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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평화의 빛을 쏘다


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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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 라이브사이트에서 펼쳐지는 창작무용 ‘평창-언니는 살아있다’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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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 ‘이매진(Imagine)’을 연기하는 김연아 선수
 

“모든 인간이 평화롭게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가 몽상가라고 당신은 생각할지 몰라요. 그러나 난 몽상가가 아닙니다. 언젠가 그날이 올 겁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가담하게 되고 세계는 하나가 될 겁니다….”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이 1971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곡 ‘이매진(imagine)’의 가사 일부다. 사회운동가로 앞장섰던 존 레넌이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 발표한 곡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폐막식에서 사용됐다. 올해 2월, 우리는 두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그리고 ‘평화.’전 세계인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고 있다. 지구촌 얼음 축제 ‘2018평창동계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강원도 평창, 강릉, 정선 등 3개 도시에서 전 세계 동계 스포츠인들이 설원을 뜨겁게 달군다. 안방에서 동계올림픽을 맞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목표는 종합 4위.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따내야 한다.




7년의 기다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PYEONGCHANG 2018’이라 적힌 종이를 내보이며 “평창!”이라고 외쳤던 7년 전 그날, 역사는 시작됐다. 준비 기간 7년, 기다림의 시간도 그만큼 길었다. 1988년 서울하계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자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다. 두 번의 실패를 겪고 세 번째 도전에서 얻어낸 값진 결과여서 기쁨은 더 컸다.

평창의 첫 도전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 결선투표에서 캐나다에 3표 차로 패하고 밴쿠버에 개최권을 내줬다. 이어 4년 뒤인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도 결선투표에서 소치에 4표 차로 뒤져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렇게 두 번의 실패를 맛봤지만 멈추지 않고 더욱 치밀하고 철저하게 올림픽 유치를 준비했다. 정부와 강원도, 대한체육회, 재계 등 각계각층에서도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평창은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1차 과반을 획득, 대회 유치에 성공해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마지막 분단국가, 평화올림픽 꿈꾸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한반도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인류 화합을 도모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시작된 올림픽이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올림픽의 가장 숭고한 정신 ‘평화’는 우리 정부가 이번 올림픽에서 크게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다. 한국전쟁이 휴전이라는 불안정한 상태로 멈춘 지 65년. 여전히 법적으로 전쟁 상태인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에 북한의 참가는 평화올림픽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독려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작년 한 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약 20차례 감행하며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북한의 연일 계속되는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문제가 불거지면서 평창올림픽의 안정성 문제까지 제기됐다. 급기야 지난해 9월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평창올림픽 불참을 시사하기도 했다. 캐나다와 호주 올림픽위원회 측도 안전이 우선이라며 불안감을 보였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막말 전쟁까지 벌어져 한반도 위기감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유엔이 나섰다. 지난해 11월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제72차 유엔총회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의 공동제안을 통해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결의안은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폐막 후 7일까지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말자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자는 게 골자다. 사실상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손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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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
 



IOC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노력해왔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북한이 참가를 결정하면 해당 국제경기연맹과 협의해 출전권이 없는 북한 선수들에게 ‘와일드 카드’를 줄 수 있다는 입장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혀왔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무사 유치가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중차대한 일이라는 것을 세계인들도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
새해 벽두부터 메마른 땅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화합의 손짓에 묵묵부답이던 북한이 답을 보내온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1월 1일 오전 9시 30분 조선중앙TV로 방영된 2018년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곧바로 북한은 남북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

남북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마치 서로 새해가 밝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 제안에 빠르게 반응했다. 남북은 지난달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회담을 열고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등에 대한 본격 논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하는 데 합의했다. 남북은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하계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과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도하 하계아시안게임,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9차례 개막식에서 공동 입장했다. 이번 평창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은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이후 11년 만이자 10번째가 된다. 남북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구성하기로 했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1999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이어 27년 만이자 통산 3번째이며 올림픽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단일팀 구성 시 우리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정부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에 엔트리 확대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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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년 신년사 하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2. 제72차 유엔총회 3.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해 악수하는 조명균(오른쪽)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4. 서울 장충체육관에 들어서며 손인사로 화답하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막혔던 육로도 뚫렸다. 지금까지 남측에서 열린 스포츠 대회에 북측 선수단이 육로를 통해 들어온 적은 없었다. 이번에 열린 육로는 서해선 육로, 동해선 육로, 판문점 등 총 3곳이다. 서해선 육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왕래하던 ‘경의선’ 육로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쪽 대표단과 선수단과 응원단 230여명, 태권도 시범단 30여 명은 이 길을 통해 남한으로 온다. 경의선 육로는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길이다.

