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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노래하는 섬 거제도·지심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흘린 피

붉은 꽃으로 피어나다


글 백은영 사진 김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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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망산에서 바라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비경
 


상처는 깊을수록 선명하다. 그렇기에 숨기려하면 할수록 더욱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상처를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면 외려 그 아픔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곳. 국토의 동남단에 위치한 거제도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나라 어느 곳인들 일제강점기의 상처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아픔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마는 거제(巨濟)는 유독 그 흔적들이 오늘날까지도 살아있어 역사 교육의 산현장이 되고 있다. ‘크게 베푼다’ ‘크게 구한다’는 의미를 지닌 섬 거제(巨濟). 글마루 답사팀이 4월의 끝자락에 찾은 거제는 기꺼이 자신의 속살을 훤히 꺼내 보여줬다.

거제는 10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뤄졌으며, 면적 402.03㎢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386.74㎞에 달하는 리아스식 해안은 기암괴석으로 되어 있어 절경을 이루며, 눈이 닿는 곳마다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제도 해안 7백리 길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라 하질 않던가. 뿐만 아니다. 거제의 최남단 남부면 다포리에 위치한 망산(望山)은 해발 397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이곳에 오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비경(秘境)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게 만든다. 저마다 가슴 아픈 이야기 하나 둘쯤은 품고 사는 섬들. 그래서 거제의 섬들은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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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의 거대한 바퀴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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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이 생활했던 당시의 모습과 주요 사건을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
인형으로 만들어놓은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해 마치 그때의 현장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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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와 울긋불긋한 꽃들 사이에 붉은색으로 표현된 ‘625’라는 숫자가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떠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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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됐다.
 


아픈 역사를 딛고 일궈낸 아름다움

# 그 첫 번째 이야기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그만큼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섬들. 거제는 그 이름이 갖는 의미처럼 역사가 남긴 상처와 시련, 슬픔과 역경에서 사람들을 건져냈다. 식민의 아픔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 민족은 두 번 다시는 이 참혹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을 낳게 했고 그 다짐은 이 나라를, 그리고 거제를 평화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6·25전쟁 당시 늘어나는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거제도포로수용소. 지금은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불리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과 조국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글마루 답사팀이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찾은 평일 오후에도 견학 나온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전쟁을 직접 겪은 어르신들의 모습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시간을 인내하며 이겨낸 세대와 그 세대의 희생으로 지켜낸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마주하는 공간. 이 역사적인 공간을 통해 젊은 세대가 이 땅, 이 강산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
던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6·25전쟁 당시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된 포로수용소는 인민군 포로 15만 명, 중국군 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 3000명의 포로를 수용할 정도의 규모였다. 이들 포로들 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당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으며,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돼 3일 만에 석방되는 등 거제도포로수용소는 마치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그해 7월 27일 휴전협정이 성사됨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고, 수용소는 폐쇄됐다. 1983년 12월 20일 거제도포로수용소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됐으며 현재는 일부 잔존 건물(잔존유적지)과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 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을 바탕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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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에 있는 해안 절벽 ‘마끝’의 모습. 지심도의 바다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 그 두 번째 이야기

‘붉게 피어난 섬. 지심도’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 가다보면 ‘지심도(只心島)’라는 작은 섬이 하나 나온다. ‘동백섬’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은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섬의 60~70%가 동백나무로 이루어져있다. 남해안 섬들 중 어느 곳보다 동백나무의 숫자나 수령 등이 압도적인 이곳은 또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 지심도라 이름 붙었다.

