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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비를 찾아서


글. 백은영 사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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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를 파는 상인(1860~1870년 추정)
이집트의 길거리에서 미라를 파는 상인의 모습이다. 당시 미라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으로 이렇게 미라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인들에게 미라는 파티에 활용하던 소품이었다고도 한다. 미라가 만들어진 목적과는 상반된 이 현상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불멸의 삶과 부활을 꿈꾸며 잠든 미라가 누군가에게는 만병통치약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파티 용품의 하나로 사용됐다니 산 사람뿐 아니라, 죽은 자의 앞날 또한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낸 가장 신비하고도 기적적인 건축물 일곱을 일컬어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한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대(大)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陵墓),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大巨像),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등이 세계7대 불가사의로 불린다. 이 중 7대 불가사의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먼저 떠올린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정교하고도 거대한 피라미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았을 뿐 아니라 건축에 사용될 기계나 도구도 지금에 비하면 원시적이었을 것만 같은 그 시절, 어떻게 이런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을까 하는 인류의 고민은 심지어 ‘외계인’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피라미드(pyramid)는 고대 이집트 묘의 한형식으로 사각추형의 구축물을 뜻한다. 가장 오래된 불가사의 건축물의 대명사이기도 한 피라미드는 초창기 파라오의 무덤인 마스타바에서 유래됐으며,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사각뿔 피라미드로 진화했다. 그중에서도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 왕의 대(大) 피라미드, 카프레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의 피라미드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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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애굽 왕 바로는 고대 이집트의 왕을 부르는 파라오를 가리키는 말로 모세는 세티 1세(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왕, B.C. 1318~1304년경, 람세스 1세의 아들) 아래서 람세스 2세(B.C. 1279~1213)와 함께 재왕 수업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에서 나올 당시(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을 잡기 위해 추격대를 보낸 인물은 람세스 2세라는 견해가 우세하며, 이외에도 이집트 18~19왕조시대의 투트모스 3세(모세의 양부), 아멘호텝 2세(B.C.1448~1420) 치하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 파라오
피라미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pharaoh)를 빼놓을 수 없다. 파라오는 ‘커다란 집’을 뜻하는 이집트어인 페르아아(per-aa)에서 파생된 용어로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호루스 신의 화신(化身)이자, 태양신이며 창조신인 라(Ra)의 아들로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세계관의 영향으로 파라오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무사히 신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특별한 조치가 취해졌다. 파라오의 무덤은 커다란 궁전처럼 조성됐으며, 그 안에는 파라오가 죽은 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온갖 물건(부장품)들이 갖추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 ‘모든 사원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 이라는 칭호를 받은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이라고 믿어졌다. 여기서 ‘두 땅의 주인’이란 파라오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전체의 통치자라는 의미다. 즉 파라오는 두 지역의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두 지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신전의 수장’은 파라오가 지상에서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제사의식을 주관하고 신전을 건설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집트 고대 신화에 따르면 파라오는 신과 여인의 결합의 산물인 빛과 같은 존재이며, 태양신 라(Ra)에 의해 점지된 자로 신과 같은 자격을 지닌 자로도 표현된다. 파라오 왕조는 메네스(Menes)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하며 세운 왕조(B.C .3500~3150)에서 시작해 초기 왕조(초대~2대 왕조), 고왕조, 상왕조, 중왕조, 하왕조,프톨레미 왕조(B.C. 332~30)로 B.C. 30년에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기까지 약 3500년에 걸쳐이어졌다.

피라미드, 파라오의 무덤
원래 이집트는 나일강 상류에 있던 상이집트와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하이집트로 나누어져 있으면서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러다가 기원전 3200년경 상이집트의 메네스 왕에 의해 통일된 후 이집트 제국 자체는 보존되고 왕조만 바뀌게 된다. 이후 기원전 32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점령되기 전까지 고대 이집트에서는 31개의 왕조가 이어졌다.

초창기 파라오의 무덤인 ‘마스타바(mastaba)’는 무덤의 외형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마스타바는 아랍어로 ‘직사각형의 벤치’를 의미한다. 마스타바 이후 파라오의 무덤은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로 진화했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피라미드는 보고된 것만 80기가 넘으며, 학자에 따라서는 110~120기로 추산하기도 한다.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 최초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630년경 축조된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마스타바를 6단으로 쌓아 올린 형태라고 보면 된다. 제3왕조의 2대 파라오였던 조세르는 당시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던 재상인 임호테프(Imhotep)에게 자신의 무덤을 만들게 했다. 임호테프는 먼저 윗면이 평평한 대형 묘실을 지은 후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작아지는 여섯 개의 정사각형 단을 쌓아 독특한 계단식 모양을 만들어냈다. 죽은 왕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을 상징한 것이다.

