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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동막골’은 어디인가

강원도에서 찾는 전쟁 그리고 평화


글. 백은영 사진. 박선혜



한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철책. 휴전 또는 정전 시 대치하고 있는 양군의 태세를 고정화시키거나 전선에서 병력을 분리시키기 위해 설정하는 기준선. 바로 휴전선이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으로도 불리는 이 철조망은 총 길이 약 250km로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喬棟島)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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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휴일 새벽의 평화로움은 38선 곳곳에서 터지는 우레와 같은 포성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 동족상잔의 비극 ‘6·25’는 그렇게 북한의 불법 남침에서 시작됐다. 장장 3년 1개월을 끌어온 비극. 이 전쟁으로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약 60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국토와 국가시설의 대부분이 초토화됐다.


1955년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 인도 대표 벤가릴 메논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겠는가?”라는 말로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설명 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역시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했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말한 그때,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로지 국토재건을 위해 달려왔다. 그렇게 스스로를 희생한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순위 11위(2015년, GDP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하며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허나 아직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으니 다름 아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다.



민족의 아픔, 분단의 슬픔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수를 자랑하는 나라. 그래서인가. 분단으로 인한 이산과 실향의 아픔은 더욱 애달프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가깝고도 먼 나라를 일본이라 했지만, 우리에게 있어 진정 가깝고도 먼 나라는 북한이 아닌가 한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기 힘든 현실. 민족의 허리가 두 동강이가 난 채로 살아온 그 긴 세월. 그리움으로 버텨왔고 간절함으로 기다려왔던 그세월은, 과연 언제쯤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로 주권 없는 삶을 살던 민족에게 광복은 도래하였건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사상과 이념을 달리하면서 둘로 쪼개지는 수난을 겪어야 했고, 급기야 전쟁의 참화까지 겪어야 했다. 그렇게 한반도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가 이 세대에 기필코 풀어야 하는 숙제이며, 나아가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완성해야 하는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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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곳

비무장지대(DMZ)를 포함한 군사분계선에서 남방한계선이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을 ‘접경지역’이라고 말한다. 민통선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km에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을 말하며, 남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동서로 그려진 선을 말한다. 북쪽으로는 또한 북방한계선이 있는데 이 또한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km떨어져 동서로 그은 선이다. 이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4km가 비무장지대다. 이 남북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에 전초(前哨)로 부르는 GP가 있고, GP와 GP사이에 다시 추진철책을 만들어 남과 북이 서로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동부전선 최북단인 고성에는 북한군 초소와 우리군의 초소가 가장 가까운 곳이 불과 57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도 있다. 조금만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 서로의 목소리에 화답할 수 있는 지척이다.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고성은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북한에 속했다가 6·25전쟁으로 휴전선이 위로 올라가면서 남한에 속하게 된 곳이다.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가 비무장지대가 되면서 고성 주민의 상당수가 실향민이 됐다. 참혹한 전쟁이 주는 아이러니인가. 전쟁과 휴전으로 인해 이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고향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 아픈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현실. 이는 실향민 모두의 한결같은 아픔이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상처다. 그 가운데서도 남과 북이 반으로 뚝 잘라 지배하고 있는 강원도는 분단의 슬픔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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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통일공원 내에 전시된 북한 잠수함. 잠수함 선미 쪽에 좌초된 흔적이 보인다.




상처를 딛고 더 짙푸르게


분단의 허리로 불리는 강원도. 강원도 해안의 중심도시인 강릉 안인진과 정동진은 민족대립의 현장으로, 전쟁의 슬픔이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 강산 어디인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마는, 강릉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최초로 남침해 상륙한 곳이라는 데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디 이뿐이랴. 모두가 안전하다, 평안하다 생각하며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인 1996년 9월 18일. 북한 잠수함이 침투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도 바로 이곳 강릉에서 발생했다. 전쟁을 제일 처음 맞닥뜨린 곳이자 9·18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무장공비 침투 등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곳. 그래서 강릉은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강릉통일공원’은 전쟁의 참혹함과 국가안보, 통일의 중요성을 이 세대에 알리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변과 관광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분단 한국의 통일염원을 담아 조성된 이곳은 함정전시관, 통일안보전시관, 야외전시장 등으로 꾸며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동해의 짙푸른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세워진 함정전시관은 1996년 9월 18일 남한 침투 중 좌초된 북한 잠수함을 중심으로 북한주민 탈출선과 한국해군함정인 3417톤(t)급 ‘전북함’을 전시한 곳으로 남·북한의 함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해군함정 바로 옆으로 펼쳐진 동해의 깊고 푸른 수심과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떠밀려가기를 반복하는 파도 소리가 긴장과 평화로움이라는 묘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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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통일공원 함정전시관의 전북함 전경
 



한국해군함정 내부는 먼 바다로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해양을 수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훈련을 멈추지 않는 우리 군의 함정내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잘 꾸며졌다. 우리의 역사 속 해전의 모습부터 한국전쟁, 현재에 이르기까지 치렀던 해전의 역사를 사진과 설명을 곁들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영상으로도 전쟁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시청각자 료들이 잘 구비돼 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지워져갔을 사건들. 이곳에서 되새기게 된 전쟁의 역사는 아직 아물지 않은 민족의 아픔에 비해, 내가 너무 쉽고 안일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저 차디찬 바다 깊은 곳에서 산화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젊은 청춘을 불태웠으리라. 그들의 희생으로 일궈진 나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의 나는 민족을 지키기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삶과 청춘의 발판 위에 서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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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북방한계선을 무효화할 목적으로 1999년 6월 7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 수차례 불법 침입해 충돌식 공격을 기도하는 북한 해군에 대해 역충돌식 밀어내기 작전을 수행하던 우리 해군이 6월 15일 적의 선제사격을 받자 즉각 대응한 14분간의 해전. 바로 제1연평해전이다. 이후 온 나라가 2002한일월드컵으로 들떠 있던 2002년 6월29일.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은 오전 10시 25분에 시작해 50분까지 약 25분간 지속됐다. 이 해전으로 우리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했으며 19명이 부상당했고, 우리 해군 참수리고속정 1척이 침몰했다.

