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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 최전방까지
 
DMZ, 전쟁의 상흔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한민족이면서도 하나가 될 수 없던 시간들. 그 누구도 원한 적 없던 이산(離散)의 아픔.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이 갖는 슬픔이다. 언제쯤이면 서로 하나 되어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한반도 분단 70해를 맞이한 지금, 지금이야말로 지구촌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글 백은영 사진 서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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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직전 동해의 회색빛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남과 북이 하루속히 하나 되어 자유롭게 왕래하길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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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는 자신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과 죽음, 파멸과 파괴의 참혹함을 그리면서 동시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노래했다. 전쟁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폐허가 된 거리에서도 희망은 움트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후세에 남겨줄 진정한 유산은 불안함 속에서 찾는 삶의 기쁨이 아닌 온전한 평화가 깃든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휴전국

대한민국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분단의 비극이 남긴 우리 민족의 각기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분단과 전쟁의 상처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나라. 그렇기에 더욱 애달픈 민족. 수많은 난리와 전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우리 안에 내재된 평화의 힘 덕분이었으리라.
 
지난 12월, 답사 일행은 새벽 어스름을 뚫고 서울에서 강원도 고성을 향해 달렸다.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 설악산 울산바위가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제일 먼저 답사팀을 반겼다. 바위라 부르기엔 미안할 정도로 ‘산 속의 산’처럼 우뚝 솟은 모습이 흡사 금강산의 만물상을 보는 듯했다. 어쩌면 조물주는 가고 싶어도 갈수 없어, 마음으로만 금강산을 그리는 이들을 위해 이곳 설악산에 울산바위를 뒀는지도 모른다.
 
답사팀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우리나라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고성통일전망대다. 고성통일전망대는 고성8경 중 하나로 DMZ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 떨어져 동서로 그어진 선)이 만나는 해발 70m 고지에 있다. 분단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곳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 일행은 통일안보공원 출입신고소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차량을 이용해 전망대까지 이동해야 했다. 전망대가 민간인통제선(민통선)에 위치한 까닭에 출입신고서를 민통선검문소에 제출한 뒤 차량출입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짧지 않은 세월을 보냈지만 이곳 통일전망대는 처음이었다. 북녘 땅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출발 전부터 많은 감정들이 뒤섞였건만, 막상 전망대에 올라오니 다른 감정들보다 앞서 먹먹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때마침 흩날린 진눈개비는 그런 먹먹함에 슬픔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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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해금강과 구선봉의 모습. 해금강은 바다 위의 금강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풍경이기 이전에 우리의 역사였고 현재이며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미래였다.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와 철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얼어붙은 남북의 정세는 한겨울 혹독한 추위마냥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길 위에 길은 있건만, 도대체 언제까지 더 이상 오가지도 못하는 버려진 길이 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우리가 금강산을 그리듯, 금강산도 우리를 애타게 그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름답기에 더욱 슬픈 풍경
 
겨울이니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거칠 게 없는 바닷바람은 더욱 매서웠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간에 오가는 팽팽한 긴장감 탓인지 옷 속으로 스며든 바람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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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와 ‘민족의 웅비’가 새겨진 비석.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각 지역
을 대표하는 돌들을 모아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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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에 위치한 통일 대불의 모습.
 
 

 
 
일행은 시야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날이 좋을 때는 신선대, 옥녀봉, 세존봉, 집선봉, 육선봉, 채하봉, 일출봉 등 외금강의 전경이 더욱 잘 보인다는 말에 ‘햇볕 좋은 어느 날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눈앞에 놓인 금강산의 풍모를 마음에 담았다.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새겨진 금강산. 비록 선명하진 않지만 희미한 가운데서도 금강산에서 뻗어 나오는 옹골찬 기개와 기운은 가히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릴만했다. 어렴풋이나마 금강산이 뿜는 그 신비의 기운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손만 뻗으면 닿을것 같은 그곳을, 이렇게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분단의 슬픔이 자꾸만 가슴을 옥죄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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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모습. 산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다. (위)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의 모습.
 