사람들이 ‘피라미드’ 하면 떠올리는 사각뿔 피라미드는 제4왕조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4왕조 1대 파라오인 스네페루는 재위 기간(B.C. 2613~2598) 동안 메이둠(Meidum) 피라미드, 굽은(Bent) 피라미드, 붉은(Red) 피라미드 총 3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메이둠 피라미드는 원래 8단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후 그 주위를 돌로 덮어 사각뿔 형태로 완성시킨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표면을 덮은 돌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2단의 탑 모양으로 남아 있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단지에는 3개의 대형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 중 하나가 불가사의 건축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2대 파라오 쿠푸(B.C.2589~2566 재위)의 대(大) 피라미드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148미터로 12세기 영국에서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기록됐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와 함께 서 있는 두 개의 피라미드는 4대 파라오 카프레(B.C. 2558~2532 재위)의 피라미드(높이 136m)와 5대 파라오 멘카우레(B.C. 2532~2504 재위)의 피라미드(높이 65m)로 여기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피라미드와 함께 신비한 존재로 여겨지는 스핑크스가 대피라미드가 아닌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축조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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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피라미드(Giza Pyramid)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에 묻혀 있던 스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대 유적이다. 이집트 기자에 위치해 있으며, 약 4500년 전인 기원전 256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왕국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졌다. 기자 피라미드는 쿠푸 왕의 대(大) 피라미드,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로 나눌 수 있다. 황량한 사막 위에 세워진 거대 피라미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사진 속 사막을 지나는 낙타의 모습과 비교되면서 그 웅장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수수께끼를 맞히면 안 잡아먹지~”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는 테베의 암산(岩山)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대답하지 못하면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누구도 맞히지 못했던 이 수수께끼를 오이디푸스가 풀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는 네 다리고 기어 다니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수수께끼를 맞힌 사람이 없어 그 오만함과 자만심이 극에 달했던 스핑크스는 그 길로 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진 고대 오리엔트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동물로 태양의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하던 파라오의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는 인간의 지혜와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 분묘 등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시리아와 페니키아, 바빌로이나,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에 세워졌던 수천 개의 스핑크스 중 가장 크고 유명한 것은 기자에 남아 있는 것으로 스핑크스 중의 스핑크스라 할 수 있다. 그 크기가 엄청나 보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기자에 있는 이 스핑크스가 하나의 커다란 석회암 바위를 조각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단 발톱 부분만은 벽돌로 만들어졌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바위를 어디에선가 옮겨온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거대하고도 신비한 기운이 맴도는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건설 이후 오랜 시간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이 스핑크스는 훗날 이집트의 투트모스 4세에 의해 다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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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모래에 묻힌 스핑크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4500년 전 만들어져 사막의 모래 바람에 묻혔다가 발견되기를 반복되는 과정 중에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냈던 머리 부분은 많이 닳고 훼손된 모습이다. 사진을 통해 발굴 당시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할 때 스핑크스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에 묻혀 있던 스핑크스 옆에서 잠이 든 투트모스 4세(B.C.1392~1382)는 꿈에서 스핑크스가 자신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내 몸을 덮고 있는 모래를 다 걷어 주면 너를 파라오(왕)로 만들어 주겠다.”

잠에서 깨어난 투트모스는 스핑크스를 덮고 있던 모래를 깨끗하게 걷어내고 뒷날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기자의 이 거대한 스핑크스는 몸 전체 길이가 60미터, 높이가 20미터에 이른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어 카프레 왕 때인 기원전 255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와 그 제작 방법이 다르고 석재의 산지와 공법도 달라 또 다른 의문을 던지고 있다.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의 생전 얼굴로 추정되고 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에서부터 스핑크스가 있는 근처 나일강 계곡의 한 사원까지 돌로 만들어진 길이 연결돼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스핑크스는 나일강과 태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투트모스 4세가 모래로 뒤덮인 스핑크스를 찾아낸 것처럼, 역사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고는 했다. 사막의 거대한 모래 바람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가 다시 발견되고는 했는데, 대부분 머리만 땅 위로 노출되고 몸체는 모래 속에 묻힌 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스핑크스의 얼굴 부분은 많이 상했지만, 그 몸체는 온전하게 보존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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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와 야자수
나일강과 야자수 사이로 피라미드가 보인다. 흔히 사막이라고 하면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만 생각하지만, 이집트의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불리는 나일강이 있어 이집트 문명을 이어올 수 있었다. 95%가 사막인 곳. 그곳을 흐르는 나일강은 말 그대로 신의 선물이다. 강으로 물을 길러 온 여인과 아이들, 그리고 낙타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이 한 장의 사진에 담아냈다. 이 사진을 보면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들에게 이 물줄기는 진정 사막의 오아시스였으리라.
 


