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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고향 충남에서

서해의 힘과 멋을 찾다

서산·홍성·태안 탐방기


글, 사진. 이예진, 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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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해변에 있는 할매・할배 바위
 

예로부터 충남은 충절의 고장이라고 불렸다.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들과 명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충남의 서산과 홍성, 태안 일대에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기운을 듬뿍 얻어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겨울동안 움츠려있던 만물들이 어깨를 펴는 춘삼월(春三月). 충남의 아름다움과 기운을 받기 위해 탐방팀은 서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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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
충남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시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가면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국보 제132호인 서산 마애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이름에 있는 ‘마애불(磨崖佛)’은 돌로 된 벽에 새긴 불상이라는 뜻이고, ‘삼존(三尊)’은 세명의 부처를 가리킨다. 우리가 잘 아는 불상의 ‘불(佛)’은 풀어쓰면 ‘사람(人)이 아니다(弗)’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삼존불이란 사람이 아닌 삼신(三神)을 뜻하는 것이며 이것은 민속신앙과 기독교에서도 나타난다. 예로부터 우리 어머니들은 잠자던 만물이 깨어나기 직전인 새벽에 깨끗한 물(정화수)를 떠놓고 삼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또 기독교에서도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신이 있어 우리 삶 구석구석에 이러한 사상들이 담겨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1959년 4월 당시 부여박물관 관장이었던 故 홍사준 관장이 발견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용현리에 조사 나온 홍 관장에게 한 나무꾼이 “저 도장바위에 가면 웃고 있는 산신령이 한 분 계시는데 그 양옆에는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가 앉아있다. 그런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을 볼에 대고 실실 웃으면서 큰 마누라를 약 올리니까 큰 마누라가 허리춤에 양손을 갖다 대고 짱돌을 들고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다.

여기에 나오는 산신령은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이고, 큰 마누라가 제화갈라보살, 작은 마누라가 미륵보살로 본다. 중앙에 있는 본존은 양 옆에 있는 보살상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크게 뜬 눈과 활짝 웃는 미소는 ‘백제의 미소’라 볼 수 있다. 이 미소가 ‘신비한 미소’라 불리는 이유는 빛에 따라 모습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 부분은 두껍게 밑으로 내려갈수록 얇게 새기면서 입체적으로 조각된 삼존불은 석가 여래불의 옷에서 중국풍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너그러운 미소로 중생을 맞이하고 있으니 옛사람들이 산신령이라 부르며 찾아간 이유가 짐작이 된다.

삼존불을 보고 내려가면 도장바위라 불리는 인(印)바위가 있다. 옛날에 신이 바위에 도장을 숨겨놓았다는 인바위는 해미고을 원님이 이 도장을 꺼내기 위해 바위를 떨어뜨리려다가 갑자기 구름이 생기고 천둥번개가 내려치고 소나기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원님은 신들이 바위를 보호함을 알고 두려워하 그만두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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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서산 마애삼존불, 우)인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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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신비한 해안절벽과 코끼리바위
서산시 북쪽에 있는 대산읍 독곶리에 가면 금을 캤던 ‘황금산(黃金山)’이 있다. 원래 항금산(亢金山)이라고 불렸지만 황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라고 불리게 됐다. 높이 129.7 의 황금산은 경사로가 완만해 가볍게 트래킹하기에 좋다. 트래킹코스를 따라 산 뒤쪽으로 가면 몽돌해변이 나오는데 이곳에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몽돌해변에서 코끼리 목 부분을 타고 넘어가면 기암절벽이 나오는데 그 비경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화려하다.

