다고 한다. 대부분 한여름에 더위를 쫓아낼 요량으로 바다를 찾지만 바다의 진짜 묘미는 한적한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동해바다에는 칭칭 감겨져있는 철조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관광1번지이기도 하지만 최전방의 군사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이 되는 추암 해변이나 삼척 토박이만 안다는 부남해변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남해변은 1년 중에 여름 한철만 민간인에게 개방되는 군사지역으로 개장시기가 아닌 날에는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들 해변에는 군인들의 노고를 짐작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경고문이 있다. ‘초병 인근지역에서 과다한 노출 및 선정적 행위, 경계 병력에게 음식물 제공, 보초선 군사시설 훼손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바다여행은 즐기되, 군인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 철조망이 걷히고 동해가 만들어낸 비경만을 오로지 볼 수 있는 날을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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