근세에 스핑크스를 발굴하는 작업은 1816년 시행됐지만 또 다시 중단, 이후 1853년 오거스트 마이에테에 의해 다시 발굴하기 시작했다. 가스톤 마스페론과 에밀 부르그쉬가 카프레왕 무덤의 수호자인 스핑크스를 모래 무덤으로부터 완전히 빼낸 것은 1886년의 일이다. 처음 발굴을 시작한 지 70년만이다. 발굴 당시만 하더라도 양호한 상태였던 스핑크스는 현재 머리 부분은 완전히 없어진 부분이 많고, 머리에 쓰고 있었다는 왕관은 그 존재조차 희미해 졌다.

스핑크스의 얼굴은 원래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마치 혈색이 좋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고, 입가는 미소를 머금은 듯 조각됐다고 전해진다. 스핑크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입이 상당히 크고 입술도 매우 두꺼워 당시 이집트인들은 인종적으로 오늘날보다 남방의 흑인계 요소가 더 강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귀도 크고, 코도 높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파손돼 코는 구멍만 남아 있다. 이 스핑크스뿐 아니라 이집트 안에 있는 여느 스핑크스와 석상에는 코가 다 없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대포를 쏘아 그렇게 만들었다는 설과 이슬람교의 우상 숭배 금지 때문에 파괴됐다고 하는 설이 있다. 또 하나 이슬람 교도들이 스핑크스의 코를 부수면 스핑크스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어, 오스만 제국 병사들이 스핑크스 코를 상대로 사격 연습을 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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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19 왕조 람세스 2세 미라
람세스 2세(Ramesses II, B.C. 1303~1213년)는 고대 이집
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 B.C. 1279~B.C. 1213년)
로 이집트를 다스리는 동안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시켰다. 한편 미라는 기원전 3000년 전에 만들기
시작했지만 미라 처리 기술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2000년
이 지난 기원전 1000년경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
들에게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라, 불멸을 원했던가
이집트를 생각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절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니 ‘피라미드’ ‘스핑크스’ 그리고 ‘미라’다. 미라는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가 썩지 않은 채로 현재까지 보존된 것을 말한다. 우연히 만들어진 천연 미라와 인간이 만든 인공 미라가 있지만 대체로 후자 쪽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세상이 있다고 믿었던 문화권에서는 이 미라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최초로 미라를 만든 곳은 기원전 5000년경의 칠레 친초로이나 고대 이집트의 미라가 가장 유명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3세기에 이르기까지 미라가 만들어졌는데,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준다고 믿은 나일 강변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미라의 신이자 방부 처리의 신인 ‘아누비스’ 마스크를 쓴 우두머리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으며, 70일에 걸쳐 미라를 만든 뒤 무덤에 묻었다. 이들은 또한 죽은 영혼이 부활하게 되면 죽은 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미라의 생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마스크를 씌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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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 때에 심장은 제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심장은 인간의 중심이자, 사고와 감정의 근원이며, 모든 신체 부위에 혈액, 수분, 공기를 공급하는 혈관계통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라를 방부처리할 때 심장을 제외한 나머지 콩팥, 간, 허파, 내장들만 조심스럽게 제거한 뒤 카노푸스 단지에 저장했다.

미라의 제조법 중 그 방법이 경건해 왕이나 돈이 많은 귀족들이 사용한 방법은 이렇다. 먼저 쇠갈고리를 비강 속에 집어넣어 뇌의 일부를 긁어 낸 후 나머지는 약물을 주입해 제거한다. 그런 다음 칼로 옆구리를 절개해 내장을 꺼내고 복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야자유로 씻은 다음 향료로 다시 씻는다. 이후 몰약과 계수나무 껍질, 유향 등 다양한 향료를 채훈 후 봉합하고, 봉합된 시신은 70일 동안 초석에 넣어 두었다가 씻어 전신을 아마포로 만든 붕대로 감는다. 그 위에 고무를 바른 후 사람 모양으로 만든 나무 용기에 넣고 밀봉, 무덤 속의 벽에 똑바로 기대 세워 보관한다. 한편 이집트
인들은 축제를 벌일 때 죽은 사람의 미라를 꺼내 즐거움을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미라는 고대 이집트만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미라’라고 하면 고대 이집트를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시신 방부 처리법이 이집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집트의 건조한 토양과 기후가 미라를 만들 수 있는 최상・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도 시신 방부 처리법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인류가 신비롭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 안에 보관된 미라가 썩지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미라, 이렇게 3박자의 결합은 피라미드의 존재를 더욱 신비롭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피라미드가 무한우주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증폭 시스템이다, 강력한 생명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등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고, 피라미드 모양을 만들어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에너지가 집중되는 정확한 위치에 어떠한 물질을 놓게 되면 놀라운 치유의 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지구상에는 인간의 지혜나 학문으로는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많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을 보며 ‘신기하다’ ‘신비롭다’ ‘기이하다’ ‘불가사의하다’ 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현상들을 두고 혹자는 ‘외계인’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신’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 외의 다른 존재(영적인 존재)가 있음을 인지 혹은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남은 것은 그 존재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