마치 신이 힘차게 조각해놓은 듯한 기암절벽과 바닷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의 코끼리바위가 있는 황금산은 서산9경 중 제7경에 속한다.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득도한 간월암 달빛을 본다는 뜻을 가진 간월암(看月庵)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빛을 보고 득도(得道)를 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간월암은 안면도와 홍성 사이 천수만에 있는 간월도에 아주 작게 새끼 섬처럼 떠있는 곳에 있는 암자다. 이 간월암에 가기 위해서는 때를 잘 맞춰야 하는데
만조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지만 간조때는 육지와 연결하는 길이 나타난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큰 힘이 됐던 무학대사는 어린 시절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득도한 그에게 스승인 나옹스님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며 무학(無學)이라고 지어줬다고 한다. 무학대사 이후 조선의 배불(排佛)정책으로 간월암은 피폐되기도 했지만 1941년 만공대사가 중건했다. 마치 섬 위에 지어진 듯한 이 작은 암자는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가히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깨달았다 할 만큼 대웅전 앞으로는 서해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가슴 속에 있던 걱정도 다 없애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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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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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진남문
 

천주교인들의 아픈 역사, 해미읍성
아름다운 서산에는 아픈 역사도 있다. 서산에 있는 해미읍성은 전북의 고창읍성과 함께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시대 읍성 중 하나다.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미읍성은 조선시대에 충청 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다.

1578년에 이순신이 군관으로 열 달 동안 근무하기도 했던 해미읍성은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의 아픔이 서려있다. 해안가와 가까운 이곳은 선진문물이 빨리 들어오던 곳 중 하나였다. 그러다 충남 덕산에 있던 남연군묘를 오페르트가 도굴하는 사건이 생기면서 해미읍성을 주변으로 한 내포지방의 천주교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600년이 넘도록 해미읍성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다.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이 탱자나무는 박해 당하던 천주교인들이 묶여 고문당하거나 목매달려 죽기도 한 곳이다. 그 아픔을 뒤로한 채 남문인 진남루를 통해 지금의 해미읍성에 들어서면 돌담벼락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충남의 금강산, 용봉산
홍성군과 예산군에 걸쳐져 있는 용봉산(龍鳳山)은 산세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높이는 381 로 낮은 지형에 속하지만 산 전체가 바위의 기이한 절경으로 이뤄져 ‘충남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산을 오르면 바위와 함께 소나무가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곳곳에 있는 바위들은 깎아내린 절벽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절경을 이룬다. 특히 춘삼월의 산은 바위 옆에 살포시 피어난 진달래꽃으로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낮은 산이지만 바위산으로 되어 있어 시작부터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랐다. 용봉사를 가기 전 병풍바위로 올랐다. 가는 암릉길 곳곳에는 시야가 확 트여 있는 곳이 많아 올라야 할 능선을 바라보면서 올랐는데 그 능선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손이 갈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름처럼 병풍같이 세워져 있는 암벽이 위풍당당해 보이기도 했다.

병풍바위를 지나 백제 시대에 지어졌다는 용봉사와 고려 초기의 모습이 보이는 마애석불을 볼 수 있었다. 신체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조각된 마애석불의 얼굴은 마치 용봉산에 잘 올라오고 있느냐고 중생들을 지켜보는 듯 했다. 마애석불을 지나 악귀봉으로 갈수록 산세는 점점 험악해졌다. 하지만 큰 바위 옆으로 살며시 피어난 진달래꽃이나 어떻게 저기서 뿌리를 내렸을까 싶은 아기 소나무 등이 눈에 담겼다. 악귀봉의 한자가 나와 있지 않아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정말 악귀(惡鬼)같이 큰 바위들과 작은 바위들로 길을 가로막았다. 누군가가 저 악귀를 이기고 나면 멋진 천국이 펼쳐질 것이라며 다독였는데 정말 악귀봉 인근이 등산로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악귀봉에서 노적봉, 최고봉에 이르기까지 용봉산의 봉우리들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덕분에 커다랗고 높다란 바위에서는 홍천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눈에 가득 홍천의 시가지를 담고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용봉산의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과연 악귀를 이기고 나니 멋진 천국이 펼쳐졌다.