 

 
 
먹먹함을 느끼는 가슴과는 달리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탁 트인 시야와 바람에 떠밀려 육지에 와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낸 하얀 포말(泡沫)은 외려 평화롭기까지 했다. 그 경치가 금강산을 닮아 바다의 금강으로 불리는 ‘해금강’과 북한에서는 낙타를 닮았다 해 ‘낙타봉’으로 부르는 ‘구선봉’, 북한 레이더 기지가 있는 국지봉 등 눈앞에 펼쳐진 저 너머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애달팠다.

가까우면서도 제일 먼 그곳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고성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북한에 속했다가 6·25전쟁으로 휴전선이 위로 올라가면서 남한에 속하게 된 곳이다.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의 지대가 비무장지대로 결정되면서 고성 주민의 상당수가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됐다. 자유를 얻은 대가로 고향을 잃거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6·25전쟁의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던 때에도 남과 북은 서로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월비산(495m) 351고지 탈환작전이다. 월비산 351고지 탈환을 위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 중 1953년 6월2~6일까지 벌어졌던 전투에서 우리 측은 전사자 240명, 부상자 560명, 실종 11명 등 총 811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었다. 정전협정과 함께 결국 351고지는 북한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우리 측이 351고지를 사수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는 금강산을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부전선 최북단인 이곳에선 북한군 초소와 우리 군의 초소가 가까운 곳은 불과 570여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그야 말로 “야~”하면 “왜?”하고 대답이 들려올 거리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갈 수 없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그것도 피를 나눈 한 형제끼리 손을 맞잡지는 못할망정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람도 새도 가는 그곳 사람의 왕래만이 어려워

이튿날 일행은 촬영 및 취재에 도움을 줄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파주 도라전망대로 향했다.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의 이동이다. 고성통일전망대와는 달리 이곳 도라전망대는 신분확인이 까다롭다. 답사팀도 사전에 일행의 주민번호와 차량번호, 차종 등을 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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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근무 중인 모습.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이자 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휴전국임을 말해주고 있다.
 
 

 
 
검문이 까다로울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막상 신분확인을 받으려니 살짝 긴장이 됐다. 혹여 혼선이라도 생길까 염려한 탓도 있었지만 검문소 분위기가 꽤 삼엄하고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한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기에 이른바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습이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분단과 전쟁, 휴전의 상흔은 그렇게 곳곳에서 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와서도 촬영이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사전에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헌병의 안내를 받고 나서야 취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가지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전망대에 서서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었다. 눈앞으로 북한의 개성시와 송악산이 내려다보였다. 때마침 일을 마치고 개성공단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차량 행렬을 멀리서나마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촬영을 마치고 답사 일행은 비무장지대 근접 촬영 및 군 장병들의 철책 경계근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또 다른 안내자의 인도를 받으며 부대 깊숙이 들어갔다. 마침내 도착한곳. 군 장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군부대 안쪽까지 들어와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비무장지대를 바로 눈앞에서 보니 분단의 설움이, 아직 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휴전의 아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길게 둘러쳐진 휴전선을 바라보니 하루속히 이 흉물스런 철조망을 거둬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겹겹이 쌓인 철조망 사이로 한겨울의 거센 바람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군부대의 하늘 위로 새 한 마리가 자유로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직 사람만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음에 분단의 설움을 더욱 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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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 수놓인 구름이 마치 새가 되어 비상하는 것도 같고 둘이 하나 되어 만나는 것도 같다. 우리도 이처럼 어우러져 헤어져 살던 그 세월, 그 서러움을 위안 받을날이 하루속히 다가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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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에 세워진 조국통일선언문.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
국민대표33인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강물도 흘러 하나가 되고, 산들도 그 산맥을 이어가며 하나로 남아있건만 오직 욕심으로 어리석어진 사람만이 하나 되지 못하고 70년 세월을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멍에를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문득 답사 일정 중에 만난 동해안의 일출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해진다.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나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가게 됐는가. 그들도 분명 우리가 보는 그 일출을 보고, 같은 태양 아래서 하루 24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억압과 핍박 속에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하루 속히 전쟁종식을 선언하고 통일을 이루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한다. 한반도의 통일, 그것은 다만 우리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세계평화를 위해 선행돼야 할 숙제인 것이다.