금강산 합동 문화행사와 남북 스키선수들의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 소화를 위해 동해선 육로를 열기로 했다. 2007년에만 200만 명 이상이 이 길로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지만 2008년 7월 고(故)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통행이 막혔던 길이다. 북한의 금강산과 원산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동해선 육로를 이용해야 손쉬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길을 택했다. 삼지연관현악단 14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 예술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하기 위해 판문점을 통해 내려오기로 했다. 북한 예술단 방한은 지난 2002년 이후 16년 만이다. 앞서 2000년 조선국립교향악단 130여 명이 서울을 찾은 이후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를 위해 북한 예 술단을 이끌고 있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은 1월 21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 해 남산 국립극장과 잠실 학생체육관, 장충체육관, 강릉 아트센터 등을 둘러보며 사전점검을 꼼꼼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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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국제사회도 환영
국제사회와 외신은 일제히 한마음으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환영하고 지지했다. 한국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공동 입장 합의 소식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이번 합의를 북한 정권이 비핵화를 통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의 가치를 깨닫는 기회로 보고 있다”며 “미국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비핵화가 실현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CNN방송도 “이번 합의는 남북 대화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공영 BBC방송도 “올림픽을 앞둔 한국과 북한의 포옹은 한반도가 또 다른 전쟁으로 갈 수 있다는 위기 속에서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 기쁜 소식이라며 환영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남북 간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다”며 “남북의 계속된 대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실현할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제사회는 이번 기회를 붙잡아 협조하고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여야지 공연히 일을 그르치게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정신‘ 평화’
“스포츠로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의 말이다. 쿠베르탱이 고대 그리스올림픽을 본떠 올림픽을 부활시킨 것은 1896년의 일이다. 서기전 776년에 시작된 고대올림픽이 1200년간, 293회 실시되다가 서기 393년에 로마의 폐지 칙령 선포로 종말을 고한 지 1500년 만의 일이었다. 올림픽은 정치적 격변과 종교적, 인종적 차별 속에서 세계평화라는 큰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상호이해와 협력은 국제사회의 갈등을 풀고 세계평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 중의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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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참가 논의를 위해 군사분계선 넘어오는 북측 대표단
 


인류가 발명한 문화품목 중 가장 평화를 도모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마을 사회에서부터 있어진 크고 작은 축제였고 그 가운데서도 올림픽축제는 인류사회의 번영과 평화의 정착에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 지구촌 각양각색의 인종과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신체를 부딪치며 함께 경기하고 문화예술축전을 곁들여 평화를 연출하는 스포츠 제전. 그 출발은 전쟁을 막기 위한 기제였다. 그리스 도시국가 간에 벌어진 고대올림픽에서는 전쟁
하다가도 올림픽 기간에 휴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많은 사람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떠올리곤 한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냉전 시대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의 마찰이 극대화됐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미국이 불참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러시아 등 일부 공산주의 국가들이 불참하는 사태를 빚었다. 결국 1980년과 1984년 두 올림픽은 모두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양국이 모두 참여하면서 냉전 시기를 딛고 성공적으로 열린 올림픽으로 기록됐다.

서울올림픽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동서 진영이 모두 참여한 근대 올림픽 최대의 평화대제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냉전 해체에 기여하고 결국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이어지는 대역사로 연계됐다는 분석이다. 서울올림픽은 소련을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이 한국과 수교를 맺는 결정적 역할도 했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은 서울올림픽 경기를 TV로 중계하면서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로만 생각했던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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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남자축구 북한과 파키스탄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북한팀을 응원하는 한국 응원단 2. 88서울
올림픽 소련 입장 모습 3. 강원도 평창 보광스노경기장에서 모글스키 훈련 중인 대한민국 선수
 



희망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기대감과 설렘을 가져온다.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동기부여가 되고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 크게 다가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 속에서 평화는 지구촌 인류의 희망이다. 전쟁도 쉬게 한다는 올림픽 정신과 마주한 남과 북. DMZ에서 불과 100㎞ 떨어진 평창에서 열리는 인류의 제전. 휴전상태의 남북한은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마련할 수 있진 않을까.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의 평화를 넘어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는 아름다운 선순환의 출발점이 평창이기를 염원해본다. 칠흑 같은 어둠속 한 줄기 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빛으로 물들인다. 평창(平昌)이란 지명 속에 평화를 밝힌다는 의미가 있듯 지구촌 가운데 대한민국 작은 도시 평창이 평화를 향한 희망의 빛을 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