조선 전기의 문신 정극인은 <상춘곡>에 수려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조물주가 빚어낸 신비로운 재주로 표현했다. 이 세상 천지만물은 이 처럼 조물주, 즉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낸 것이건만 사단 마귀(용)가 마치 제 것인 듯 6000년 동안 주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과연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경에서 봉황(鳳)은 하나님의 나라를, 용(龍)은 사단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는 성경의 기록처럼, 우리네 산수(山水)에는 영적(이면적)인 의미가 숨겨진 경우가 많다. 오늘 오른이 ‘용봉산’ 또한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사단, 마귀인 용이 침노하여 짓밟았지만 결국 그 끝(정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선다는 것.

이는 6000년 동안 이어진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승리함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용봉산에 오르면 스친 생각이다. 최고봉을 찍고 최영 장군 활터 방향으로 내려왔다. 최영 장군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곳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있었다. 최영 장군은 고려개창을 도운 가문 중의 하나인 철원 최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문신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던 최영 장군은 무장으로 나라에 이바지했다. 그는 당시 어지럽던 공민왕 대에 이성계와 함께 북쪽의 홍건적, 남쪽의 왜구를 막아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공민왕 다음인 우왕의 비로 자신의 딸을 들이고 문하시중까지 오르지만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면서 실각하게 된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남긴 최영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용봉산. 이 용봉산의 암릉을 보면서 최영 장군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을까. 용봉산의 기운을 받아 걸출한 홍성의 인물들 용봉산이 있는 홍성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들이 많이 나온 충절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홍주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고려 말기 무장이자 충신이었던 최영 장군과 조선 초기 사육신 중 한 명이었던 성삼문, 홍주의병을 이끌었던 김복한, 두만강 상류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긴 김좌진 장군,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사까지 모두 홍성 출신의 인물들이다. 이들뿐 아니라 예술인들도 많이 나타났는데 판소리의 시조인 최선달과 한국무용의 대가 한성준, 국내보다 국외에서 이름이 더 알려진 이응노 화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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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용봉산 최고봉, 아래)윤봉길 기념관
 


이중 김좌진 장군과 한용운 선사의 생가는 복원되면서 기념관도 함께 건립되어 있어 둘러보기에 좋다.

또 인근 예산은 매헌 윤봉길이 태어나고 자란곳이다. 윤봉길은 1930년 만주로 떠나기 전까지 고향에서 <농민독본(農民讀本)>을 집필하고 ‘부흥원(復興院)’을 조직하는 등 농민계몽·독서회운동과 같은 농촌사회운동에 힘쓰기도 했다.

이밖에도 ‘태평하고 안락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태안(泰安)에 가면 일몰이 아름다운 꽃지 해변과 백화산 기슭에 있는 국보 제307호인 마애삼존불을 볼 수 있다. 태안 안면도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인 꽃지 해변은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꽃지는 오래전부터 주변에 해당화가 많이 피어 있어 ‘꽃이 지천에 피어있다’라는 의미의 ‘꽃지’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꽃지 해변으로 가면 할매·할배 바위를 볼 수 있는데 만조 때는 할매 바위와 할배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이 일품이다. 간조 때는 걸어서 갈 수도 있어 언제나 서해안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삼국시대 백제 말기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달리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이하게 좌우 불상은 큼직하고 중앙의 보살은 상대적으로 작아 1보살·2여래라고 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함께 백제 말기의 불교 유적이 서산과 태안에 나타나는 이유는 당나라와 교역을 하던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교역길이 평탄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불심이 드러난 것인데 태안 마애삼존불은 서산 마애삼존불보다 얼굴의 형태가 많이 상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서해안이라고 하면 여름휴가를 많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서해안에 울퉁불퉁하게 있는 리아스식 해변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해수욕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름의 바다뿐 아니라 서해안의 아름다움은 사계절 모두에 나타나는 듯 했다. 신은 자연 만물에 신의 능력과 신성(神聖)을 담아놓는다고 했다. 세상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용봉산의 바위를 타고 늘어져있는 수려한 능선과 황금산에서 보았던 기암괴석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서해안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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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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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마애삼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