월드컵의 열기로 대한민국이 후끈 달아올랐을 그때, 우리의 젊은 청년들은 전쟁의 공포와 맞닥뜨리며 영해 수호를 위해 차디찬 바다 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다. 그렇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통일이다.

연평해전에 앞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25명의 무장간첩을 태우고 강릉 안인지역으로 침투하려던 북한 잠수함이 복귀 과정에서 좌초되자 북한군은 잠수함 이탈 전 주요 무기와 문건 등을 소각하고 괘방산 산기슭에 숨어들었다. 북한군이 설치·은폐한 비트 안에서는 송신기와 난수표, 단파라디오 등 135점이 발견됐다.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1996년 9월 15일 저녁 8시경 강릉시 안인진리 전방 해상에 도착해 정찰조 3명을 내륙으로 침투시킨 후 수중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은, 정찰조 복귀를 위해 17일 밤 9시경 해안가로 가까이 접근하려다 좌초당한다. 이후 괘방산으로 도주해 육상으로 복귀를 시도하고자 했지만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49일간 진행된 우리 군의 대간첩작전으로 침투조 일행을 완전소탕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우리 측 또한 11명의 전사자와 22명의 부상자, 민간인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분단의 비극이 만들어낸 사건들. 강릉통일공원 내 함정전시관과 통일안보전시관, 야외전시관은 전쟁의 참혹함과 분단이 빚은 비극을 통해 평화통일의 절실함을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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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좌초된 잠수함에서 벗어나 육지로 침투하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웰컴 투 동막골

2008년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은 6·25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가 채 미치지 못했던 강원도 두메산골 ‘동막골’에서 만나게 된 국군, 인민군, 연합군과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념도 상처도 없는 곳, 치열했던 전쟁 대신 인간의 순수하고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던 곳. 그래서 ‘동막골’은 전쟁이 없는, 아니 전쟁마저도 피해가는 곳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기자는 이 ‘동막골’이 평화를 상징하는 곳, 곧 인류 모두가 그리는 이상향, 유토피아·도솔천·천국과 같은 곳을 형상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념도 사상도, 전쟁도 침범하지 못하는 그런 세상. 평화의 세계를 꿈꾸는 모든 인류의 바람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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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속에서 팝콘이 눈처럼 흩날리던 장소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 살짝 흐린 날씨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동막골’이 보고 싶어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으로 급히 차를 돌렸다. ‘동막골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여기가 동막골이에요~ 웰컴 투 동막골~”하고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는 것만 같았다. 표지판 옆쪽으로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름 하여 ‘바람골’이다.

옛날 탄을 캐던 자리라고 한다. 아무래도 좀 위험했던지 옆에 주의사항이 적인 그림판이 하나 떡하니 서 있다. 그림 속 광부의 한 마디 당부. “너무 가까이 가면 돌멩이 맞는 수가 있어유. 돌멩이 맞아 대가리 터지면 누가 책임질거래유….”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듣는 기분 이랄까. 표지판 앞길로 난 길을 따라 15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가 나온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올 무렵이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세트장에 도착, 주위를 둘러보니 10여 년 전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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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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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 투 동막골> 스틸컷
 



영화 속 명장면 하나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펑~”하고 옥수수 알갱이들이 터져 팝콘이 눈처럼 흩날리던 장면을 꼽고 싶다. 동막골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국군과 북한군.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지만, 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영화 속 여주인공인 여일(강혜정)은 자신이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 비에 젖은 북한 장교 리수화(정재영)와 그 일행의 얼굴을 닦아준다.

서로에게 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 서로를 믿지 못해 쉽게 총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 긴장된 순간조차 평화롭게 만드는 장면. 바로 그 순간, 여일이 북한군이 들고 있던 수류탄의 고리를 빼내고, 이에 화들짝 놀라 허둥대는 통에 수류탄은 그만 바닥에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북한군 표현철(신하균)이 수류탄을 배로 눌러 막았지만 불발. 이에 별 생각 없이 “휙~”하고 뒤로 던졌는데 하필, 식량창고에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불발인 줄 알았던 수류탄은 식량창고에서 제 소임을 다하며 “펑~”하고 터졌고, 그와 동시에 옥수수 알갱이들이 벚꽃처럼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팝콘이 되어 쏟아졌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슬로우 모션을 택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팝콘’ 하나로 저리도 평화롭게 표현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화를 봤던 이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듯, 평화의 열망 또한 전쟁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말한다. 이념도 사상도 욕심도 버리고 마음으로 하나 될 때, 인류의 염원인 평화는 따스한 봄날 흩날리는 벚꽃처럼,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라일락 꽃향기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