2박 3일의 답사 일정 중 마지막 날 찾은 지심도는 일제의 침략 야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중 하나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지심도는 일본 해군 아까쯔끼부대 기지로 사용되면서 군막사 발전소, 병원배급소, 포대 방공호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만들어졌다. 현재는 포대 4곳, 방공호 3곳, 대포를 보관하는 곳, 서치라이트 보관소, 대포를 쏘기 위한 방향지시석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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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 역사 탐방’의 한 곳으로 구 일본국 전등소 소장 사택의 모습이다. 일본식 가옥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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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으로 수놓인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대륙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며 주둔했던 사실을 말해주는 ‘탄약고’로 가는 길이다
 


동백꽃이 절정을 이뤄 섬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보려면 3월이 제격이다. 그렇다고 다른 계절의 동백섬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워낙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섬이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섬이 아름다운’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계절마다, 흐르는 시간마다 저마다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동백섬을 다시 찾게 만든다.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100년을 훌쩍 넘긴 동백고목을 비롯해 희귀종인 거제 풍란, 후박나무, 소나무 등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룬 이곳엔 사실 뼈아픈 역사의 흔적들이 존재한다.

일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까지 집어삼킬 요량으로 이곳 지심도를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포진지와 탄약고, 서치라이트 보관소, 방향지시석 등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일제는 그렇게 이곳 지심도를 대륙침략을 위한 요새로 만들면서 동북아평화를 위협했다. 세상이 자기들 위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은 걷잡을 수 없는 교만을 낳았고, 일본은 결국 지구촌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1904년 송진포방비대 설치 이후 일제의 ‘진해만요새사령부’의 작전 지역으로 선포돼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요새화된 비운의 섬. 천혜의 자연경관과 원시자연의 아름다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군 주둔의 쓰라린 역사는 지심도를 살아있는 ‘역사 탐방’의 세계로 들어서게 만든다.

동백섬에 발을 내딛은 순간. 코끝을 간지럽히는 엷은 바람과 화창한 봄날이 뭔지 모를 애잔함을 안겼던 이유가 혹 섬이 간직한 가슴 아픈 기억의 편린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를 어지럽혔던 그 흔적들이 너무 깊이 패여, 그 상처가 붉게 물든 동백꽃으로 피어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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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에 꽃을 피운다 해서 ‘청렴’과 ‘절조’라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 세계 제패의 야심을 품은 일본군이 들어오면서 평화로웠던 섬은 순식간에 지옥과 같은 곳으로 변했을 터다. 그렇게 모든 희망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혹독한 겨울을 끝끝내 이겨내고 지금의 이 아름다운 섬을 일궈낸 사람들. 이곳이 ‘동백섬’으로 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엄동설한에서도 꽃을 피우는 그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었을까. 농림축산식품부
와 농촌진흥청이 2015년 새해 첫 이달의 꽃으로 희망을 상징하는 ‘동백’을 선정하기도 했다. 한 마디 더 거들자면, 동백꽃의 또 다른 꽃말은 ‘겸손한 마음’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꽃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동백꽃을 ‘시련을 이기고 평화를 이루는 붉은 열망’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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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으로 더욱 유명한 지심도에는 동백나무를 비롯해 거제 풍란, 후박나무 등의 희귀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봄날의 지심도는 형형색색의 꽃들로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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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망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비경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중략)
이바 이웃들아, 산수(山水) 구경 가자스랴.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來日)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하세.”

조선시대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중 일부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전라북도 태인에 은거하면서 자연에 몰입한 그가 봄을 완상하며 읊은 노래다. 거제 망산 한 벼랑 끝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다도해의 비경을 바라보니 조물주의 위대함에 절로 이 노래가 읊조려진다. 망산 정상(397m) 표지석 뒷면에는 천하일경(天下一景)이라 새겨졌으니 이곳 벼랑 끝에서 바라본 경치에는 무엇이라 새기면
좋을까. 그저 이 눈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 간직해야 할까보다.

까마득히 먼 태곳적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만 같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답사팀은 그 숨겨진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오르고 또 올랐다. 굳이 사람의 발길로 다져진 길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밟는 땅이 어느새 길이 되어 탁트인 전망과 천혜의 비경을 선사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나뭇가지와 가시에 찔리고 몸에 멍이 들어가며 바위를 타고 올라 바라본 다도해는 그야말로 신선이 머무는
무릉도원 같았다.

사실 망산은 고려말 국운이 기울면서 왜적의 침입이 잦아지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 정상에 올라 왜구 선박 감시를 위해 망을 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그러한 아픔을 딛고 일어선 지금. 거제 망산은 다도해의 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으로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